「아세아 司牧(사목) · 敎理硏究(교리연구)」 參席記(참석기) - 미사 典禮(전례)
天主(천주)의 「말씀」 傳達(전달) · 欽崇行爲(흠숭행위)
參與者(참여자) 理解(이해) 없인 意義(의의) 상실
形式的(형식적) 「義務化(의무화)」로 機械的(기계적) 能動的(능동적) 參與(참여)엔 積極(적극) 敎育(교육)
기껏해야 劇場(극장) 구경가듯 해
▲제물봉헌 의식은 한편으로 그 의식의 성격상 이미 제사가 이루어진 것처럼 느낌을 줄 수 있는 것은 없이 해서(지난 6월 29일부터 개정시행되고 있지만은) 제물의 단순한 공치(供置 SIMPLE OFGIFTS)로 개정될 것이라는 말이 있었다. 나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싶다. 미사라는 우리의 제사가 다른 제사들에서 구별되는 점은 제물봉헌에서가 아니라 성변화에서이다. 따라서 미사의 봉헌의식을 위와같은 뜻에서 간소화함은 미사의 더 중요한 부분인 성변화를 자연 더 들어나게 하는 결과가 될 것이며 이러한 개정은 미사성제의 초월성을 더 들어나게 하자는 노력의 발로라는 것이다.
「그리스티아니즘」의 본질적 특이성이 위에서 내려오는 수육강생(受肉降生)이 있듯이 미사성제의 특이성도 인간에게서 올라가는 봉헌에 보다 천주께서 사랑과 권능으로 찾아내려오셔서 이루는 성변화(聖變化)에서 발견할 것이다. 물론 인간의 구원을 위한 인간의 능동적 적극적 참예를 과소평가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다만 여기서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구세사의 「이니시아티브」와 주도권이 천주께 있듯 전례의 주도권도 천주께 있으며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전례는 먼저 천주의 행동임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성경이 말하고 전례기도문에서 수없이 반복되는 생활한 천주란 말은 현재까지를 포함한 전구세사과정에서 그리고 특히 현대의 교회전례 안에서 천주님은 생활하시고 행동하고 계신다는 것을 뜻하는 말인 것이다.
제물봉헌의식은 다른편에서는 천주께의 봉헌과 성직자생활부담이라는 그 수직적 종적면 외에 (가난한)형제들을 위한다는 수평적 횡적면 즉 봉헌의 사회적면을 잘 들어내는 의식을 찾아내는데에 전문가들의 노력이 쏠려질 것이며 이점을 위해서는 모두 다같이 나아가는 봉헌행렬이 좋을 것이라는 융그만 신부의 의견진술이 있었다.
전례헌장 초안토론때 공의회 교부들은 신자들의 전례의식과 기도문에 대한 이해의 필요성을 역설하였었다. 전례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천주의 계시가 이를 받는 사람편에서 이해가 동반되지 않고서는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이해도 되지 아니한 전례에의 적극적 참예란 바랄 수 없는 것이며 나아가서는 이러한 적극적 능동적 참예에 없는 전례는 하나의 마술처럼 보이거나 아니면 좋게 말해서 극장구경밖에 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베아 추기경은 한걸음 더 나아가서 의식과 기도문의 이해뿐 아니라 신자들은 의식과 기도문을 통해서 신비를 포촉하도록 해야한다고 발언했었다.(헌장 48)
▲이 원측을 미사의 「전문」(典文)에까지 적용하여 이 전문을 모국어로 그리고 큰소리로 드리도록(이미 시행을 보게되었지만) 될 것이라고 말한 융그만 신부는(4월 26일 현재) 산이를 위한 기도를 죽은이를 위한 기도(MEMENTO)의 위치로 돌려 같이 합하는 거와 같은 몇가지 사소한 변경까지를 포함한 「전문」의 개편을 하려 했으나 이 안은 더 높은 권위에 의해 취소되 버리고 말았다고 말하였다. 현재로서는 「감사서문경」을 수적으로 많이 증가시키는 안이 연구중이라는 것이었다. 「전문」의 결론인 「영광송」 『그를 통하여… PER IPSUM CUM IPSO…」은 그 성격상 직무적 사제직에만 속하는 것이 아닌 이상 참여하는 모든 이가 다같이 창하도록 할 것과 그 끝에 오는 『아멘』은 실질적 참여를 위해서는 너무 간단하다고 지적하면서 이에 대한 연구와 가능한 개정을 「마닐라」대회 이름으로 건의하게 되었었다.
또 이번 대회는 영성체의식에 대해 다음 두가지를 건의하게 되었다. 그 첫째는 성체를 영하는 각 사람 앞에서 지금처럼 『그리스도의 몸』을 반복하지 말고 한번만 하도록 하자는 것이며, 이것이 수락될 때 조금 더 긴 다른 경문을 만들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단체적으로 한번만 하도록 하자는 제안은 『보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로다』와 『모두 다같이 경배합시다』를 사제와 회중이 단체적으로 교창(交唱)하는 현행의 성금요일 십자가 공경의식을 보더래도 교회전통적 전례정신에 잘맞는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영성체의식의 둘째번 개정건의는 「손에 받는 영성체」였다. 현행의 「입에 받는 영성체」 의식에 따른 여러가지 실천적 면의 불편을 없이 할 수 있다는 이유외에 성경에 예수께서 『빵을 드시고 잡수셨다』는 말씀 그대로를 반복하게 되어 좋다는 제안자의 설명이 있었다.
이에대해 융그만 신부는 8세기까지 「손에 받는 영성체」였으나 특히 불경의 위힘의 이유로 현행의 입에 받는 의식으로 바꾸게 되었던 것을 말하면서 손에 받는 의식은 수락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는 개인의견의 피력이 있었다.
▲성영(입당 · 봉헌 · 영성체)때 성가를 부르는 것이 원측이나 더 정서적이요 직관적인 아세아민족들에게는 때로는 가사없는 악기만의 연주나 또는 종교적춤이 훨씬 더 깊고 직접적인 감명을 줄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더 완전한 참여를 위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말없이 음악과 춤을 허용해 줄 것을 건의하였다.
이 건의를 아세아 지역대회인 이번 모임의 전례분과위원회의 아세아적(?) 특징의 건의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건의를 결의하는 순간 나는 막연해지면서 재가 같은 아세아인이면서도 음악에 둔하고 춤을 출불 모르는 아세아인임을 자인해야 될 것인지 아니면 한마디로 아세아라고 해도 그야말로 광범한 지역안에 다원(多元)의 문화전통이 뒤섞여있는지 역(逆)으로 이해해야 될 것인지를 판단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 건의에 대해서 나와같은 한국인이면서 음악과 춤에 조예가 있는 전문가의 말을 듣고 배우고 싶은 심정임을 이자리를 빌려 말해두는 바이다. (계속)
李哲熙(부산교구 상서국장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