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⑪ 苦難(고난) 극복할 정신적 支柱(지주)
최근 宗派間(종파간)의 對話(대화) 民族大同團結(민족대동단결)에 이바지
발행일1968-07-14 [제626호, 4면]
오늘 현재 나는 아무 종교도 가지고 있지 아니한다. 그러나 아무 종교도 믿지 않는다고 해서 종교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인간생활에 있어서 종교란 없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세상에 태어나서 몇십년을 살다가 늙어 죽는 것은 누구나가 피할 수없는 인간의 운명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 유한한 생활 속에서 항상 무한한 행복과 무한한 욕망을 추구한다.
그런 까닭으로 하여 유한한 인간세계서 무한한 행복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불행에 허덕이기 쉽게 되고 유한한 능력으로 무한한 욕구를 만족시키려다 결국은 그 뜻을 이루지 못하여 자신을 파멸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기 쉽게 된다.
사람이 불행과 파멸 속에서 허덕이고 있을때, 그 불행과 그 파멸을 구출해 줄만한 정신적인 支柱가 없으면, 그 사람은 완전히 멸망하고 말게 된다. 정신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사람이 고난에 빠졌을 때, 그 고난을 극복해 줄 수 있는 정신적인 지주가 즉 종교라고 하겠다.
사람은 누구나가 미완성 존재이기 때문에 항상 초인간적인 절대적인 존재를 동경하고 앙모하게 된다. 그 절대적인 존재란 神을 말한다. 그 절대적인 존재가 종교에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도 되고 석가모니도 된다.
어쨌든 사람은 미완성인 자신을 보다 완성에 가까운 존재로 발전시키기 위해 신을 믿고 신을 의지하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아편」이라고 해서, 종교를 한마디로 부인해 버리는 공산주의 사상은 인간성을 근본적으로 부인하는 어불성설이라고 하겠다.
종교는 인간생활에 있어서의 정신적인 지주인 만큼, 사회의 질서와 평화와 단합을 유지해가는 데도 지극히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어느 종교가 좋고, 어느 종교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여러 종교인들이 피차간에 반목질시했던 현상을 나는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만약 참다운 종교인이라면 여하한 타종교에 대해서도 반목질시란 있을 수없는 일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여러 종교계의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대동단결하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 국가민족의 정신적인 대동단결을 위해 매우 반가운 일이라고 하겠다.
일반신자 중에는 신앙의 목적을 來世의 구원에 두는 사람이 많이 있다. 그러나 나는 인간생활의 평화와 발전을 위해 종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내세에의 구원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다.
그런 功利的인 종교관에는 별로 찬동도 하지 않는다. 내세의 구원여부는 누구도 단언할 수없는 일이겠으나 설령 그런 것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만을 목적으로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도 비종교적인 신앙심이라 하겠다.
나는 어느 종교를 믿어도 무방하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반드시 교회당에 나가야만 종교인이 된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기독교에 無敎會派가 있고 불교에 在家僧이 있듯이 반드시 교회에 출석을 아니 하더라도 일상생활을 神意에 준하여 진설하게 살아가기만 하면 그 사람은 그것으로 충분한 종교인이라고 생각한다. 교회당이란 하나의 형식에 불과하고 신은 각자의 마음속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교회당에는 부지런히 나가도 행실이 성설치 못한 사람보다는 교회당에는 한 번도 안 나가도 신의에 따라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편이 훨씬 종교적인 인간이라고 나는 생각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