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성심 신심] ㊥ 계몽주의에 溫氣(온기) 준 天主(천주)섭리
聖(성) 마르가리따에게 성심의 보화와 요청으로 발현
中世末葉(중세말엽), 그리스도 人間性(인간성)에의 숭배서 비롯
예수 성심 신심의 근원은 십자가에 달려 계실때 한 군인이 창으로 열은 예수의 심장이다. 성요한 복음사가가 여기서 찔렀다는 말을 쓰지 않고 열었다는 말을 쓴 것은 그 안에서 나온 구원을 암시했을 것 같다.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피와 물은 교회를 이루는 모든 성사들의 원천이다. 그러므로 피와 물을 쏟은 예수의 심장은 우리에게 대한 성자의 사랑을 뚜렷이 보여준다. 옛날 교부들이 이 신비스러운 사실을 인정은 하면서도 예수의 성심을 흠승과 애정의 대상으로 삼지는 않았다.
그런데 중세기 말엽에 이르러서 사람들은 구세주의 인간성에 대해 매우 구체적이고 다정한 숭배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독일의 신비가들, 그중에서도 특히 성 젤드루다(+1302) 같은 분은 창으로 열린 예수의 심장을 자기의 은신처와 천주의 사랑의 성전으로 보았다. 그후 성요한 에우레스(+1680)의 운동으로 교회가 공식으로 예수 성심의 공격을 받아들였지만 예수 성심에 대한 경배를 완전히 형성하고 온 세상에 선전한 이는 말가리다 마리아 알라콕(+1690)라는 연약한 한 여인이었다.
그는 불란서수녀로서 여러번 당신성심의 보화와 요청을 가르치는 예수님의 발현을 보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건 1675년 어느날 성체앞에서 조배하는 성녀에게 예수님이 나타나서 당신 거룩한 심장을 보이시고 그 지극한 사랑이 보답을 받지 못하시는데 대해 불평을 말하시면서 성심축일의 설정과 보속의 예배를 요구하신 저 발현이다. 그러나 개인계시에 의한 이 요청을 교회에서는 쉽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예수성심에 대한 고유미사를 허락한 것이 1765년 이었고 그 축일을 온 교회에서 지키게 된 것이 1856년이었다. 우리는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당시 얀세니즘의 엄격주의와 계몽주의의 합리론으로 인해 너무 냉냉해진 신심생활에 다시 온기를 넣어 주시려고 하신 천주의 섭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계속)
晋(진)토마스(왜관성베네딕또수도원수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