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20)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⑥
발행일1968-07-21 [제627호, 4면]
동서무역회사는 사원이 이백여명이었다. 그 많은 사원들을 낱낱이 물어보기는 힘이드는 일이었고 또 처가 다녀간 후에 외출한 사원도 없지 않았다. 그리하여 서무과장이 각 부서 책임자에게 말하여 사실을 캐내는데 사흘이 걸리었다. 공교롭게 동서무역회사는 복도 한편으로 몰려 있었고 그 곁에는 또 다른 한 회사가 자리잡고 있어서 처녀가 다녀간 곳은 도서무역회사가 아니고 다른 회사인지도 알 수없는 노릇이었다. 만일 그렇다면 일은 거의 절망에 가까웠다. 윤장의 부탁이 의외로 절박한 눈치이었으므로 서무과장도 긴장하여 하회를 기다리었다. 그러나 하회는 모두 비관적이었다. 그날 그런 처녀를 맞이한 사원은 한명도 없다는 것이었다. 서무과장은 하는 수 없이 조회때 전사원에게 호소하였다. 어떤 긴급한 사정으로 회사에 다녀간 한 처녀를 찾고 있으니 적극 협력해 달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찾는 이유는 밝힐 수 없으나 결코 나쁜 일로 찾고 있는 것은 아니니 그 점에 있어서는 조금도 오해하지 말아 달라고 말하고, 동서무역회사는 물론이고 혹시 이웃 회사에라도 그 처녀가 찾아온 기미가 있으면 수단껏 알아서 협조해 달라고 서무과장은 있는 언변을 다하여 사원들에게 당부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보를 아는 사람은 자기에게 언제든지 직접 말해주기 바란다고 연설의 끝을 맺었다.
『윤 사장님, 조금도 염려 마십시오, 이만큼 해 두었으니까 이번에는 반드시 반응이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래도 소식이 없으면 제가 하나 하나 빌딩 안을 이잡듯이 뒤져서라도 기어코 찾아내겠읍니다.』
서무과장은 윤 사장에게 이렇게 장담하여 안심을 시키었다. 그러나 기다리는 정보는 좀처럼 들어오지 않고 사내에는 싱거운 소문만이 감돌아 사원들의 심심치 않은 화제가 되고 있었다.
『중년의 독신사장이 묘령의 처녀를 찾는다…』
『아아 초록빛 원피스 입은 장발의 처녀여!』
이렇게 농담을 하고는 원들은 모두 하하하하 하고 웃었다. 그러나 윤 사장은 하루하루가 초조에 싸여 지나가고 있었다.
(인제는 절망이다. 그날 봉변을 당하더라도 끝까지 따라갈 것을 잘못 했어.)
윤 사장은 몇번이나 혀를 깨물며 후회를 했으나 이제는 엎질러진 물이었다.
서두과장이 연설로 호소를 한지 여러날 후 저녁때 퇴근 무렵이었다. 경리과의 한 처녀사원이 서무과장실 문앞에서 망서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발견한 서무과장은 눈치 빠르게 그 처녀를 잡아채었다.
『잠간 이리로 들어와요.』
처녀사원은 순순히 서무과장실로 따라 들어갔다.
『내가 부탁한일에 대해서 무슨 정보를 가지고 온 모양인데 염려말고 빨리 말을 해요. 필요하다면 비밀을 지켜줄 테니까.』
『네.』
처녀사원은 얼굴을 빨갛게 물드리며 고개를 숙였다.
『무슨 정보를 가지고 있지요?』
『네.』
『됐어, 내 이럴 줄 알았어. 이 공로는 결코 잊지 않을 테니까 빨리 말해요. 이건 제三자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지마는 사장님께는 중대한 일입니다. 그 양반은 요즘 안절부절하고 계셔요.』
『무슨 정보지요? 혹시 누가 들어오기 전에 빨리 말을 해요.』
서무과장은 성화같이 재촉하였다. 처녀사원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사실은 그 초록색 원피스를 입은 처녀가 저희 경리과에 그날 찾아왔었어요』
『응? 경리과에? 그래 경리과의 누구를 찾아왔소?』
『양은실(梁恩實)이라는 신입사원이어요. 들어온지 얼마되지 않는 아이어요』
『옳지, 그랬구먼. 경리과 신입사원 양은실이다』
『그런데 어째서 지금까지 그 처녀는 시침을 떼고 있는 거지?』
『그게 저어…』
『무슨 까닭이라도 있는게 아니요?』
『그 초록색 원피스 입은 처녀가 말을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을 했대요. 그 초록색 원피스 입은 처녀가 왔을 때는 은실이가 마침 외출하고 없어서 제가 복도에서 만나 보았는데 제가 그 말을 하고 서무과장님께 보고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니까 본인이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다짐을 놓았다고 하면서 오늘까지 입을 다물고 있어요.』
『흥, 그랬구먼. 그 색시 참으로 앙칼진 처녀로 구먼. 친구에게 어느 틈에 함구령을 내리다니. 알았오. 고맙소.』
이 신세는 절대로 잊지 않겠소』
『저는 하도 마음이 괴로워서 말씀드리는 거니까 아무에게도…』
『염려 마시오. 절대로 비밀을 지킬 테니까.』
처녀 사원이 사라진 후 서무과장은 곧 사장실로 달려갔다.
『사장님 알았읍니다. 기뻐하십시오.』
『엉? 알았어? 그래 누구요?』
윤 사장은 너무도 반가워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경리과에 있는 신입여사원을 찾아왔었는데 그날은 외출중이라 못만나고 복도까지 왔다가 그대로 돌아갔답니다.』
『흥 그래서 정보를 알리는 사원이 하나도 없었구먼 그래.』
『아닙니다. 사실은 사장님께서 찾으시는 초록색원피스 입은 아가씨가 함구령을 내렸답니다.』
『나중에 경리과 사원친구를 만나서 사장님께서 자기가 찾아간 사원을 찾으신다는 말을 듣고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된다고 입을 막아버린 모양입니다.』
『허허허. 그랬을 거야. 참으로 똑똑하고 야무진 처녀였으니까?』
윤 사장은 새삼스럽게 감탄하였다.
『참으로 앙칼지고 날렵한 아가씨인 것 같습니다.』
서무과장도 맞장구를 쳤다.
『그럼 우선 그 경리과 여사원을 좀 만나야 되겠는데…』
『염려 마십시오. 제가다 알아서 조용히 만나게 해드리겠읍니다.』
서무과장은 머리를 만지며 멋쩍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