刷新(쇄신)하는 敎會(교회)의 本堂(본당)이란 무엇 ③
家庭(가정) 單位(단위) 司牧(사목) 置重(치중) 止揚(지양)코
職場(직장)·社交場(사교장) 生活(생활)까지를
都市本堂(도시본당)의 區域制度(구역제도)는 別無利益(별무리익)
도시본당의 제2특성은 구역적 제한에 있다. 본당의 많은 식자들은 바로 이 구역제한이 본당발전의 가장 큰 장해가되고 또한 모든 문제의 근원이라고 보고 있다.
오늘날 도시생활에 있어서 사람이 주거를 가지고 있는 곳과 일하는 곳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상종하는 곳과는 분리되어 있다. 오늘날 정치 경제 사회문화 사업은 이미 주택가와 교차되지 않고 있다. 즉 코린의 말처럼 『사람들은 이미 그들이 살고 있는 곳에 살고 있지 않다.』 달리 말하면 참된 활동이 있는 곳은 도심이지 고요한 주택가가 아니다. 소비자와 생산자는 이미 같지 않고 서로 분리돼 있다.
도시본당도 한정된 구역과 정착민을 기준으로 형성된 농촌본당 형태를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결코 도시실정에 적절히 부합될 수 없다. 예컨데 미국 「시카코」대학의 깁손·윈터 같은 분은 오늘의 본당이나 단체는 개인생활주변 즉 그의 가족, 그의 자녀, 그의 개인사업으로 기울어져 공동책임에서 소외돼 있으므로 이미 도시내면의 여러 문제에 대처할 수 없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흔히 주거지 기준의 본당은 큰 도시의 사회계급의 분리, 빈부의 차별을 잘 비추어 주는 거울이다.
그래서 어린이를 보살피는 문제 또는 학교계획 등은 본당계획에 의해 마비되어가고 있다. 본당신부도 아마 영성체자수, 기금모집을 성공한일 등을 굉장하게 열거함으로써 본당 중심주의를 강화할 것이다. 나머지 일들은 위축되어 가거나 이내 소멸되고 만다. 윈터는 「크리스찬 가정운동」과 같은 평신자사도직운동 마저 공적 봉사정신보다 개인 신심을 장려하는 본당형태와 활동으로 말아마 실패되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총체로 말해서 거주지를 기준으로 해서 이룩한 본당은 강력히 내부로 집중되어가는 힘에 효과적으로 저항하지 않는 한 본연의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 최근 우리는 서글프게도 인종문제와 빈부의 차가 심한 본당이 망해가고 있는 사실을 보고 있다. 크기와 구역제한으로 생기는 난점은 이렇게 많다. 본당을 발전시키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야겠는가? 장래의 계획은?
■ 來日의 本堂
쇄신계획을 세우는데 있어서 중요한 점은 다음 두가지 질문으로 집약된다.
첫째, 교회의 목적은 무엇인가?
둘째, 이 목적을 교회가 어떻게 가장 잘 성취시킬 수 있는가?
이같은 교회의 목적을 위해서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우리에게 선명한 지침을 제시했다.
교의헌장에서 말하기를 교회를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의 성사 혹은 증표, 전인류의 일치의 표면 갈등을 없애고 화해시키는 증표, 겸손하게 봉사하는 증표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말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본당 단위에 실천되어야 한다. 본당은 자체만을 포용하고 자체에 봉사하는 내향적 공동체가 되어서는 결코 안될 것이고 오히려 헌신적 봉사자가 되어야한 한다. 그래서 본당은 아픔을 낫게하고 화해시키는 신심행위의 집단이 됨으로써 역사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확인해야한다. 아마 이런 뜻에서 훌륭한 예는 미국 「밀워키」市의 「성보니파시오」본당일 것이다.
이 본당은 민권활동의 활발한 중심지가 되어서 인류의 공통요청에 대한 본당의 책임감을 일깨워 주는 항구한 단체가 되었다. 개인 신심은 필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신심은 또한 공적책임에 대한 신자들의 참여의식에서 울어나야 한다. 오늘의 가톨릭 신학자들은 복음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여하고 인간실존으로서의 인간생활전체를 다루는 것이라는 것을 특히 강조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