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교당국은 「性敎育」을 정식으로 中高等學校敎課過程으로 설정했다. 자라나는 세대지도에 있어 불가피한이 性敎育이 과거엔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은폐되었거나 아니면 확고한 기본방침 내지 계획없이 지도자 個個의 뜻에 따라 시행되어왔다.
이제 성교육의 회기적인 계기가 마련됨에 따라 이 문제와 직접 관련성이 있는 각계각층의 의견과 대안을 듣기로 한다. (편집자 註)
■ 倫理的(윤리적) 見地(견지)서 / 金泰寬(예수會神父)
▲原則(원칙)은 父母(부모)만이 다룰 수 있어
▪敎會(교회), 性(성)의 意義(의의), 적극적 價値(가치) 가르쳐야
識者들은 學校에서의 性敎育實施가 利로울것 보다는 害가 더 많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에 文敎部가 내놓은 性敎育指針은 新聞이 報道한 바로서는 어느 점이 어떻다고 아직 말할 수 없으며 또 자세히 비판할 紙面도 없으니 여기서는 다만 일반적인 고려를 펴 놓을까 한다.
性敎育은 두말할 나위도 없이 人間의 가장 깊고 內密的이며 高貴한 그렇기 때문에 가장 어려운 領域을 對象으로하고 있다. 性은 사랑과 행복뿐만아니라 生理的 必要的 人間 存在의 要素이기 때문에 性敎育은 父母들만이 온전히 다룰 수 있는 特權을 갖고 있는 것이다. 家庭이 이 特權의 行使를 포기하거나 등한히 함으로 혹은 無能하기에 이제야 文敎部나 學校가 한다고 나서게 된것이 아닌가.
모든 敎育의 主體는 家庭이며 국가나 학교는 父母의 家庭敎育의 自然權을 一部 委任받았다는 事實이 점차 망각되어가고 또 이제 그의 最後의 特權마저 넘겨버리게 된 셈이다.
敎會도 여기에 그 責任을 회피할 수는 없다. 敎會는 子女들의 性敎育을 포함한 家庭敎育의 義務와 權利 및 그 기술을 父母들에게 각성시키고 傳授해야 한다. 또 性教育에 있어 告白에 앞서서 基礎敎育에 힘써야하지 않겠나 생각된다. 듣는 敎會와 가르치는 敎會는 形式的이고 抽象的인 「하지말라」 式보다는 性의 意義 및 積極的인 價値와 動機의 提示와 指導를를 對話로써 연구하며 實行하는 것이 切實한 일이 아닌가 한다.
하여튼 學校의 性敎育의 目標가 어디 있는지 具體的으로 性에 관한 지식을 어떤 年齡에 얼마만큼 어떻게 公開敎育할려는지 그 指針이 明示되겠지만, 要는 敎師들이 얼마나 性의 像을 올바르게 副作用없이 심어주느냐가 問題라고 본다. 또 性의 生理的인 面을 宗教的 倫理的 意義와 分離시킨 說明이 可能할까 우려된다. 理想的으로는 男兒는 아버지 女兒는 어머니가 機會에 따라 또는 性의 問題에 대한 質問이있을때 理解能力에 알맞게 기피하거나 당황하거나 둔辭로써가 아니고 率直히 正確한 用語로써 계몽해주며 敎育形成해 가는 것이다. 학교는 父母의 이 敎育에 協調하고 人間으로서의 圓滿한 社會生活을 영위함에 있어서의 對人關係를 지도하는 것이 效果的이 아닐까. 敎會도 이点에 있어서 宗敎的인 動機를 뚜렷이 가르치고 父母들과 協力을 피해야 한다.
이 기회에 나는 현재 「경향잡지」에 연재되는 「나의 자녀교육」과 「유니버살문고」 「누가 우리에게 숨김없이 말해줄까」의 페레이라 神父의 글을 父母님들에게 추천하고 나의 所感을 맺는다.
■ “순결 교육 지침”을 읽고 / 金南洙(CCK事務局長)
▲「指針」 自體 固陋할 만큼 健全
▪「카운셀러」는 宗敎的 바탕있는 人士여야
최근 中央敎育硏究所에서 중고교 純潔教育指針을 발표하였다. 3년간의 연구를 종합하여 학년별로 성문제를 다루며 젊은이들의 순결을 최대한으로 보호해 보려는 의욕적인 연구였음을 엿볼 수 있다. 일정한 지침을 가지고 관계자들이 젊은이들 지도에 임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특히 한국에 있어서 구체적으로 성문제를 학교교육에 추가한다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며 또 시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기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는 성이 신비에 싸여 있었으며 아무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는 것이 지도층의 態度였고 그와 반대로 섹스를 자극하는 서적이나 잡지나 영화 혹은 망난이들의 그릇된 행동에 호기심을 가지고 불건전하게 자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한국 청소년들이라고 볼 때 가정교육에 앞서서 학교교육이 청소년들의 순결을 지켜주는 데에 주도역할을 한다는 일이라 하겠다.
부모들의 태도는 19세기에 머물러 있고 자녀들의 행동은 21세기를 달린다고 볼 수 있는 현시점에서 올바르고 건전한 성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은 모든 식자들이 인정 하고 있다.
純潔敎育의 指針 자체는 그 내용이 퍽 건전한 것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性行爲의 合理化는 結婚에서 이루어진다는 原則이라든지 結婚前의 남여교제의 원칙교제와 연애의 구별 또 연애기간의 인격존중 등 매우 유익한 점을 지침서에 넣어 놓았다. 어떤 점은 「고리타분」하다는 젊은 세대의 평을 들을지도 모를 정도로 건전하게 짜여졌다. 그러나 이 지침에 나타난 내용을 청소년들에게 납득시켜 가며 학교와 가정이 일체가 되어 청소년을 지도한다면 사회의 어지러운 현실 속에서도 건전한 청소년의 육성은 가능할 것이다.
여기서 크게 문제되는 것은 이 문제를 취급할 교사일 것이다. 교사의 도덕적 내지 교육적 입장이 확립되어 있어야 하겠고 또 문제를 다루는 교사는 무엇보다도 먼저 학생들의 존경과 신임을 받는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학생들 개인의 순결을 보호함과 동시에 사회적 환경정화를 진실로 원하고 있다는 확신을 소년들에게 줄 수 있는 인물이라야 하겠다. 할 수만 있다면 「카운셀러」의 직책은 잘 훈련된 가톨릭 평신자 교사가 맡거나 가톨릭이 아니더라도 어떤 종교적 바탕이 튼튼한 목사가 맡아 주었으면 보다 좋은 효과를 거룰 수 있을 것이다.
■ 歐美의性敎育 / 張震(西江大敎授)
▲二·三(2·3)십년前(전) 性知識(성지식)으로 充分(충분)
▪自然(자연)관찰서 점차적으로 人間生理(인간생리) 도달
한 개인의 성에 관한 필요하고도 정확한 지식이 그리고 그보다도 더 중요한 성에 대한 태도는 그 知識의 習得經路와 방법에 많이 좌우되는 것이다. 인류가 생겨난 이후 어른들이 어느 연령에 달한 아이들에게 이것을 옳게 전달하려고 여러가지로 애를 써왔는데 근래에 와서는 이것을 새삼스럽게 性敎育이라고 부르며, 최근에 발견된 自然科學的 知識을 다 집어넣어 이것을 학교의 正規科目으로 昇格(?)시켜야만 속이 풀리겠다는 감을 주는 사람도 없지 않다.
그러나 생리학적 입장에서 보면 청소년이나 일반인이 가져야할 정도의 성에 관한 지식은 2.30년 전까지 밝혀진 것으로도 충분하고도 남는다. 그후에 알게된 것도 물론 많다. 이것을 모두 다 쓸수도 없는 것이고, 또 최근에 발견된 生理知識을 써야만 性敎育이 제대로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면 문제는 현존하는 생리학적 지식을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된다. 즉 어느 부분을 쓰며, 어떻게 가르치느냐가 된다. 성에 관한 생리학적 지식을 가르치는 데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예로부터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 중의 하나로 자연의 관찰을 통하여 점차적으로 인간의 性生理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스푸트니크」 발사 후 美國에서 자연과학교육을 刷新코차 政府의 財政的 뒷받침으로 대학교수 근1백명과 고등학교 교사수 10명 기타 교육전문가가 한군데모여 執筆하고 수년간 실시사용을 통하여 매년 改版한 결과 만들어진 고등학교 生物學 교과서가 있는데, 여기서는 單細胞生物의 生殖에서 시작하여 下等과 고등식물 그리고 하등동물의 생식과정을 순전한 생물학적 현상으로 다루고 그에 바로 이어 인간의 생식생리도 아무 예외가 아닌 것으로 내분비현상에서 비롯하여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또한 미생물에 관한 부분에서는 人間에 有關無關한 여러가지 미생물을 다루면서 그중의 한 예로서 매독균의 생태에 관하여 상세하게 설명이 되어있다. 성교육 어느 단계에 생리적면을 다루는데 있어서는 아마도 고등학교의 생물학교사가 가장 직접 관여하여야 될 것이나, 성교육이란 생리적 지식의 전달만이 전부가 아니고, 이것은 부모, 교육자, 종교가, 위정자, 일반사회인이 꾸준히 힘을 합해서 노력하여 성에 대한 올바른 태도를 길러주는 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 하겠다.
이 두 가지를 어떻게 하면 현시 우리나라의 사정에 가장 알맞게 할 수 있는 가에는 종교가, 심리학자, 사회학자, 교육자의 옳은 연구에 기대하여야 할 것이며, 이것이 어느 정도 테두리가 잡히기 위해 급격히 또는 서투르게 서두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것이 아닌가 한다.
■ 어머니로서 / 金粉七(국민대학교수)
▲無用한 자극으로 혼란 없어야
▪꼴불견이던 「아벡크」 이젠 오히려 안정감 줘
해방 후 美軍이 처음 주둔해 왔을때 하도 異性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보고 저것도 사람인가 할 정도로 못 마땅히 여겼다. 그 후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男女 나란히 거리를 거니는 것이 눈에 거슬렸고 부인과 같이 물건 사러 다니는 남자를 이상하게 생각한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인제는 그러한 관경이 하나도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고 그 반대로 생각된다. 음식점에서 교외에서 성당에서 여행에서 그러한 광경은 오히려 행복하고 안정하게 느껴지고 노인 할아버지께서 할머니를 앞세우고 성당에 가시는 모습은 더 다복하고 훌륭해 보인다. 그리고 외국 다녀온 젊은이들이 서로 존중하고 아끼며 즐겁게 열심히 잘사는 것을 본다. 아이들을 기를 때 당연한 질문을 받고도 어른이 당황하여 당연히 해야 할 답변을 못하고 회피해 버리고 마는 때도 있다.
이것은 크면 자연히 알게 되리라는 막연한 생각일 것이다. 필요와 알고자 하는 의문임을 알아야 할 것이며 이에 대한 해결이 적절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 된다.
그러나 어머니로서 염려되는 점은 방법과 時期를 어떻게 적절히 하느냐 하는 문제이다. 장차 이 나라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 問題이니만치 관계당국이나 지도자들은 좀더 誠意껏 연구하여 확실한 科學的인 근거와 재료로 責任지고 계획을 세우고 實施를 指導하여 혼란과 희생이 없어야 하겠다. 쓸데없는 자극으로 한창 배워야할 시기에 정력이나 時間을 낭비하여 能力의 低下를 가져 올가 염려된다. 무작정 외국을 모방하는 것은 현재의 갈등과 혼란이 염려 된다. 과거의 한국의 풍습에도 우리의 생활에 맞고 적절한 것도 있으니 여러가지 면에서 우리의 사정을 여러모로 연구하여 명실 공히 우리의 아이들의 앞날의 도움이 되게끔 방법과 時期를 잘 연구하여 실시하여야 하겠다.
한편 기성인 어머니는 아이들과 같이 공부를 하여 이에 대한 이해로서 뒷받침이 되어야 하리라고 믿는다.
■ 젊은 世代 發言 / 오계실(女大生)
▲“性은 왜 共存해야 하나?”
▪징계·명령·추상적인 說法벗어날 때
生의 한가운데로 뛰어든다. 나는 정박하지 않은 조그만 배다. 배는 바다 한복판에 떠서 어느 쪽으로 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는 완전한 個體로서 나의 存在를 끊임없이 지켜보겠다.
이 인용구는 요즘 젊은이들 간에 있어선 일종의 장마뒤 버섯작용을 일으킨 用語다. 송이버섯이나 싸리버섯 따위의 값비싼 종류로 맺어진 결과도 있겠고 독버섯처럼 남한테 害를 끼치는 종류의 결과도 있을 법하다.
문제는 他人의 생각을 받아들이는데 있다. 전혀 상상도 못해 본 사실에 있어 수줍음을 억누르고 있는 그대로를 재빨리 받아들일 수 있게끔 助力을 주는데 있다.
性은 男性과 女性의共 共同소유물이다. 그 둘사이 어느것도 더 우월하지는 않다. 그것은 서로 共存하여야만이 비로소 창조의 힘을 가지게 된다. 창조의 힘이란 人間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근본적인 生의 活力, 다음 世代에 대한 자연반응적이고 연대성을 띈 거센 물결이다.
中學生 시대에 팽창된 호기심을 이끌어 性의 진실된 面을 차곡차곡 정 리해 주었더라면 뒤에 닥치는 혼란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텐데…라고 생각해 보았는가. 지금까지의 우리 어버이들은 징계명령, 추상적인 說法에 의지해서 이 문제를 다루어왔다. 허지만 장차 生이 주는 意味가 한층 절실해지리라고 여겨지는 우리들 자신과 아이들에게는 왜 두 性은 서로 共存하여야만 하는지, 그렇다면 어떠한 관계가 성립되어야만 하는지 타당하고도 뚜렷한 目的의식이 필요하다.
이 문제는 生活 자체에 대한 意義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共同體인 그 社會의 견고성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너무나도 변하는 세계에서 웃세대들의 우직스럽고 무성의한 助力에 우리는 괴로움을 받아왔지만 앞으로의 世代에게는 그런 괴로움을 맛보게 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자연스럽고 당당하게 서로가 저마다의 가치를 존중해 주고 도울 수 있는 社會基調의 확립에 우선 마음을 모아야하겠다.
■ 카운셀러의 辨 / 張安羅(大邱曉星女中教師)
▲잘못하면 逆效果 낼 우려도
▪性에 대한 공포·죄악감으로 정서 불안정
정부는 고등학교교육에 性교육과정을 두기로 했다고 한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그이론 보다도 우 리의 현실이 더욱 중히 참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순진한 소년 소녀들이 성장, 발달과정에 있어서 춘기에 접어들게 되면 자아의식이 강해짐과 동시에 자신들의 생리적 변화나 신체발달의 현상에 경이와 호기심이 강해지며 자기와 다른 性에 대한 호기심도 병행해서 일어나게 되므로 이러한 변화와 미지의 세계에 대해서 알아보려는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정보제공의 대상이 저희들과 같은 또래의 동무들이거나 어른들 몰래 숨어서 읽는 에로 잡지들이기 때문에 그런데서 얻는 지식을 바른 지식이기를 바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오를 저지를 위험성도 그만큼 크다.
중학교 상담실을 통해서 본 사춘기소녀들이 가진 문제의 사례를 일일히 예거할 수는 없지만 성에 대한 공포, 혐오, 죄악감 등으로 인한 고민으로 정서불안정상태를 초래하고 그로 인하여 파생되는 문제들이 많이 있는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주로 성에 대한 무지와 그릇된 지식 등을 들 수가 있다. 애띤 얼굴의 소녀가 수심에 잠겨 수집어 하면서 떠듬떠듬 호소하는 것을 듣고 있노라면 成人들에게는 포복할 웃음거리 밖에 되지 않는 일도 있고 『이 어린것들이…』하고 대경실색할만한 일들도 가끔 있다. 그래서 이러한 사례에 부딪힐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 방법이 문제이다. 누가 어떤 방법으로 가장을 바르고 가장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이다. 교사의 태도나 교수 방법여하에 따라 가장 예민한 사춘기의 소년 소녀들에게 자극을 주어 자는범을 깨우거나 충동질을 하는 역효과가 생겨서는 안 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그 성격과 환경이 다른 아이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효과 적이며 건전한 성교육을 한다는 데는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다.
비교적 성적인 생활면이 공개(?)되고 있다는 서양사회에서는 소년, 소녀들이 가정이나 사회에서 거의 같은 수준의 성교육을 받고 있기 때문에 학교에서의 성교육도 우리나라에 비해 무난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역시 곳에 따라 사람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비판을 받고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와 같이 천차만별인 성교육의 기초지식과 아직도 확립되었다고 볼 수없는 우리나라의 여성관과 여러 계층의 성생활 환경에 놓인 아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천편일률적인 성교육을 한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따라서 문교부는 이와 같은 점에 유의하여 용의주도한 계획과 방법을 먼저 연구해야할 것으로 본다.
적어도 일반지도의 深度와 개별 지도의 심도는 엄히 구별해야 할 것이고 처음에는 지나치게 졸속한 과정을 정하거나 성지식의 제공에만 치우치는 무모한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또한 성교육에 앞서 적절한 교사를 선택하고 양성하는데 많은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