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부당국에 의해서 밝혀진 바에 의하면 62년부터 해외이주를 시작한 이민단으로서 가장 성공한 「케이스」로 「한국가톨릭이민회」를 들고 있다.
지난번 「해외개발공사」의 김현기(金鉉基) 이사와 박희주(朴熙柱) 이주과장의 이민실태 현지조사보고에 의해서 밝혀진 실정을 보면, 정부와 각 단체별로 이민단을 조직해서 파견한 남미(南美) 이민들은 거의가 거주지 이탈로 국가의 체면을 손상시켰는데 다소이 탈락자는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성공한 것이 「가톨릭이민회」에서 보낸 「산따 마리아」농장이라고 결론을 짓고 3만 「달라」의 정부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하였다는 것이다.
오는 11월경에 해외개발고사 관계관이 직접 「산따 마리아」 농장에 가서 수확기와 「트럭터」 등 부족한 농기구를 현제 구입하여 전달하기로 한 이면에는 다음과 같은 장대익(누수=후암동본당) 신부의 숨은 공로가 있다.
1965년 11월, 주교회의에 정식 인준을 받은 가톨릭이민회에서 모집한 이민단 제1진이 장(張) 신부의 인솔로 무사히 「산따 라미아」농장에 정착하게 되었다. 입주자들의 주택이 채 마련되지 못해서, 군대 막사를 빌려들면서 장 신부는 정부당국과 교섭하여 폭6m 총연장 20「킬로」의 농장 도로를 무료로 개설해 주었고 「파나나」주 정부에 요청해서 1만5천「달라」를 얻어 국민학교를 설립하였다.
지금 3만 「달라」에 해당하는 거대한 주유소와 식당만 해도 자체자금은 5천 「달라」에 불과하고, 2만5천 「달러」가 브라질정부와 미국의 에쏘(ESSO)석유회사에 의해서 투자된 제1급 주유소를 「산따 마리아」 농장에서 단독 운영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지난 6월 7일 장 신부가 이민지도를 마치고 돌아온 후 정착사업은 착착 진행되어, 조림계획으로 미송 3만본을 심었고, 과수재배로 이태리 포도 4백주를 사들여 심고 있다. 양계는 이미 2만수를 넘어 본격적으로 토대가 잡혀가고 있다는 현지 소식을 김갑인(金甲寅=요셉)씨가 전해왔다.
지금 「산따 마리아」 농장에 보내질 각국 권조 실태를 보면 한국정부에서 정착 농기구 구입비로 1만 「달라」 서독 「미세레올」(주교단 원조자금) 2만5천 「달라」 역시 서독의 「아드베니아트」(독일 주됴간의 선교지역 신부를 위한 원조)에서 정착민 지도신부를 위해 1만 「달라」를 지급하기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활발한 움직임에 발맞추어 정부와 가톨릭 이민회에서는 「산따 마리아」 농장에 약1백세대 정도를 정착시켜 하나의 시범이민촌을 세울 계획으로 있다.
한편 후임 이민 지도신부에는 전 가톨릭의대 학장을 지낸 김창렬(金昌烈=바오로) 신부가 내정되어 서울대교구에 품신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