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화란 「암스텔담」에서 제1차 창립총회를 가진 WCC(세계교회협의회)는 20년간 계속 발전해서 지난 7월 4일부터 19일까지 스웨덴의 「웁살라」에서 제4차 총회를 가져 교회일치운동에 큰 박차를 가했다. 물론 WCC가 있기 전에 이미 20세기초부터 그리스도교의 분열을 지양하기 위한 범교회적 연합운동이 여러가지 모양으로 일어난 것이 사실이다.
가령 신앙과 직제·세계 사회봉사사업·세계 선교사업 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던 교회일치와 연합사업이 WCC에 모두 통합됨으로써 WCC는 프로테스탄트의 가장 큰일 일치기구가 된 것이다.
처음 가톨릭은 프로테스탄트의 연합운동과 WCC 운동에 냉담한 태도를 취해오다가 요한 23세의 폭넓은 아량으로 1961년 인도 「뉴델리」에서 있었던 제3차 WCC총회에 정식으로 「옵서버」를 보내어 프로테스탄트의 교회일치운동과 관계를 맺게 되었다. 당시 요한 23세는 「바티깐」 공의회의 개최를 앞두고 프로테스탄트 측의 일치에 대한 상황을 탐색하기 위하여 「옵서버」를 처음으로 보냈다.
그 후 1962년부터 65년 사이에 있었던 제2차 「바티깐」 공의회에 프로테스탄트 측의 「옵서버」를 초청하고 그들과 대화의 길을 열므로써 가톨릭·프로테스탄트간의 일치의 대화는 크게 진전을 보았던 것이다. 이번 「웁살라」 대회에는 가톨릭 측의 대표 3명(바바라·워드 여사, 빌레브란트 주교, 뚜치 신부)가 총회에서 강연을 하고 교황은 정식 메시지를, 그리고 일치국장 베아 추기경은 장문의 서한을 보내어 WCC의 사업에 성원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교황과 베아 추기경의 말씀은 WCC총회대표들로부터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로마」의 「치빌따·카톨릭」 잡지의 편집인으로 있는 뚜치 신부는 카톨릭이 WCC의 정회원으로 가입해서 일치운동을 전개하지 않는다면 두개의 일치운동으로 굳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말한 다음, WCC는 가톨릭이 가입할 수 있도록 보다 문호를 개방하고 기구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이번 「웁살라」 대회의 두드러진 결과로는 가톨릭이 WCC의 「신앙과 직제위원회」에 정회원으로 9명의 학자들을 가입시킨 것이다.
이 위원회는 WCC의 연구위원회로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하나인 사실을 항상 WCC에 명시하면서 신앙과 제도 그리고 예배에 관한 교회일치문제를 사회, 문화, 정치, 인류의 기타 요소들을 들어 연구하는 위원회다. 이 위원회의 역할은 교회일치의 많은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번에 가톨릭일치국에서 제출한 9명의 신학자들의 명단이 WCC총회에서 정식으로 인준된 것이다. 이 위원은 정식회원교회 아니라도 정회원을 낼 수가 있게 되어있으므로 가톨릭에서도 위원을 파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앞으로 가톨릭이 다음회에서 WCC의 정식대표로 가입될 수 있는 길을 마련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WCC에 가톨릭이 가입하는 것으로 교회일치가 이룩되는 것이 아닌만큼, 앞으로 가톨릭·프로테스탄트 양측에서 일치를 목표로 어떻게 일을 전개하느냐가 더욱 관심사다. 그래서 「바티깐」 교회일치국의 간부인 하머 신부가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은 의미심장한 바가 있다.
『가톨릭교회가 WCC에 가입하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함께 일해나가는 것이다.』 「웁살라」대회에서 재미있는 현상은 「만물을 새롭게」라는 주제를 들고,
교회의 급진적 개혁을 요구하는 청년들이 기성세대를 무위와 기회주의자로 불신하면서 일으킨 데모인데 그들이 편집해서 돌리는 「핫·뉴스」라는 유인물은 교회의 앞날에 대한 새희망과 전진을 기탄없이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가톨릭신부와 젊은 가톨릭신자들이 교회당국에서 아직 허락치 않는 타교파 성찬식에 참여하여 성찬을 배령한 것 등은 젊은 새세대가 교회일치를 지금 당장 요구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될 줄 믿는다. 루터교 성찬식에서 영성체한 화란의 바이저 신부는 『나는 성찬식에 너무 감동되고 열중한 나머지 성찬을 배령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타교파의 영성체가 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 했다. 일치국에서 가르치는 교령에 의하면 타교파의 주일예배나 그 외 정식 성찬식에 가톨릭신자들의 성찬배령을 금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성체에 대한 교리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젊은 세대는 비록 교리가 서로 다르지만 신앙생활에 도움이 된다면 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시위적으로 행한 일인 줄 안다.
이와 같이 급 템포의 일치를 바라는 젊은 세대가 있는가하면, 그것을 죄악시하여 배타적 또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는 이도 많다.
바오로 6세가 6월 30일자로 발표한 「하느님 백성의 신경」에 대해서 「웁살라」에 모인 프로테스탄트교파 대표들은 가톨릭이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이전의 노선 즉, 「로마에로의 복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고, 더우기 인공 산아제한 금지에 대한 7월 29일의 칙서로 가톨릭의 교회일치운동은 앞으로 적지 않은 난관에 부딪치지 않을가 생각된다.
가끔 교회일치운동의 전체 분위기는 한 작은 지방의 분쟁으로 인해서 깨어지는 수가 많다. 가령 수원에 있는 서둔교회의 경우가 그렇다. 필자는 수원교구에서 좀 더 아량있게 장로교회의 요구를 들어주기를 누차 바래왔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순교복자들을 기념하는 성당건립도 좋지만, 전세계적으로 가까와지는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우호적 분위기를 한작은 지방의 몇몇 사람들의 몰이해와 아집때문에 무너뜨리는 처사는 지극히 마음 아픈일이다.
「웁살라」대회의 소식을 멀리 통신을 통해서 들을때 가톨릭 프로테스탄트의 수뇌부들 사이는 때가 까와지는 듯하여 위로가 되지만 가톨릭의 일방적 보수주의에로의 복귀와 지방교회에서의 몰이해 등에생각이 미칠때 「웁살라」대회에서 가톨릭 프로테스탄트간의 화해의 분위기가 과연 한국과 같은 나라에서 어느 정도나 영향을 끼칠수 있을 것인가 하는 회의를 금할 수없는 것이 오늘 필자가 가지는 심정이다. (한국주교단 교회일치 위원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