刷新(쇄신)하는 敎會(교회)의 本堂(본당)이란 무엇 ④
本堂運營(본당운영) 사목활동에 信者(신자) 參與(참여)케
家庭單位(가정단위) 禮拜(예배) 指導(지도)와 汎宗敎(범종교) 本堂(본당)
專門分野(전문분야)나 職業別(직업별) 司牧(사목)이 效果的(효과적)
■ 本堂안에서
우리가 제시하는 다음 네가지 방안을 본당단위에서 실험해 보도록 권장하고 싶다.
첫째 본당 운영위원회를 조직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본당 사목 활동과 운영전반에 걸쳐 적극적으로 참여하도록 할 것.
둘째 가정예배를 장려할 것. 예컨데 선진국가에서 가정미사를 허용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
작은 「그룹」의 신심행위와 큰 그룹의 신심행위는 전체의 신심을 더욱 돈독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같은 방법에는 정신적 고자세라든지 분과적인 경향을 조장할 위험은 있다. 그러나 신부가 유능하다면 가정에서의 전례와 본당에서 해야 할 전례를 잘 파악해서 조절할 수 있을 것이며 작은 「그룹」의 신심행위에서 얻은 경험을 주일의 신심행위에 반영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피정지도를 해보면 강론이 성경의 기쁜 소식을 전해 준다기보다는 오히려 친밀하고 생활한 공동 신심행위에 대한 경험이 궁극적으로는 더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세째 앞으로는 좀 더 작은 본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본당은 구역제로 할 것이 아니라 공동직업이나 공동관심사를 기준으로 해야 할 것이다.
최근 영국 「런던」의 「온타리오」교구에서 신자들의 교육정도와 그들의 수입 및 직업을 참작한 본당조직을 실험한 결과 좋은 성과를 거두었다. 우리의 입지조건에서 이런 시도는 불가능 할지모르나 실험해보지 않고서는 절대로 이런 시도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없다.
끝으로 우리는 몇군데다 「에꾸메니칼」 본당을 세워서 적어도 「말씀의 전례」만이라도 같이 참석케 하고, 성체성사 때는 명백히 구분함으로써 가슴 아픈 분렬상태를 실감토록 했으면 좋겠다. 대담한 모험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에꾸메니즘」(교회일치 정신)이 이러한 일상 신심생활 구조에 포함되지 않는다면 과연 대중에게 얼마만큼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 本堂 相互關係
이같은 실험은 한 本堂단위에서 뿐만아니라, 인근 본당 상호간에도 실시해볼 필요가 있다. 미국에서 실시한 실태조사결과에 의하면 감독區域制로 말미암은 폐단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깁손·원트 교수는 흥미있는 본당상호간의 협력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의 저서 「교회의 도시적 침체」에서 그는 地區司牧에 대한 여러가지 문제를 서술하고 있다. 많은 本堂은 수입면이나 사회적 환경이 다른 신자들이 함께 일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어떤 중간 「그룹」으로써 본당 상호간에 연수(延髓)관계를 이루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예를들면 한 학교가 여러 본당의 학생들을 받아들여 교육한다든가, 신부들이 한「팀」으로 같이 기거(起居)하면서 각자의 전문분야에 따라 교리 꾸메니즘, 청년지도, 결혼지도를 효과적으로 맡을 수 있는 것 등이다.
일개 본당의 개별적 활동 보다는 이와 같은 본당 연합전선과 총괄적인 사목방침이 공동체의 여러가지 문제를 더 효과적으로 더 폭넓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고, 사회개혁이나 현실적인 빈곤문제 등에 보다 적절히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당장에 이러한 상호협력방안에 대한 매혹적인 청사진을 제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자기 본당위주를 고집하는 좁은 시야에서 탈피하려면 본당상호간에 어떤 공동계획을 실현시킬 필요가 있다.
좋은 지향만으로는 사명을 완수할 수 없다. 기구개편이 필요하다. 인간의 효과적인 활동은 좋은 지향의 결과만은 아니다. 인간은 자신이 처해있는 기구의 영향을 받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오늘의 가톨릭교회는 기구개편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점차로 고조되고 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