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⑩ 信仰(신앙)은 죄의 참회서 비롯
現實(현실)의 國家民族(국가민족) 위해서도 힘써야
발행일1968-07-07 [제625호, 4면]
前世代의 우리나라사람들이 儒敎를 숭상하는 이가 많았더니 만큼 필자도 유교의 가정에서 자라나서 종교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듣지 못했다. 또 솔직히 보아서, 유교는 종교라 하기는 어렵다. 종교는 信仰의 對像이 있어야하는데 유교는 일상생활의 도덕을 많이 말하였을 뿐이요, 어떤 대상을 믿는 다는 것은 아니다.
어려서 4·5살 때에 봄철, 산에 가서 진달래꽃을 한아름 꺾어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가 보고 깜짝 놀라면서 『너 웬꽃을 그렇게 많이 꺾었냐. 죄로 간다』고 하시는 말씀에 몸시 잘못한 줄 알고 울면서 꽃을 땅에 떨어뜨렸다. 그 후로 어린필자는 늘 그 죄로 벌역을 입을 듯이 맘에 걸려 참으로 잘못하였다고 후회하였었다.
버트란드·럿셀은 「사람은 죽음을 무서워하는데서 종교를 믿게 된다』고 하였지만 필자는 사람이 죄를 후회하는데서 종교 신앙의 싹이 트는 것이 아닌가 한다.
15·16살 때에 서울왔다가 종현천주교당에 한번 가본 일이 있으나 그때는 성당의 외양이 정려한 것만을 신기하게 여겼을 뿐이다.
스물한살때 이 나라에는 3·1운동이 일어나고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가 모두 天道敎人 예수교인 불교인인 것을 보고 이렇게 나라와 민족을 위한 고난의 일을 맡아서나서는 이가 종교를 믿어서 희생정신이 강한 때문이 아닌가 하였다. 이때부터 예배당에 몇번간 일도 있으나 종교를 신앙 한다느니 보다 그런데를 다 님으로 민족정신이 함양되고 또 그런 곳에서 독립운동이 진전하는 소식을 듣기 위함이었다.
스물한살때 기자생활을 시작하고 우리역사를 읽는 중에 천주교가 대원군때 받던 박해로 여러만명의 교인들이 순교한 기록을 감명 깊게 읽었다.
명동성당을 생각하면 일생을 한국선교에 바친 위텔 대주교가 생각난다. 필자가 그에게 나이를 물었을 때에 그는 서슴치 않고 우리말로 甲寅生이라고 하였으니 1854년생이다. 1866년 대원군이 한참 주교도를 학살하던 때는 그가 13살이던 소년이었을 것이다. 19세인가 20세 때에 꽃 같은 소년으로 이 나라에 잠입하였다니 1873년 경일 것이다. 그는 방갓을 쓰고 상주같이 차리고 잠입하여 80세에 이 나라에서 돌아갔으니 60년 동안을 이 나라포교에 바친 것이다.
어느 여름밤에 그는 필자를 이끌고 성당앞 잔디밭에 앉아서 이집은 甲午年에 지은 것이요(1894년부터 여러 해가 걸려 지은 것) 그때는 한국에 벽돌도 없고 철도도 없을 때라 중국 山東城에서 벽돌을 구어서 배로 濟物浦(仁川)까지 실어다가 인천서 서울까지는 말(馬) 등으로 실어 중국인 건축가의 손으로 지은 것이라』고 회고담을 하였었다.
어느 여름날에 그를 찾으니 누른 띠로 맨 조선 종이의 큰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그때 政院日記 중에서 병인양요를 전후한 부분을 초출(抄出)해 낸 것이다.
그는 순교한 한국 사람들을 聖人으로 모시려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때 대원군이 집권한 정부에서는 현재도 믿고 장래도 믿겠다면 목을 베어 죽이고, 믿지 않는다 하고 또 장래도 믿지 않겠다고 하면 살려서 놓아준다고 하였었다. 그러나 그 일기에 쓰인 것을 보면 죽더라도 믿고 또 믿겠다고 한사람이 대다수이요, 믿지 않겠다는 사람은 소수였다.
죽기까지 신앙을 변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依法處斷 되었었다.
뮈델씨는 이분들은 모두 성인이라면서 읽어 가다가 그중에 「少有動」(=살려고 신앙을 버리는 듯 조금 움직임) 하다는 사람의 대목에는 이것은 背敎者(배교자)하면서 가볍게 책장을 넘기는 것이었다. 신앙으로 목숨을 바친 이에게 필자는 깊은 경의를 표한다. 종교가 아니라도 자기의 신념(信念)에 사는 사람은 존경해야 한다. 필자 자신은 아직 어떤 종교에 적을 두지 아니하였으나 인생에게는 종교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는다.
첫째론 무한한 宇宙를 有限한 인생으로 보면서 허전함을 느끼는데 종교는 이 무한과 유한을 서로 合一하게 하는 것이요, 다음으로는 인간성을 그대로 두면 이욕에 눈이 어두어 惡化의 길로 달리기 쉬운데 종교는 이것을 견제하는 「뿌레익」 작용을 하는 것이요, 세째는 사람과 협동정신을 기르도록 쉬지 않고 훈련하고 자기의 잘못을 反省하는데 큰 힘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먼저 나라와 義를 구하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종교적으로 靈을 구원하는 뜻이요, 세상에서 말하는 나라나 정의와는 다른 것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일제아래서 박해와 압박으로 일생을 지낸 필자로서는 종교의 지도자나 신자에게 우리가 보는 현실적인 국가나 민족의 지상행복을 위하여도 힘썼으면 좋겠다고 희망을 건다.
더욱 국토의 반을 종교를 반대하는 공산도배에게 강점당한 우리로는 우선 지상의 나라나 민족을 구하지 않고는 종교도 설자리가 없게 되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