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나다 神學者(신학자)大會(대회)서 刷新(쇄신) 摸索(모색)하는 敎會(교회)들 (下)
“司祭職(사제직)“ 主敎(주교) · 信者協力(신자협력)으로
20世紀(세기)에도 修德(수덕) · 淸貧(청빈) · 獨身(독신)은 해야
夫婦愛(부부애) · 産制(산제) 眞摯(진지)하게 討論(토론)
社會正義(사회정의) 具現(구현)할 「革命(혁명)」 支持(지지)
루터의 破門撤回(파문철회) 또 主張(주장)
【토론토 · 카나다 RNS · NC】 연학(硏學)성성의 가로느 추기경은 교회쇄신 신학을 토의하는 이번 신학자대회에서 내일의 사제직은 『언제나 사제』라는 말을 제외하고는 결ㄴ코 정의될 수 없다고 말했다.
가로느 추기경은 주교직 신학과 평신사도직 신학으로 통합된 사제직 신학을 제창하고, 사제에 대해서 언급할 땐 반드시 『주교들의 연장(延長)으로서 또한 평신도와 함께』라는 말을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사제직의 역할이 앞으로 감소되기는 커녕 오히려 사제독신제와 청빈(淸貧)의 정신이 재강화될 것으로 내다보면서 내일의 사제들은 전보다 더욱 절실하고 새로운 수덕(修德) 방법을 발견해야 하며 그 방법은 기구와 침묵과 묵상고 연구 및 종교적 윤리적 훈련을 통해 발견될 것이라고 언명하고, 되돌아 갈 수 없는 항로로 출범(出帆)한 오늘의 사제들이 도시화나 산업화와 같은 사회현상에 연유하는 불안과 죄악상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현실을 지적, 사제직 신학은 다른 신학과 마찬가지로 교회안에서 생동하는 하느님의 말씀의 빛을 통해 하루빨리 확립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구라파에서 온 두명의 신학자는 교회가 세계에다 사회정의를 보장하기 위해 무력혁명을 지원할 수도 있다고 역설하여 주목을 끌었다.
독일 「뮨스터」대학교의 메쯔 박사는 타(他)를 위해 정의(正義)와 자유를 구현하는 것이 그리스도교 사랑의 절대적 사명이라면 그 사랑은 어떤 상황하에서는 혁명적 성격을 띤 행동을 필요로 할 수도 있다고 하면서, 만일 현 사회가 혁명적 사태로 야기될 불법행위보다 훨씬 더 많은 부정의(不正義)를 내포하고 있다면 혁명은 그리스도교 사랑의 이름으로도 용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신학에 관한 연설을 통해 이같이 말한 메쯔 박사는 모든 사회에 대한 교회의 비평적 자세확립을 촉구했다.
벨기 「루벵」대학교의 우따르 신부는 사회적 발전이 급격히 성장되는 지역도 있고 그렇지 못한 지역도 있음을 지적하고 남미와 같은 곳에서는 이때까지 무력혁명에 의해서만이 성취되어 왔던 일종의 혁명적인 정치적 변화를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월남전쟁에 언급, 전세계가 저개발국 원조비로 1년동안 쓸 수 있는 금액을 미국은 월남전을 위해 한달만에 소비하고 있음을 개탄하면서 월남은 이제 저개발국과 선진국, 빈자(貧者)와 부자(富者), 피압박자와 압박자 간의 싸움의 상징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교회가 교황대사를 통해 정치에 관여하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요구한 「시빌따 까똘리까」지의 뚜치 신부와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교 신앙과 식민지 정신을 관련시키는 가난한 나라에서 교회가 겉치레 비용을 많이 쓰고 있다고 비난하고 지독한 가난에 허덕이는 어떤 남미 정부가 교황대사관을 신축하기 위해 1백만 「달러」를 제공한 사실도 밝혔다.
▲「옥스포드」 「마머빌」대학의 철학자 앤스콤 여사는 가톨릭부부는 자녀생산이 목적이 안니 성(性)생활을 영위할 자격을 부여 받았으며 성생활은 자녀생산보다 부모의 복지를 위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리고 독일의 신학자인 해링 신부는 전통적 산아제한 금지규정은 출생률이 낮고 사망률이 높았던 근대과학 발생이전(以前)에 생긴 것이므로 현대에 적응시켜 개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그는 가톨릭 교회가 16세기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에 대한 파문(破門)을 철회해야 한다고 말하고, 교황과 주교대의원들이 루터를 용서하는 뜻을 표명해 줄 것을 희망하면서 루터는 가톨릭교회를 뛰쳐나갈 의향이 전혀 없었으나 당시이 성청 당국이 루터를 강제추방한 사실을 강조했다.
이어 그는 『루터가 파문당하지 않았어야 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후, 가톨릭교회는 추터를 파문시킨데 대한 책임을 인정하고 후회애햐 하며, 동시에 프로테스탄도 교회쇄신을 계속 추진하지 못한 것을 참회애햐 한다고 말하고 오늘의 프로테스탄은 특히 교리문제에 있어서 16세기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