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정확히 이해 못한 중세기에 중국에서 전교하던 구라파선교사들은 저희들이 듣고 보고 살아온 가톨릭의 예식과 다르게 보이는 선조에 대한 효심의 예인 제사를 미신시하고 단죄했으며 대개 1백80여년전에 한국에 천주교가 들어온 이후부터 이조말엽에 이르도록 전교한 선교사들이 또한 같은 태도를 취함으로써 아직도 무지에서 눈을 뜨지 못한 이조의 선비와 관헌들이 눈 못뜬 강아지 방울소리만 듣고 따르는 식으로 중국의 방울소리만 듣고 무엇인지 모르고 그대로만 따르려는 그들과 꼭 같은 뻣뻣한 정신으로 대결한 선교사들의 주장이 싸운 결과로 한국초대 천주교회에는 2만이 훨씬넘는 순교자를 냈으며 순천자의 길(順天者之道)인 천주교의 진리를 좀더 일찍 받지 못하고 서구문명을 빨리 받지 못했기에 선비들의 높은 의관과 예복인 도포자락이 왜놈들의 구둣발에 짓밟히는 결과를 가져왔고 오늘에는 뚜렷한 예법하나 없는 민속 뒤범벅의 시대를 낳게된 것은 모두가 서로 이해 부족으로 고집을 부린데서 온 결과일 것이다.
우리는 이제 앞서 소개한 현대 가톨릭정신인 전례에 관한 헌장을 생각하면서 현시점의 한국신자들의 제사에 대한 관점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모든 이를 성교회의 품으로 불러들이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나 진흥시키려는 지향을 갖는 태도를 가져야한다. 신앙이나 공익에 관계없으면 엄격한 통일성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미신이 아닌 미풍양속이면 호의를 갖고 각 민족의 것을 보존하고자 한다.』는 뜻을 기억하면서 한국에서 현재 행하고 있는 예식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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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천주교회에서 1940년에 주교님들이 가르친 가하다는 조건들은 요지음에는 누구나 이해하며 어색함이 없이 행동하며 오히려 어떤 것은 우리교회에서 장려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되는 것도 없지 않다.
㉠시체, 무덤, 망자의 사진 이름만 적은 명패 앞에 절하는 것은 매우 좋은 예식의 표현일 것이다.
신자라고해서 그 앞에서 고개를 경건히 숙이는 묵념정도의 예를 표하는 것을 죄악시한다든지 혹은 부모나 선조께 지성을 드리느라고 큰절인 읍을 하는 것을 비웃는다면 그는 인간본심의 예의를 모르는 막난이 의심보일 것이다.
오히려 착실한 신자라면 외교인들 보다 더 한걸음 앞서서 그 앞에 고개숙여 예를 표한 후 무릎 꿇어 망자의 평화를 빌며 망자의 은혜를 생각하고 자신의 불효한 과거사를 뉘우침이 당연할 것이다.
㉡시체 앞에서나 제사때 향을 피우는 것도 좋은 예의다. 우리교회에서 향로에 향을 넣어 흔들며 피우는 서양식보다는 경건히 두손 모아 향기에 꽂아서 연기를 내어 망령께 대한 존경의 예를 표하는 정적(靜的)인 동양의 풍속은 더 알맞는 것이라 본다.
㉢제사때 음식을 차리는 것도 생시에 잘 잡수시던 음식을 차려서 망령을 기억함이 매우 자연적인 심리발로일 것이다.
어떤 이는 살아생전에 불효자가 죽어 효성이 지극하다는 한국양반의 행세를 비웃기도 하는 것은 죽고나서 잘 차리는 음식이 살아생전에 따뜻한 된장국 한 그릇보다 못하다는 말로써 신자들은 죽은 혼이 먹고 갈까? 하고 외교인들의 정성을 무시하고 미신인 듯 생각하기도 한다.
물론 현대의 외교인들이 드리는 제사에 미신적인 것이 있다고 볼 수 있는 점도 있다.
그러나 그것 역시 원래의 뜻을 생각한다면 크게 죄악시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최근의 한국의 지성인들이 고대의 풍속을 참작하여 현대에 알맞는 예의범절에 대한 책자를 낸 것이 있으니 「표준의례(標準儀禮)」이다.
거기에도 『망인이 생전에 좋아하던 극히 간단한 음식물을 진설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살아서는 이것도 잘 잡수시더니 하면서 울먹이는 과부가 된 할머니나 청춘과부가 된 어머니의 고사리나물 그릇에 흘리는 눈물은 미신에서나 오는 동작으로 보실 신자가 누가 있겠는가?
나의 생각에는 오히려 아무것도 차리는 정성 없이 또 제삿날도 기억치 않고 무심히 지내기보다는 그래도 선조의 은혜를 기억하며 음식을 차려놓고 이웃을 청하며 위령기도라도 바치는 신자가 더욱 효자인 듯싶다. (계속)
李鍾昌(경남 남해본당 주임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