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世俗에의 開放
②敎會의 牧者들
우리는 신자생활을 인간생활과 분리시킬 수 없다. 인간세계의 가치있는 모든 발전은 신자생활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를 들면 이번 공의회가 교황을 중심으로 주교들로 구성되는 하나의 공동 통치기구체제를 다시 받아들인 것은 단순히 신학적 논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부득이한 추세를 따른 것이다.
세계적으로 높아가는 제사회(諸社會)(국가·기업체·사회 등)의 민주주의적 자세는 인간개성에 더욱 적합한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한때 쓸모 있고 적절했던 제정형태(帝政形態)의 저「비잔틴」 정체(政體)나 중세적 봉건제도의 재판(再版)인 그 어떤 제도를 더 이상 고수할 수는 없다. 물론 교회질서의 주요요소와 그 본질적 의미는 언제나 우리가 믿는바 신(神)의 계시에 의하여 규정되었지만, 교회에서 권위를 행사하던 형식은 「비잔틴」 제국이나 중세 봉건제도 등의 세속적 정체의 형식과 비슷한 것이었다. 오늘날의 교회가 꼭 의회(議會)와 같은 기구를 통해서 통치돼야 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하더라도 일층 민주적이 될 수 있고 또 그렇게 돼야만 할 것이다.
그래서 이번 공의회는 교황을 그의 형제들인 주교들의 가운데 또 다시 모시게 되었다. 이제 교황은 독존적(獨尊的)인 통치자나 주권자가 되려하지 않고, 오히려 주교단의 맏형으로서 주교들의 견해를 청취한 후 결정을 내리는 분이 되고 있다.
우리는 공의회의 이러한 태도를 막을 길이 없고 오직 공의회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라 가야할 뿐이다. 자기 교구에서 섬김을 받기로 돼있는 주교는 사제와 신자들의 주인이나 주권자가 아니며, 본당신부는 자기 본당구역 내의 소제왕(小帝王)도 아니다. 교황과 주교 및 사제는 모두 「하느님의 백성들을 위한 종이다. 종이라는 말마디는 단순히 하나의 수식어가 아니라 교회에서 봉직하는 모든 이의 직분(職分)이 지니는 본성이다.
교황은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먼저 의견을 듣는 것이 자기의 임무이라 생각할 것이며 주교는 자기교구의 사제나 신자들에게 순명을 요구하기 전에 먼저 그들의 뜻을 유의(留意)할 일이다. 또한 본당신부는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기 전에 먼저 본당신자들의 의견과 감정을 존경할 일이다.
화란 주교들은 이러한 이념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주교들은 모든 이들이 그들의 온갖 감정과 의견을 신중히 말하고 싶어할 때 그 발언에 귀를 기울이고, 모든 이들이 새로운 모습의 신자생활을 찾도록 격려해준다. 화란교회는 평신자와 사제, 주교와 교황 사이의 실제적인 대화를 갈망하고 있는 것이다. 수천개의 토론그룹과 성경그룹, 사제들 및 평신자들의 사목연구 단체들은 이러한 욕망의 표현일뿐 아니라, 공의회와 교황자신의 성명에 대한 반응이기도하다.
사제 독신제에 관한 교황의 회칙에 반발을 보인 것은 그 일예이다. 교회에서 주장하는 독신제의 가치를 부인하는 자는 한사람도 없었다. 이러한 반응은 오직 교황의 회칙이 전세계 수천의 사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별로 고려하지 않았는 것 같아, 이에 대한 유감의 표시였을 뿐이다. 모든 이가 의견을 자유로이 말하고 유감을 공공연히 표명하는 것이 결코 교황에 대한 존경부족에서가 아니라, 공동성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화란교회는 믿고 있다.(교회 안에 이러한 의견과 유감이 있기는 하나 화란교회 외에서는 그것을 표명하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토론개방으로 화란주교들은 실제로 상당한 위험을 무릅쓰고 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어떻게 성신께 의탁할 수 있겠는가? 우리 자신의 신상(身上)을 내걸지 않고서는 어떠한 신앙도 불가능하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화란의 사제들과 평신자들도 그들 자신의 교회를 구체적으로 형성할 책임을 더욱 절감해 가고 있다. 그들은 그 책임을 교황과 주교들의 어깨에만 전적으로 지우는 것이 큰 잘못임을 확신하고 있다. 화란교회의 모든 신자는 화란교회 내에서 전개되는 모든 문제와 교권에 의해 결정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실제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요청받고 있는 것이다.
화란의 성인용(成人用) 교리서는 평신자가 이같은 자신의 책임을 수행하기를 요구한다. 화란주교들과 화란 교리연구원은 새교리서를 만드는데 신중을 기했다.
사계(斯界)의 전문가들이 새교리서 편찬을 위하여 5년 이상 일해왔고 공의회가 새로운 전망을 보일 때마다 부분 부분을 고쳐왔다.
6백「페이지」밖에 안되는 책을 마련하기 위하여 물경 15톤의 종이가 사용된 것을 보아도 그 사업의 면모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