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3) 兄弟(형제) ③
발행일1967-10-22 [제590호, 4면]
정식은 당황하여 어쩔줄 모르다가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좀』 하면서 자기 바지 주미니 속이 손수건을 끄내어 윤식에게 준다.
『빨리 닦어』
윤식은 피묻은 자기 손수건을 버리고 정식의 것으로 코를 닦았으나 그는 눈을 내리깐채 그의 어머니를 쳐다보려 하지 않았다.
멀끄러미 바라보고 섰던 그들의 어머니 옥 여사는
『쌈은 왜들 하니?』
연판(鉛版)이 밀려나오듯 억양없는 목소리였다. 아름다움의 흔적이 아직도 역력한 얼굴에는 감정의 움직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야』
그러더니 옥 여사는 물빛치마 자락을 끌면서 그 치마자락에 오히려 생명이 있어, 꼬리를 치며 가는 파충류와도 같이, 그러나 옥 여사는 그림자처럼 소리 없이 밖으로 사라졌다.
『이집은 사기꾼과 유령, 그리고 미치광이가 사는 집이야』
하고 윤식은 정식이 준 손수건 마저 마루바닥에 내던지고 일어서더니 느슨해진 바지이 혁대를 조으면서 곁눈으로 정식을 보고 조소를 띠었다.
분노의 신음소리가 정식의 입에서 새어나왔다. 사기군보다 유령이라는 말에 그는 격노한 것이다. 두 주먹이 부르르 떨었다. 그러나 정식은 동생을 치지는 않았다.
윤식은 여전히 조소를 띠우며 방에서 나갔다.
(신성불가침의 너의 성지를 나는 흙발로 깨어놓고 나간다 어쩔테냐)
하는듯 복도를 굴리는 윤식이 발소리는 차츰 멀어져 갔다.
정식은 꼼작하지 않고 방 한가운데 서있었다. 그동안 이상하다 이상하다 생각하긴 했었다. 그러나 벼란간 이런 사태가 자기에게 달겨들 줄은 몰랐다. 정식은 앞으로 번번히 이런 사태가 되풀이 될 것을 예감하였다. 이미 노여움은 사라졌으나 그는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유령이라 한 것은 어머니를 두고 한 말이었다. 정식은 등꼴에 땀이 솟는 것을 느꼈다. 어느 누구에게 대하여 공포심을 갖는지 구별할 수 없었다. 정식은 어머니를 신비스럽게 생각해 왔다. 그 신비스러움과 유령이라는 말에는 어떤 상통된 것이 있었을까.
(윤식이는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지꺼렸던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난 정말 공범자일까?)
그러나 윤식이 말한 사기꾼인 아버지의 권위는 정식의 마음 속에서 무너지진 않았다.
유령이라 한 어머니, 그 어머니의 신비스런 의상을 찢어버릴 수도 없었다.
새로운 분노를 느낀다.
마침 전화 벨이 요란스럽게 쥐죽은 듯 고요한 집안 공기를 흔들어 놓는다. 정식은 수화기를 들었다.
『네』
우울한 목소리다.
『정식씨』
윤이었다.
『아아』
『뭘 하세요? 지금』
낮게 울려퍼지는 목소리를 들으며 정식의 눈은 마루바닥에 굴러있는 피묻은 손수건으로 갔다.
『정식씨』
윤이는 대답이 없는 정식을 짜증스럽게 불렀다.
『아아』
『뭘 하시느냐고 물었는데두』
『윤식이하구 장길두었지』
『올라왔어요?』
『음』
『안나오시겠어요?』
『함께?』
『네? 윤식씨하구 말예요? 표는 두장뿐인데』
『아니』
『왜그러시죠? 이상하네요』
【사실은 오늘 기분이 좋지 않어. 만나도 우울할거야』
『저 때매 그러세요? 내가 뭘 잘못했을까?』
『아니야』
『그럼 나오세요. 위로해 드릴께요. 거기서 여섯시까지』
윤이는 전화를 끊었다.
(공범자는 그런 변명할 수 있어. 아름다운 윤이하고 결혼하기 위해서도 구린내 나는 곳에 뚜껑을 닫아놔야 하는거지)
윤식이 말이 여섯시까지 하든 윤이의 마지막, 목소리를 이어 정식의 귓가에 울리고 있었다.
차판을 든 봉애가 복도를 지니간다.
『봉애야!』
『네?』
하며 봉애는 열려져 있는 문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아까 싸움을 알고 있었던지 부엌 아이 봉애의 눈은 불안해보엿다.
『이 손수건 갖다 빨아』
정식은 그 말과 함께 복도로 나왔다. 이층에 있는 자기 방으로 가기 위해 층계를 밟고 올라간다. 반쯤 가다가 그는 뒤돌아 본다. 복도 모퉁이를 도는 봉애의 뒷모습이 보인다. 팡파짐한 엉덩이와 미끈한 다리, 건강에 넘치는 모습이었다.
정식은 갑자기 마음이 뛰었다.
그는 윤식을 연상했던 것이다.
(고독해서, 고독해서 그러는거다)
계집아이를 풀밭으로 끌고갔다는 윤식의 마음을 이해할 것 같으면서도 한편 그 행위를 절대 용서할 수 없는 모순에 빠진다.
(형으로서 나는 어느 쪽이든 태도를 결정해야 한다. 달랜다든지, 힐난한다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