忘却(망각)을 이긴 詩人(시인) 제랄드·홉킨즈
自然(자연)·人間本質(인간본질)서 神的影像(신적영상) 찾아
創造(창조)의 多樣性(다양성) 찬미…詩(시)「얼룩진 美(미)」
“미래에 영향 끼친 빅토리아 朝唯一(조유일)의 詩人(시인)”
1877년 홉킨즈는 9년간의 수업을 마치고 신부가 되었다. 이해는 그에게 있어서 시작업도 가장 풍요한 때였다. 홉킨즈의 그 독특한 시론의 形而上學的원리는 신부수업 중 신학과 철학을 연구한데다 중세철학자 단 소콧트의 영향을 받아 형성한 것이다.
그것은 사물의 공통성 보다는 사물의 특이성에 민감하여 한점의 구름에서 한 송이의 꽃에 이르기까지 그곳의 생성과 死滅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며, 사물을 서로 특이케 하고 구별케 하는 사물의 樣相에 주로 흥미를 집중시키는 것이었다. 홉킨즈의 詩가 기괴하고 난해하다는 평을 받는 것은 韻律에도 기인하지만 대체로 이러한 이론에 따른 시적표현을 한데 있다. 신부가 된 킨즈는 1877년에서 1881년까지는 「런던」 「옥스포드」 「리버풀」 「체스터필드」에서 설교자로 선교사로 또는 교구신부로 봉직하면서 꾸준히 詩作을 계속하였다.
이때의 그의 시들은 거의 즐거운 것으로 자연에서의 신의 영상을 노래했고 신과 인간본질의 신적영상을 노래하였다.
그러나 공업도시 「리버풀」에서는 그 시대의 무자비한 공업주의를 비판한 시도 썼다.
1882년에서 1884년에는 「부랙본」의 「스토니홈」대학에서 희랍어와 『라띤」어를 강의하였고 「더브린」대학에서 고전학교수로 봉직한 4년이 그의 마지막 공직이었다.
1877년에 홉킨즈는 10여 편의 「소넷트」를 썼는데 그 작품들은 그의 시적감동과 개성과 시적 특이성(신적영상)을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것들이다. 예를 들면 「얼룩진 美」란 시는 신의 창조의 다양성으로 신을 찬송하는 일종의 目錄詩이다. 즉 다채롭고 아롱지고 영묘한 빛깔로 세계는 되어있다고 했다. 이것이 그의 독특한 종교적 신념에 응용 표현되어 있다. 사실 이 한해의 시만으로도 그의 종교인으로서 자연인으로서의 탁월성은 증명되는 것이며 어느 작품에서도 그의 예민한 감각과 독창성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그 중에서 <별 빛나는 밤>과 <황조롱이>는 걸작중의 걸작이다.
별들을 보라! 하늘을 쳐다보라!
오, 虛空에 앉아있는 모든 불사람들을 보라!
여기 밝은 都市와 圖形의 城廓을!
저 아래 어두운 金剛石굴을! 妖精들의 눈을!
숲이, 生金이 가로놓인 잿빛 차가운 잔디밭을!
바람에 쏠리운 하얀 마가목을! 불지른 아스라한 白場을!
農家의 뜰 무서운 것에 놀라 떠가는 눈송이 비둘기를!
아 그렇군, 그것은 모두 값이 치이는 것. 모두 값나가는 것.
이제 사라! 그러면 값을 부르라! 무엇을 드릴까? 기도와 인내와 자신과 盟誓를,
보라, 果木가지위와 같은 5月의 잔치를!
보라! 노란 가루 묻은 버들가지 같은 3월의 꽃을,
이것들은 진정 헛간,
그안에 곡식단을 거두어들이고 있다.
이 샅샅이 빛나는 타리를 보신다.
신부 그리스도를, 그리스도와 그의 어머니와 모든 그의 者들을,
-별 빛나는 밤-
이 시는 별돋는 밤하늘에 대한 경이가 기발하고 희미한 「이미지」로 숨막히게 묘사되었으며 사물을 동적으로 파악하는 홉킨스의 지각의 특징도 잘 나타나 있다. 또 그는 여기서만 아니라 모든 시에서 신앙에 입각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
1889년 6월 8일 열병으로 세상을 떠나 그의 소망이던 <天上의 港口>를 향해 <나는 幸福해, 너무 幸福해>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떠났다.
비평가 F·R·리브즈는 『그(홉킨즈)는 우리시대와 미래에 있어서 唯一한 영향력을 지닌 빅토리아 시인으로 나타나는 것 같고, 나에게는 더욱 偉大해 보인다』고 했다. (끝)
金榮秀(英文學·馬山大學敎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