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宗敎觀(종교관)] ⑬ 神(신)에 대한 畏怖感(외포감) 버릴 수 없어
宗敎(종교)없이 無信論者(무신론자) 못되는 자가 당착 알아
발행일1968-08-11 [제630호, 4면]
小學校 2학년 때 일이니까 벌써 30몇년전일 문자 그대로 아득한 옛 얘기를 늘어놓게 되는 셈이다.
같은 크라스에 詩人 金요燮이가 있었다. 요燮의 말에 의하면 자기가 나가는 敎會에 나가면 연필 두 자루를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일요일날 골목대장이었던 나는 코흘리개 개구장이 다섯 명을 이끌고 敎會에 가서 연필 열두 자루를 얻었다. 공평하게 두 자루씩 분배해야 할 것을 나는 완력으로 모두 착복(?)해 버렸다. 요즘 말하는 일종의 경제깡패다.
다음 일요일날 역시가 가기 싫다는 개구장이들을 이끌고 교회에 갔더니 연필분배가 없었다. 연필분배가 없는 교회에 나가는 것은 시시한 일 같아서 그만 발을 끊었다.
사십평생 결혼식과 장례식을 제외하고 교회에 나가 보기는 이것이 처음이요 마지막이었다.
그만치 나의 반생은 종교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렇듯 종교와 거리가 먼 생을 영위해 온 것은 나의 생활환경에 연유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내가 태어난 咸鏡北道 濟津이란 都市는 宗敎的 雰圍氣와는 도무지 거리가 먼 살벌한 공업도시였고 나의 家庭환경역시 宗敎와는 인연이 없는 지극히 實利主義的인 家庭 이었다.
이러한 분위기와 환경 속에서 성장한 나는 어느 듯 無宗敎主義者가 되었다. 뿐만아니라 精神的 發育期이라고 할 青春時代에 心醉한 「크로뽀도링」의 影響이나로 하여금 宗敎와는 더한층 거리가 먼 人間으로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나의 無宗敎主義는 무슨 뚜렷한 理論이나 信念이있어서가 아니다. 뿐만아니라 無宗敎主義者로 자처하는 나는 결코 無神論者가 아니다. 여기에 自家撞着이있고 二律背反이 있다는 것을 나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리고 神에의 歸依만이 영원한精神의 救援임을 나는 자각하고 있다. 나 이상으로 종교와는 거리가 먼 이단자로 알려졌던 詩人 李漢稷 兄이 가톨릭에 歸依했을때 나는 人生에 대한 끝없는 엄숙함과 동시에 어떤 畏敬感마져 느꼈다.
어찌보면 이것은 神에 대한 엄숙함과 동시에 어떤 畏포感이었을 지도 모른다.
지금 나의 처가 편은 모두가 독실한 가톨릭신자들이다. 나만이 宗敎的인 孤立狀態에 놓여 있다.
그러나 그러한 宗教的인 孤立狀態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그것은 나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