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21)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⑦
발행일1968-07-28 [제628호, 4면]
서무과장이 염려 말라고 장담을 한지 사흘이 지났다. 그러나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정아, 정아, 정아!』
윤 사장은 소파에 앉아서 이렇게 입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분명하다. 분명히 그 처녀가 정아다. 그는 내가 말한 이름을 듣고 확실히 깜짝 놀라는 빛을 감추지 못하였다. 그것만은 내가 본 눈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 처녀가 어디서 살며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 한다. 그런 채로 시간은 자꾸만 흘러가고 있다. 아아!)
윤 사장은 생각할수록 초조하였다.
(서무과장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윤 사장은 기다리다 못해서 짜증이 났다. 그렇다고 서무과장을 불러서 성화같이 너무 독촉만 할 수도 없었다.
『사장님,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처녀애들을 다루는 데는 일을 자연스럽게 해야지 너무 서두르면 실패합니다. 이것은 소위 사업수완과는 조금 다릅니다.』
서무과장은 윤 사장이 몹시 초조하게 기다리는 눈치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그럴는지도 모른다. 윤 사장이 한번 실패한 것도 그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미행을 하던 날, 그날은 행방만 눈치 채지 못하게 알아놓고 서서히 일을 진행시켰던들 그런 실패의 쓴잔은 마시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생각해도 사흘은 너무 긴 것 같았다. 그 처녀의 친구가 바로 동서무역회사의 사원이라면 당장에 불러서 다짜고짜로 물어보아도 되지 않을까?
그러나 이번에는 서무과장에게 꾹 참고 모든 일을 맡기어 보자. 윤 사장은 이렇게 생각하며 고요히 마음을 달래었다. 윤 사장은 지금 자기 자신이 몸시 흥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아침에 또 간부회의가 있었다. 회의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오는데 서무과장이 싱글싱글 우며 윤 사장을 따라왔다.
『사장님 너무 기다리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일을 순탄스럽게 하려니까 어쩔 수가 없읍니다.』
서무과장이 넌즈시 속삭이었다.
『참 어떻게 되었오? 일이 혹시 낭패가 되지 않았는가 해서 속으로 이만 저만 근심이 아닌데』
『염려 마십시오. 일을 적당하게 처리해 놓았으니까. 인제는 사장님께서 서서히 자연스럽게 수완을 발휘하셔야 되겠읍니다.』
『아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요? 일이 어떻게 되었단 말이요?』
『사장님, 어제부터 양은실(梁恩實)이라는 처녀 여사원이 비서실로 전속 되었읍니다. 사장실에서 혹시 못 보셨읍니까? 사장님의 잔시중을 들도록 시키라고 비서실에 부탁해 놓았는데요.』
윤 사장은 그때서야 생각이 났다. 비서실에서 사장실로 드나들며 손님을 인도도 하고 사동아이와 함께 차도 나르고 하는 새 얼굴의 처녀사원이 있었다.
『그 얼굴이 동그스름하게 생긴 처녀사원 말이오?』
『맞았읍니다. 바로 그 애가 그 문제의 처녀와 친구입니다.』
『옳아, 그런걸 내가 까맣게 몰랐구먼. 나는 또 웬일인가 하고 몹시 궁금하게만 생각을 했지』
『원 사장님도. 제가 장담을 한 이상 범연할 리가 있겠읍니까.』
서무과장은 또 얼굴에 함빡 웃음을 띄었다.
『그럼 인제 어떻게 한다?』
윤 사장이 서무과장의 눈치를 보았다. 한번 실패한 윤 사장은 자신이 없는 모양이었다.
『사장님,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을 너무 서두르지 않는 것입니다. 여자란 누구나 아이들과 같아서 급히 서두르면 달아나 버립니다. 그러니까 천천이 기회를 보셔서 자연스럽게 물어보시도록 하십시오. 만일 위험할 눈치이면 저희들 끼리 연락이 있을 때까지 모르는 체하고 감시만 하는 것도 무방합니다』
『글쎄.』
『어쨌든 은실이라는 사원이 인제는 사장님 수중에 있으니 적당히 처리하십시오. 잘못하면 아주 일을 그르칠는지도 모르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알았오. 고맙소.』
『사장님, 일을 이런 방식으로 처리한 것은 모두가 실패가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니까 조심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무리한 처사를 하셔서는 안됩니다.』
『알았오.』
윤 사장은 사장실로 돌아왔다.
『손님 세 분이 벌써부더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명함이 거기 있는데 어느 분을 먼저 들어오시라고 할까요?』
윤 사장이 자리에 앉자마자 들어와서 말하는 것은 다른 사람 아닌 바로 양은실 이었다. 윤 사장은 유심히 그 처녀사원을 바라보았다.
(이 애가 바로 정아의 친구였구나. 정아는 바로 이 애를 찾아온 것이었구나. 정아는 이 애에게 절대로 자기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다짐을 준 것이로구나.)
동그스름하고 귀엽게 생긴 얼굴이었다.
밝은 표정이었다. 서무과장 처럼 책략이나 아첨 같은 것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윤 사장은 은실이라는 처녀에게 호감이 갔다. 그 처녀라면 쉽사리 마음이 통할 것 같았다. 서무과장의 말대로 복잡한 책략이 오히려 창피한 생각이 들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