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때다. 나는 성묘하러 가던 길에 자동차 창밖 어느 담 모퉁이에 붙여있던 한 벽보에 눈이 갔었다. 「제X회 전국 인구 센서스」란 커다란 제호 밑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인구 조사란 것이 국가 시책상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또한 누구나가 다 빠짐없이 이 조사에 적극 협조할 것을 바라는 이 계몽벽보에 저토록 어려운 외국어를 사용한 당국의 심리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무지한 농민들에게 이 인구조사의 중요성을 인식시켜 주기 위한 이 벽보에 도회지 사람들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사람이 알어들을 수 없는 어려운 말을 쓰다니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오늘날 신문, 잡지 그리고 방송에서 우리는 수많은 오래어를 보고들어왔다. 물론 그것을 우리말로 고쳐 쓴다면 그 원어의 뜻이 정확히 전달되지 않을 경우라면 또 몰라도 이건 엄연이 우리나라 말로 써도 하등 지장이 없는 것까지 영어 독어 불어 등 도저히 알아들기 어려운 낱말을 쓰고있는 예가 허다하다. 그것도 또 정확히 쓴다면 괜찮겠지만 신문, 잡지에선 가끔 엉뚱하게도 틀리게 쓰는 일까지 있다. 얼마전에 나는 『생활속의 외래어』란 책을 샀다가 정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 자주 사용하는 외래어를 상세히 설명한 책이었는데 무려 백여군데나 틀린 곳이 있지 않은가?
즉시 출판사에 항의를 하고 이의 정정을 요구했더니 정중한 사과편지가 오긴 했으나 이 그릇된 책을 읽고 수많은 이들이 그릇된 지식을 마치 맞는것처럼 알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느낌이 든다.
우리는 늘 삼천리 금수강산이니 반만년의 오랜 역사 그리소 세종대왕의 한글을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해 왔다. 그러나 실상 우리는 우리나라 고유의 무화보다는 남의 것을 더 많이 동경해 오지 않했던가?
일전에 어느 잡지에서 이런 글을 본적이 있다. 그 필자가 불란서에 갔을 때 택시 운전수에게 영어로 얘기를 했더니 대뜸 불어로 얘기하자고 영어로 대답하더란다. 그래서 『아니 나는 불어를 모르는 처지이고 당신이 다행히 영어를 알고 있으니 영어로 얘기하면 되지 않겠는가』라고 대들었더니 그는 당신이 불란서에 왔으니 불어로 얘기하자고 버티더라는 것이다. 이 분이 하도 화가 나기에 『여보 그렇다면 만일 당신이 불어가 통하지 않는 다른 나라에 갔을 때 그 나라 사람이 끝까지 당신이 전혀 모르는 그들 나라 말로 얘기하자고 고집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오?』
이 운전수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외국엔 절대로 가지 않는단 말이오』
이것은 지나친 역설적인 얘기지만 나는 제나라 말을 이토록 자랑스럽게 여기고 사랑하고 있는 이들의 뱃장이 오히려 부럽기만 하다.
중국사람들은 2세(世)는 고사하고 제 조국이 어디 붙어있는지 조차 모를 3세, 4세의 꼬마까지도 집에서는 절대로 남의나라 말을 쓰지 않는다. 그런데 반해서 우리 교포 자녀들 중엔 2세만 되어도 우리나라 말엔 벙어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전에 미국에서 본국으로 전임해 오던 어떤 외교관의 두 딸들이 김포공항에서 세관원에게 『씰리 가이』니 하며 영어로만 욕하며 지꺼린 것이 지상에 보도되어 많은 시민들로부턱 공격을 받고 그 부모가 크게 망신당한 적이 있었다.
외국에 가서 불과 몇년만 있다가 와도 혀가 잘 안돈다면서 혀 꼬부라지는 소리를 하고다니는 이들을 우리는 얼마나 많이 보아왔던가? 우리는 무턱대고 외국것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우리 고유의 문화를 아낄 줄 알아야겠다.
한국은행에 근무하던 미국인 밀러씨의 애기가 생각난다.
『미스터 최! 한국 사람은 어째서 훌륭한 자기네 문화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버리고 남의 나라것만을 쫓습니까? 호텔 다방 극장 그리고 거리 어디를 가나 외국풍일색입니다.
한국에 온 관광객이 그 많은 돈을 써가면서 이곳까지 와서 제 나라 풍물과 조금도 다름없는 모습만 보게된다면 편안히 제 집에 누워있지 무엇하러 이곳까지 온단 말입니까? 생각해 보십시요. 美國에 가서 한국과 다름없는 풍물만 대한다면 당신은 미국에 가고 싶겠읍니까? 한국 사람들도 그 찬란한 역사와 문화를 남에게 자랑할 수 있는 긍지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이름도 한국식으로 고치고 순 한국지에서 생활하고 있다.
인구조사하던 날 현관 기둥에 「인구센서스」라고 이노새된 조그만 닦지를 붙이던 관리에게 옆집 국민학교 고마가 『아저씨 「센서스」가 무슨 말이예요?』하니깐 아무 대답도 못하고 얼굴만 붉히고 돌아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최 아오스딩(충남 청양본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