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아 司牧(사목) · 敎理硏究(교리연구)」 參席記(참석기) - 告解聖事儀式(고해성사의식)의 改革(개혁)
現行(현행) 「告明(고명)」爲主(위주) 告解(고해)
痛悔(통회) · 信心(신심) 深化(심화)에 차질
루터 以後(이후) 지나친 護敎的(호교적) 姿勢(자게) 때문
▲ 「트리엔트」 公議會 ▲
그러나 「스콜라」적 정신이 영향을 주었던 「트리엔트」 공의회는 『모든 대죄는 낱낱이 고백을 해야된다』고 못받아 놓은 것이다. 더욱이 천주의 법으로 그러하다고 첨부하였다. 앞에서 진술한 역사적 고찰에서 본 교회초기 1000년대 긍하는 일반적 고백 및 일반적 사면의 실천에서 보다 「트리엔트」 공의회가 더 많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한마디 말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니다. 융그만 신부는 위에 말한 역사적 고찰은 부동의 사실(史實)이라고 말한 다음 이 문제에 관해 「트레엔트」 공의회를 학적으로 연구한 신학자가 오늘까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지적하면서 앞으로의 진지한 학술적 연구만이 오른 해답을 발굴해 낼 것이라고 시사한 바 있다.
가만 이 자리에서는 우리가 다음 몇가지를 간단히 생각해 보기로 한다.
▲ 解決의 試案 ▲
성서의 영감문제에서 성서의 문학적 비판과 역사적 비판이 있는 것은 주주의 사실이다. 성서가 영감을 받은 진리의 책이지만 그러나 어떸 구체적인 문학적 유형에 속하며 구체적인 환경을 가진 역사의 일시점에서 쓰여진 책이기 때문에 그의 이해를 위해서는 이러한 모든 점을 참작해야 된다는 것 뿐 아니라 초시대성이 없는 것은 탈각 시켜야 되는 것이다. 이 원측은 우리의 당면문제(공의회)에도 적용된다. 그런데 「트리엔트」 공의회의 특수성은 앞에서의 지적한 바와 같이 첫째 「스콜라」적 정신의 영향의 있었다는 것이요 둘째는 방어논쟁의 의미로 호교적 입장에 있었다는 것이다.
「스콜라」학파 출현 이전의 초기교회에서는 죄 상호간과 소죄와 대죄며 흉악죄와 의 구별이 분명히 서있지 않았었다. 따라서 고해성사의 질료(MATERIA · 고해꺼리)가 불완전했다고는 일단 양보해주더라도 그 형상(FORMA)은 비록 일반적 사면의 형태하에 되었을 망정 불완전했다고 아무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질료의 「스콜라」 정신적 완전성에 있어 즉 죄의 고백의 완전성에 있어 객관적으로는 완전한 죄의 구별을 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주관으로 이것을 완전하게 한다는 것은 극난의 일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일반 대중을 생각할 때 완전한 죄의 구별을 전제한 완전한 고백이란 어쩌면 바랄 수 없을 정도로 극난한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리엔트」적 현행 고해성사의식은 이 고백에다 중점을 두고 가장 중요한 통회를 경시하는 것 같은 -적어도 실천면에서- 느낌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극논한다면 고해소에 가서 입으로 죄 고하기만 하면 죄의 사면은 물론 만사해결된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폐단적 부작용이긴 하지만) 마저 없지 않다는 것이다.
루터로부터 공격받은 교리를 수빅 · 방어해야 할 수득이한 입장에서 「트리엔트」 공의회가 처해잇었던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하고 또 그후의 신학연구는 자연 공격받은 부분에 더 경주된 나머지 그 부분이 지나칠 정도로까지 강조되고 발전된 것은 이해해야 될 일이다. 고해성사교리도 이 부류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공의회는 이러한 과거의 논쟁의 때에 막을 닫고 대화와 교회 재일치 운동의 새로운 시기를 열어놓은 것이다. 고해성사의식의 개혁도 이러한 새로운 시안으로 관찰되어야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 內面化의 努力 ▲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예컨대 교회헌장) 신학적 태도의 하나는 과거의 외부적 제도적 법률적 관찰을 탈피하고 내면적인 생명력의(은총) 중시에로 옮아진 것은 우리가 아는 바이다. 고해성사론도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비록 서두에서 우리가 고해성사의식의 개혁이라고 하였을 망정 이것은 어떠한 외면적 변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며 기도하는 개혁의 핵심은 더 깊은 내면적인 데에서 찾아야 될 것이며 구체적으로는 통회 우선이 바로 그 하나인 것이다.
만부득이한 때에는 통회만으로서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다는 교리는 누구나가 다 잘 알고 있느 ㄴ바와같은데 이 점은 바로 통회의 중요성을 무엇보다 잘 입증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고해성사개혁에서 기도하는 내면화의 또한가지는 사제가 외우는 사죄경의 변경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생의 사죄경(EGOTE ABSOLVOAB OMNI CINCULO…)은 무엇보다 교회법측에서의 사면을 뜻하는 것 같은 인상을 풍기고 있는데 그래서는 안되겟다는 것이다. 원래 모든 대죄는 모든 성인들과의 상통(통공)에서 제외됨과 동의어이며 반대로 죄사함을 받음은 같은 상통에로 다시 돌아옴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신자됨은 성세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와 함께 됨으로써(INCORPORATED, 교회헌장 NO.31)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크리스챤 실존은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다. 신자는 일순간도 비사회적인 존재일 수 없다. 신비체의 머리신 그리스도와 합체되고 그를 통하여 신비체의 지체인 모든 신자와 합체됨으로써 신자는 존재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러한 그리스도와 그리고 다른 모든 신자들과의 관계를 떠난 신자란 생각할 수도 없고 또 있을 수도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들 신자의 공 · 과(功過)간 모든 행동도 자연 사회적일 수 밖에 없으며 신자 한 사람의 선행은 신비체 전체를 빛나게 하는 것인 반면 신자 한사람의 죄는 천주께 뿐 아니라 신자 전체에게 대한 범죄인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고죄경에도 있는 바와 같이 우리의 죄를 전능하신 천주께와…모든 성인들 그리고 모든(신자) 형제들에게 고백하며 용서도 청하고 우리 죄의 사면과 화해도 이러한 모든 관계에서 이루어지기를 기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죄와 죄의 사면 그리고 나아가서는 고해성사가 자체의 사회적 성격은 우리의 성사생활에 되살려야 되겠는데 이것은 일반적으로 고백과 사면으로 그 실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일반적 고백과 사면은 곧 신자공동체 앞에서 하는 공동적 고백이며 사면이기 때문이다. 즉 일반적 고백과 사면에 의한 고해성사 의식의 개혁(시안)은 제2차 「바티깐」적 신학태도의 하나인 내면화의 노력의 일단임을 강조하는 바이다. - 계속 -
李哲熙(부산교구 상서국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