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2) 兄弟(형제) ②
발행일1967-10-15 [제589호, 4면]
풀이 죽은 윤식은 아무래도 법과는 자기 자질에는 맞지 않는 모양이니 농과대학으로 직을 옮기는게 좋겠다고 제의했다.
저녁상을 받고 앉아서 고기를 우물우물 씹고 있던 아버지는 고리눈을 하고서 윤식을 빤히 쳐바도았다. 그는 고기를 삼키고 내뱉듯이
『마음대로 해보는 거다.』
하며 허락을 했고 그의 옆에는 아무런 의사표시도 없는 어머니가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리하여 윤식은 집을 떠나 M시에 있는 농과대학으로 옮겨갓던 것이다. 그는 M시의 어느 유지대에 기숙하면서 이따금 서울로 올라와 이 삼일씩 묵고가곤 했었는데 어디가 어떻다고 끄집어 낼 수는 없었지만 정식은 윤식이 자꾸만 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 느낌은 살갗이 써늘해지는 것 같은, 어디선지 불행의 바람을 몰고오는 것 같은 이상한 두려움이었다.
『형』
윤식의 눈이 휘번득했다.
『나는 그런 여자집에 가본 일이 있어』
정식은 혼란에 빠진다. 싱글싱글 웃고있는 윤식의 얼굴이 여태껏 이 세상에서 한번도 만나본 일이 없는 그런 얼굴같기만 했다.
『어디 그뿐인줄 알어? 밤길 가는 계집애를 풀밭으로 끌어들인 일도 있었어. 별이, 별이 내게 가까이 오는 것 같은 느낌이 조금 들더군, 그게 왜 죄악이냐 말이야! 하하 하하하핫…』
윤식이 벼란간 솟구치듯 큰 웃음을 터드렸다. 쏘파 위를 헤매듯 몸을 흔들며, 끝내는 목쉰 소리가 되어 그 웃음은 괴상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듯 유리창 밖으로 울려펴졌다.
『너, 너 정말 미쳤니?』
정식은 마루바닥에서 벌떡 일어섰다.
『하하핫… 하하핫핫… 안, 안미친 사람이 세상에 어, 어디에 있어? 모, 모두가 및녔는데 다만 안미친척 하고 있다 뿐이지. 안그래? 형은 안그러냐 말이야』
웃음에 흐느껴가며 윤식이 말했다.
『넌 정말 어디가 잘못된 모양이다. 나쁜 환상에 빠져 있어. 그래서 넌 학교도 실패한거다』
정식은 손톱을 물면서 윤식을 주시하며 우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과연 윤식이를 위해 집안에서는 어느 누가 마음 아파했던가. 학교문제만 해도 그렇지, 책망조차 없었던 완전한 무관심이 아니었던가)
윤식을 위해 쓰라림 같은 것이 한순간 정식위 마음을 스치고 지나갔다.
『환상에 빠져 있다구? 그건 나보다 형 자신을 향해 하는 편이 더 적절할걸? 하지만 나는 환상에서 기어나오려고 몸부림치고 눈을 부비고 했단 말이야. 언제 저새끼가 저런 말을 지꺼리겠금 됐나, 하는 투와 눈으로 날 보지 말어. 적어도 난 형보담은 정직하고 형보담은 겁대기를 벗긴 세상을 바라보고 있단 말이야. 하하핫…… 날 얌전하다구? 계집애 같이 얌전하다구? 어림도 없는 소리다! 내 피는 말이야 형보다 열배 백배는 더 거칠다는 걸 알아두란 말이야. 나는 다만 얌전한 척 했지 귀찮으니까 얌전한 척 했다 뿐이야. 저기 저기 있는 양반』 하며 윤식은 초상화에다 손가락질을 했다.
늙은이 비위 맞추는 피곤한 짓이 하기 싫었거든. 형처럼 멀정한 손가락 짤라가지고 눈물 한방울 흘리지 않음으로써 저 늙은이한테 칭친 받기를 원치 않는단 말이야. 난 애당초부터 애정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어. 사기꾼의 애정 따위 조금도 달갑지 않단 말이야』
『입 닥치지 못하겠니!』
정식은 소리를 질렀다.
『왜 내가 거짓말 했어? 본대로 느낀대로 말한 것 뿐이지. 형이야 말로 더러운 환상에 빠져있어. 저 늙은이가 독립투사라구? 만주바닥에서 동지를 팔고 밀정노릇을 한 저 늙인이가 독립투사야? 밀무역으로 돈방석 위에 앉은 탐욕에 가득 찬 늙은 이리가 품위있는 사업가란 말이지?』
『중상모략이다!』
정식은 고함을 치면서 정신 없이 달려들어 윤식의 얼굴에다 주먹질을 내리 퍼부었다.
『공범자는 그런 변병 할 수 있어. 아름다운 윤이하고 결혼하기 위해서도 구린내 나는 곳에는 뚜껑을 달아 두어야 하는 거지』
무저항으로 맞으면서 윤식은 연신 지꺼렸다.
『무라구? 이새끼! 이새끼가!』
정식의 얼굴은 마치 동맥이라는 동맥이 다 터져버린 듯 짙붉었다. 윤식의 코에서 피가 쏟아졌다. 윤식은 코를 감싸쥐었다.
겨우 제정신에 돌아온 정식은 물러섰다. 윤식은 한손으로 코를 막고 한손으로 손수건을 끄내었다.
『죽일 놈이 새끼! 넌 아버질 모욕할 자격이 없다. 나를 모욕할 자격도 없다! 넌 수채구멍에서 번식하는 지렁이같이 인생에서의 낙오자일 뿐이다!』
짙붉었던 얼굴로부터 피가 걷혀지면서 정식은 마치 윤식의 운명을 선고하듯 한말 한말에 힘주어 뇌었다.
윤식은 코피를 닦으며 눈을 치들고 냉소를 흘렸다.
『왜들 그러니?』
조용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조용한 목소리였다. 언제 문을 열고 들어왔는지, 그림자가 살며시 스며들기라도 한듯 그들의 어머니가 방안에 서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