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의 길] 롬바르디 講論(강론) 抄(초) - 세계와의 一致(일치) 위해 먼저 自我(자아) 긍정부터 生活自體(생활자체) 끊임없는 기도여야
제나라 文化尊重(문화존중)코 참다운 뜻의「世俗化(세속화)」필요
◈ 제4회
세계와의 일치를 위해서 우리는 첫째로 자신을 받아들이고 좋게 볼 줄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비참함 보다는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고 그것을 십분 발휘하여 선(善)쪽으로 쓰는 편이 보다 현명하다.
세계를 받아들이고 좋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 앞에 나타나는 창조된 세계를 보고 조물주를 찬미할 수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도 『이 세계 안에서 만물을 즐길 수 있었고 「추방된 사람」처럼 느끼시지 않고 집에 있듯이 완전히 세계 안에서 사셨다.』 다음으로, 공의회는 문화를 좋게 보고 존중할 것을 가르친다. 「세속화」라는 말을 흔히 비웃는 투로 쓰지만 참다운 의미의 세속화는 중요한 것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자기 나라의 문화를 존중할 줄 알아야 한다. 대체로 한국 사람들은 자기 문화의 가치를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오늘 우리 옆에 살고 있는 한국형제들을 존중하고 그들 안에 스며있는 문화를 살려 사랑하기로 힘쓰자.
▲그러나 세계와의 접촉이라는 방법을 통해서 우리가 이루고자하는 목적은 오직 하느님 나라의 건설일 뿐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근본적인 목적은 바로 「천주와 통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천주와의 우정 내지 사람스런 관계를 맺기 위해서 우리는 다른 많은 사람들을 알고 사랑해야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 영신생활의 바탕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기구시간」을 가지는 것만으로 영신생활을 잘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유치한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사는 것, 그것 전체가 하나의 끊임없는 기구가 되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평신자들이 하는 모든 세속적인 일에도 예수께서 항상 함께 계신다는 것을 알아야하고, 자신이 죽을 만큼 자기 안에 예수님이 살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생각을 알아내고 그 생각에 따라 신덕을 가지고 모든 닥치는 일을 처리해나가고 영신생활의 다이나믹한 덕성인 망덕으로 인간사회에 희망을 주며, 애덕을 통해 성숙하는 정결로써 철저하게 크리스찬생활을 해보기로 하자.
▲전례를 통한 기구와 개인적 기구…전례는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예절일 뿐만 아니라 「참여해야 될」예절이다. 우리의 일생은 끊임없는 하느님께의 「응답」이 되어야하므로 모든 개인기구는 전례가운데 기초를 두어야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세상에 남기고 가신 교회를 말과 표적있는 성사를 통해서 주안에 자라게 해주시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전례는 우리 각자 안에서 「천주강생」이 존속되는 것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가 갖는 자유를 가지고 주께서 물질을 통해 우리에게 오심을 묵상하면서 전례를 완전히 이해하도록 노려해야 한다. 개인 기구를 그냥 합친 것이 아닌 본질적인 공동체의 기구가 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며 그리스도의 신비를 산 것이 되게 해야 하고 현대에 맞게 쇄신하도록 해야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울러 알아야할 점은 전례가 우리에게 천주의 생명을 주는 통로긴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점이다. 자기의 모든 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개인기구가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
▲기구
기구는 추론적인 기구에서부터 감정적인 기구로, 즉 「사상」으로써가 아니라 진실된 「마음」으로 할 때 가장 그 가치를 지닌다. 모든 것을 주께 바치고 모든 일을 하느님의 뜻으로 생각하여 자발적인 「의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 싶어하는 마음가짐의 증명이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의 기구는 「단순화」되어가는 과정을 밝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가 기구를 한다기보다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기구하고 계시다고 느껴지는 패시브·프레이어(수동적인기구)의 상태에 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이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시는 만큼은 우리자신은 없어지기 마련이다. 어떻게 하면 그분이 더욱 자유롭게 우리 안에서 기구하시고 활동하시도록 할 수 있겠는가를 곰곰히 생각하자.
기구에 있어서 가장중요한 점은 자신을 바꿀 만큼 하느님과의 일치를 도모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기구는 바로 그 사람의 삶이다. 신비체의 유일한 정신인 성신을 끄지 말고 항상 깨어 계속정진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