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18)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④
발행일1968-07-07 [제625호, 4면]
『참 기가 막혀서 꼭 연극같은 말씀을 하고 계시군요』
처녀는 하는 수 없다는 듯이 한번 또 입가에 미소를 띄었다.
『아니오. 연극이 아니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이오. 나는 그 사람을 꼭 찾아야 하오. 어떤 일이 있든지 찾아야하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죽어도 눈을 감지 못할 것이오. 그러니 대단히 실례지마는 처녀의 성명을 말해보오』
『정 그러시다며는 선생님의 성함을 먼저 대어 보세요. 선생님은 대체 어디계신 누구시지요?』
처녀는 당돌하게 윤 사장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렇게 하시오. 나는 동서무역회사 사장 필립·윤이오. 그렇지만 그것은 외국에서 쓰던 이름이고 원 이름은 윤필로(尹必老)이오.』
『네? 윤필로씨라구요?』
이름을 듣는 순간, 처녀의 눈은 크게 떠지고 입조차 딱 벌려졌다. 자기를 짓궂게 따라온 중년신사가 바로 요즘 해외자본으로 우뚝솟은 동성무역회사의 사장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그러나 처녀가 놀라는 것은 오직 그것 뿐만은 아닌 것 같았다. 처녀는 몹시 놀라는 눈치었다.
그러나 다음순간, 그의 얼굴에서 놀라는 빛은 일시에 가셔버리고 그대신 앙칼진 긴장이 서리었다. 처녀는 아무말없이 윤 사장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호호호호…』
하고 웃음을 터뜨리었다
『아니 선생님께서는 동서무역회사 사장쯤 되시는 분이 그렇게도 어리석은 짓을 하세요.』
한번 웃은 후에 처녀는 전색을 하고 말을 끄내었다.
『왜 그러지?』
윤 사장은 어리등절해서 묻는 수밖에 없었다.
『적어도 그만 하신 연세에 사장자리에 계신분이 아무리 사람을 급하게 찾으시기로서니 길에 지나가는 사람을 아무나 붙들고 이름을 물어보시다니요. 더군다나 저는 젊은 여자가 아니어요?』
『허허허허…』
윤 사장은 어색한 웃음을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기에 만약 내가 잘못 보았다며는 손이 발이 되도록이라도 사과를 하겠다고 하지 않았소. 그러구 나는 지금 사정이 절박하오. 하루라도 빨리 찾는 사람을 찾아야할 형편이오』
『대체 찾으시는 분은 누구시지요?』
처녀는 넌즛이 묻는다.
『김명예(金明愛)라는 여인이오. 그리고 그에게 정아라는 딸이 있을 것이오. 만일 죽지 않고 살았다면 꼭 처녀만한 나이의 여성이 되었을 것이오.』
『네?』
윤 사장의 말을 들은 처녀는 얼굴에 핏기가 걷히는 것 같았다. 아랫 입술을 지그시 물고 그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 심상치 않은 눈치를 윤 사장은 놓치지 않고 똑똑히 보았다.
『왜 그렇게 놀라시오? 혹시 처녀의 이름이 정아가 아니오? 처녀는 명애씨가 젊었을때 모습과 꼭 같소. 아까 빌딩 복도에서 처음 보았을때 나는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아서 하마터면 쓰러질뻔 했오.』
『우연이어요.」
처녀는 힘없이 말하였다. 그것은 말이라는 이보다 중얼거림이었다.
『아니오. 만난 것은 우연일지 몰라도 처녀가 명애씨 하고 모습이 같다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닐 것이오. 사실은 그래서 내가 여기까지 처녀를 따라온 것이오. 오늘 처녀를 그대로 놓쳐버리면 나는 언제 또다시 만날는지 알수 없오. 그래서 이렇게 체면 가릴 것 없이 따라온 것이오.』
『선생님은 너무도 일을 자기 나름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세상에는 서로 비슷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지 않아요.』
『물론 그렇소. 허지만 처녀는 너무도 같소. 이것은 보통이 아니오. 나는 내가 초조한 나머지 착각을 한 것이나 아닌가 하고 아까 따라 오면서도 몇번이나 생각을 했오. 그렇지만 처녀는 너무도 같소. 고쳐보고 또 고쳐 봐도 이십여년전의 명애씨와 꼭 같소. 내가 너무 지나쳐서 착각을 일으킨 것이라면 이런 실례가 없을 것이오. 그렇다면 사람을 찾으려는 조급한 마음에서 그렇게 된 것이니 너무 허물하지 말고 용서해 주시오. 그렇지만 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착각을 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소. 그만큼 처녀는 내가 찾는 명애씨의 젊었을때 모습과 꼭 같소.』
『아주 자신이 만만하시군요.』
『나도 지금 매우 흥분하고 있소. 이런 일은 사람이 사는 동안에 그렇게 자주 격는 일은 아니오.』
『그런데 선생님, 대체 그 명애씨라는 분하고 선생님하고는 어떠한 관계시지오?』
『그 이야기는 하자면 길어지오. 우리 길에서 이렇게 아니라 어디 조용한데로 갑시다.』
『싫어요. 저는 모르는 분하고 조용한 자리로 가지 않아요.』
처녀는 쌀쌀하게 잡아떼었다.
『그러시오? 그렇다면 할 수없는 일이오. 그러면 한마디만 대답해 주시오. 처녀의 성명이 무엇이오?』
『왜요 제 이름이 정아라고 했으면 마음에 꼭 드시겠지요. 그렇지만 저는 정아가 아니어요.』
『그럼 처녀의 성명은 무엇이오? 혹시 윤씨가 아니오?』
『아니어요. 저는 김가에요. 윤씨라고는 아는 사람조차 없어요』
『그럼 명애씨가 김씨인데 어머니 성을 따른 거나 아니오?』
윤 사장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천만에요. 우리 어머니도 김씨가 아니어요. 인제 아시겠지요? 선생님과 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그냥 지나치는 행인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어요. 모든 것은 선생님의 착각이어요. 아셨으니 회사로 돌아가세요. 저도 바쁘니까 그만 가보겠어요.』
처녀는 고개를 끄덕하고 그대로 사라져버리었다. 윤 사장은 사라지는 처녀의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