忘却(망각)을 이긴 詩人(시인) 제랄드·홉킨즈
人間(인간)타락 후 세계 窮地(궁지) 상징
定型詩(정형시) 無視(무시)한 長詩(장시)「도이취란드號(호)의 難破(난파)」…
至福(지복)의 幻想(환상), 苦痛(고통)으로 强烈(강렬)
실패 희생만이 구원의 전제
1868년 홉킨즈는 드디어 화가나 시인이 되려던 그의 소년시절부터의 희망을 버리고 예수회에 들어가서 「제스잇트」가 되었다. 그곳에서 9년간의 神父의 수업을 시작했다. 그는 그곳에 들어가기 전에 쓴 모든 詩를 불살라 버렸으며 성급자의 명령없이는 다시 시를 쓰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이리하여 우리는 홉킨즈의 초기 詩의 거의 다를 잃어버리고 말았으며 지금 4·5편의 시를 대할 수 있을 뿐이다.
이리하여 홉킨즈의 시적 침묵은 7년간이나 계속되었으나 1875년 독일에서 추방된 5인의 수녀를 태우고 온 「도이취란드號」가 「뎀즈」강 입구에서 難破되어 수녀들이 익사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수도원장의 願에 쫓아 長詩 「도이취란드號의 難破」를 씀을 계기로 해서 그의 詩作 생활이 다시 계속되었다.
이 長時는 그 형식과 기술의 혁신때문에 당시의 물이해에 의해서 발표를 거절당했으며 이로 인하여 홉킨즈는 생존시에 시인의 칭호를 받는 기회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이 詩에서 당시 가장 문제된 것이 韻律인데 홉킨즈는 시에서의 영시표준운율을 사용하지 않고 그가 창안한 스프링리듬(跳躍韻律)을 사용하였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보아 7년간의 홉퀸즈의 시적침묵은 시에 대한 포기가 아니라 꾸준한 실험과 준비의 기간이었다. 지면상 이 시의 몇 편이라도 소개하지 못하여 유감이지만 시적 내용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이다.
「도이취란드號의 難破」는 35연의 頌歌의 장시로서 고위수녀의 극적 에피소드를 지닌 파선을 다루고 있는 설화 같이 생각되지마는 사실은 이 시의 근본성격은 서정이다. 다만 배의 조난은 이 詩人이 하느님에 대한 자기의 신앙과 수난의 문제 즉 인간생활의 비극상에 관한 자기의 고뇌스러운 감정을 조화시키는 장식물로 사용하고 있다. 「도이취란드號의 難破」는 인간의 타락 이후의 세계의 궁지를 상징하는 것이며 이 지상의 삶에서의 인간의 필연적 조난을 상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시의 내용은 세계와 인간의 궁지에 대한 해결에 그 촛점을 두고 있다.
6연과 9연에보며는 인간의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고뇌의 극치가 그리스도의 수난으로 상징되고 설명되고 해결되고 있다. 이 시인은 인생이란 시련기이고 罪降消滅期이라 했다.
우리도 그리스도처럼 고통을 받아야하며 희생물로 자신을 바쳐야 한다. 그리스도가 그랬듯이 우리도 실패로서 승리를 얻을 수 있게 준비해야 한다. 이러한 손실과 패배를 보상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제공이다. 이 결과는 신자에 대한 하늘의 보상인 것이다.
신자는 이러한 至福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자연의 美와 샘의 즐거움을 기대한다. 이러한 환상이나 기대는 상반되는 고통 때문에 더욱 강열해 진다. 기쁨과 슬픔은 신의 역설적 본질로서 시인의 신앙에 의해 조화되고 있다. 신은 준엄한 주인인 동시에 자애로우신 아버지인 것이다.
대체로 이러한 내용을 2부로 나눠 노래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가서 이 시의 서두연에서와 같이 신과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과 찬양의 송가를 부르고 영국의 개준을 위한 仲裁祈禱文을 대신하는 익사한 수녀들의 변호로 끝맺고 있다. 지면관계상 서두시의 한연만 소개한다.
나를 지배하시는 당신은 신이여! 안식과 양식의 제공자
세계의 선창, 바다의 지배자
生과 死의 君主
당신은 나를 뼈와 피로 매시고 육을 씨우고
두려운 것은, 이것을 따라 모두 망하였도다.
당신의 役事로, 나를 새롭게 하소서!
온 누리에 나는 당신의 손가락을 느끼고 당신을 봅니다.
시인 엘리움은 이 시를 읽고 홉킨즈를 단 이후의 위대한 종교시인이라 했다. 이 시에서의 그의 혁신적 기교, 참신한 이미지와 깊은 신앙적 몸부림은 우리에게 전율적 감동을 주는 것이다. (계속)
金榮秀(英文學·馬山大學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