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8일=「무고한 피 앗아간 새남터」
「이」=무슨 종교든지 언젠가 한번씩은 박해를 당하는 법인가 봐요. 불교도 많이 번성하기까지는 수많은 박해를 당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우리 천주교도 대원군시대에 무참히 박해를 당해 우리선열들이 죄없이 새남터에서 비참하게 죽지 않았읍니까? 그분들에겐 인간적인 면에서 볼때는 안된 일이지만 한국천주교회가 오늘날처럼 번영하게 된 것이 그분들이 흘린 성혈 때문이 아니겠어요?
「오」=그런데 새남터는 어디 있읍니까?
「이」=이촌동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공군아파트와 아파트 사이인데 옛날에는 이곳이 뽕나무밭이었읍니다.
「오」=1801년 5월 31일 주문모 신부님이 새남터에서 사형당할 때 사형대에 서서 어떻게 하면 칼로 목베기가 편하냐고 휘광이들에게 묻더랍니다. 이 얼마나 아이로니칼한 일입니까? 주 신부의 목이 떨어지자마자 갑자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비가 오더래요. 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 중에서 50명이나 현장으로 나와서 나도 죽겠다고 하더랍니다. 억지로 탄압을 하면 그만큼 신자의 증가율은 높아지는 겁니다.
「이」=그분들이 흘린 피가 후생들의 양심과 신앙심을 길러주는데 바탕이 되었지요. 사람이 한번 낫다가 한번 죽는 것은 매일반인데 이왕 죽는 것 그렇게 영광스럽게 죽는 것이 얼마나 다행입니까? 그런데 의주로 굴다리 밑에서도 학살했다는데 신부님 아십니까?
「오」=네, 서소문 네거리에서도 이승훈 선생이 천주교를 불러들였다는 죄로 죽었읍니다. 사형은 주로 새남터·서소문밖네거리·절두산·의주로 굴다리 밑에서 집행했답니다. 이밖에 지방으로 가면 전주 광주 등지에도 순교지가 많습니다.
『이」=순교자들의 그 열심이란 정말 현재 사람들에게는 찾아볼 수없는 것이지요? 천주님을 위해 자기목숨을 버리기를 헌신짝 버리듯 했으니까요. 일본에서 천주교가 박해당할 때 신자들을 잡아다 놓고 땅에 다 놓은 십자가를 밟고 넘어가면 안 죽이고 십자가를 밟고 넘어가지 않으면 죽였다고 하는데 그때 죽고 싶지 않은 사람은 한발자국만 조심하면 죽지 않게 되는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으니 그들의 신앙심이란 정말 기막힌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