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⑨ 宗敎自體(종교자체) 스스로 惡(악)을 범해
現代(현대)는 個個人(개개인)이 한 종교를 형성해
발행일1968-06-16 [제623호, 4면]
『神을 믿으시요』라고 말하면 『왜 종교를 갖지 않느냐』고 물으면, 나는 대답에 매우 난처해진다. 믿지 않으니 믿지 않는 것뿐 이다. 왜 믿지 않는지 그 일만은 나의 일이면서도 나도 실은 모르는 것이다. 믿어서 나쁜 일이야 없을 터이지만 여하튼 나는 아무 종교도 아무 神도 믿지 않는다.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다는 말은 혹 무엇인가를 제나름대로 믿는다는 말이 될는지도 모른다. 그럼 꼭 종교를 믿어야만 선해지는 법일까, 나는 모르겠다.
어떻든 간에 이 세상에는 나와 같이 무식하고 우매한 사람이 너무나 많다. 왠고하니 우주만물을 창조한 全知全能한 분이 神이라고 하는데 그의 피조물인 인간은 창조주의 존재를 마땅히 인식해야 하면서도 실은 별로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니 말이다. 神이 全智全能하다고 한다. 정말 그런가. 神은 善을 유지하기 위해서 必要惡을 만들었다. 그런데 善이 유지되기 어려울 정도로 惡을 더 많이 만든 것이 아닐까. 神의 힘으로 우매한 대중을 깨우쳐야 할 종교 그 자체도 악의 앞에서 무력하지 않는가?
그뿐만이 아니라 절대 신성인 종교 그 자체가 善을 행하는 것에 비례해서 스로 惡을 범하지 않았는가. 종교는 人間과 함께 있다. 人間에 의하여 움직여 간다.
그러는 동안에 善을 행하느라 한 것이 실은 惡을 행했다. 여하튼 종교는 人間에 의하여 운영된다. 人間에 의하여 창설 되었다. 그렇다면 종교 속의 절대주인 神을 만든 것도 사람의 소행이 아닐까. 사람의 능력이 창조된 神에게 전지전능의 힘과 신비의 힘을 부여하고, 꺼꾸로, 우주만물을 창조하고 통괄하는 唯一者인 하느님으로 가공한 것이 아닐까. 하느님은 전지전능하나 그의 사도인 인간에 의하여 하느님을 모시는 종교가 惡을 범할 수도 있다. 인간이 하는일이니까. 그렇다면 人間을 보자. 종교마저도 惡을 범하게 하는 人間을. 인간이란 그 자체가 한쪽은 神이고 한쪽은 악마가 아닌가. 善惡의 양면을 가진 一元體가 바로 인간이다. 그럼 인간은 왜 선악의 양면을 갖고 태어났을까.
地球의 生物에 주는 우주의 氣運이 바로 이 선과 악을 동시에 주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세상만물이 선악의 양면을 소유할 수밖에야. 세상에 善만 있으면 善도 惡도 필요 없다. 惡만있어도 惡도 善도 있을 수 없다. 惡은 善이 존재하기 위해서 있다. 그러나 실은 이 악이 우세하지 않으면서도 우세한 체 가면을 쓰고 날뛴다. 『우리의 종말이 왔으니 하느님을 믿으라』고 부르짖을 정도로 날뛴다.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영원히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 인간이란 모순체인데 남들은 이 惡을 몰아내기 위해서 각자의 寺院으로 간다.
善을 지키면서 善의 가면을 쓰고 惡을 행하기도 한다. 人間이니까 좋다. 神이 전지전능하고 인간을 자기 모습대로 창조했던, 사람이 신을 발견했든, 혹은 창조했든 간에 여하튼 하느님을 터득한 사람들이 하느님께 까지 멋대로의 명칭을 부여했다. 따라서 그때 그때 부르는 대로 기독교의 神이되고 불교의 空이되고 공자의 中이되고 易學의 土가되고 宇宙理性이 되었다. 하느님 하나를 두고 수많은 宗敎가 생겼고 한 종교에서 많은 宗派를 형성하다 못해 드디어 各者가 한 종교로 되어 가고 있다.
옳다. 各自가 自己宗教가 되라. 더 나아가서 自己敎의 하느님이 되라. 하느님은 도처에 있지 않는가. 교인인 척은 하지 말아라. 나는 교인이니 그런 짓을 못한다고 교를 팔고, 교의 가면을 쓰고 惡을 행하지는 말아라.
不幸히도 나에게는 남을 도와 줄 힘도 없다. 남에게 선을 베풀 정도로 선하지도 못하다. 웬고하니 내가 하느라는 선이 남에게는 악이 될 수도 위선이 될 수도 있을 터이니까. 그 반대로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 대신 남이 자기 敎의 하느님이 되어 가는 동안에 나는 내 마음속에 있는 하느님에 충실 하련다. 最善을 다하고 最大의 努力을 기울여서 「나」를 지킬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