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藝時評(문예시평)」「聖金曜日(성금요일) 午後(오후)」의 問題(문제)
忍苦(인고) 通(통)한 永遠(영원)에의 覺醒(각성) 그려
社會(사회)·歷史(역사)의 리얼리티 외면한 채
지나치게 神(신)에게만 붙들린 人間像(인간상)
馬白藥씨의 처녀창작인 「聖금요일 午後」는 문학예술과 신앙의 길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몇가지 문제를 제기해준다. 이 소설은 지난날 우리가 더러 보아온 국내작가의 종교소설들에 비해 다음과 같은 이채로운 점들을 지니고 있다.
첫째 주인공 석윤은 신앙을 전제한 나태의 타락으로서가 아니고, 처음부터 신에게 다가서 있는 立地에서 순전한 본능적반발로 신에게 對立하기 시작한다. 그것이 神學生인 석윤이 어린동생들의 유혹에 호응, 처음으로 술에 취해보는 장면이다.
다음은 은총의 집에서 축출당한 석윤이 서울에 올라와 市井의 골목에서 생활의 困苦를 체득하는 전개.
셋째는 신을 공격적인 자세로 증오하는 단계에로 발전.
넷째는 忍苦가없는 安易의 댓가로는 영원의 세계에 들 수 없다는 각성이 착실한 理性的調理를 수반했다는 점이다.
이상 소설의 主題 전개가 짜임새를 갖춘 위에 교회의 환경을 깊이 아는 데에서 얻을 수 있었던 「디테일」들이 또한 소설의 살을 이루고 채취를 짙게 했다. 이런 요소들이 이 소설의 特長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소설은 반면에 몇가지 결함도 가지고 있다. 주인공 석윤이 순교자의 가문에 태어나 신학생의 신분에까지 이르기는 했었지만 소설전편을 통해 이 인간상은 너무도 神에게 밀접히 붙들어 매어져 있어서 그 긴장감이 좀 병적일 정도다. 건강한 신경의 아들은 어버이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는 법이다. 설혹 일시 탕아의 길에 들어설 경우라도 차라리 우울증을 걷우고 선선히 한 번 놀아나볼 성벽도 인간에게는 자연스럽게 잠재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탕아가 집에 돌아갈때 말없이 그리고 눈물도 없이 그저 씩 웃어뵈고말 신경이야말로 얼마나 깊은 사랑이며 당당한 신앙인가.
서윤의 폭 좁은 집착은 그의 서울 생활에서도 開放된 全般의 社會狀況에 도무지 눈을 돌리지 못한다. 社會와 歷史의 「리얼리티」에는 온전히 접촉도 못하면서 어두운 뒷골목에 해삼이나 팔러 다닌 것으로써 사회를 체득한다.
그리고는 俗世의 邪惡을 은총의 세계에 對照시킬 필요에서였는지 타락한 사회상의 외줄기 定型만이 석윤의 앞에 등장한다. 즉 행색도 초라한 고학생 석윤이 가는 곳에는 언제나 여자들의 유혹이 쫓는다. 석윤이가 정교사로 들어갔던 난주네 집에서는 난주와 그 언니 명주 그리고 난주의 어머니까지 합쳐 세명의 여인이 석윤을 사랑하겠다고 가진 탐욕스런 방법으로 접근해 든다.
이 定型은 석윤이 군대에 입대했을 때에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대대장의 처제인 경희의 접근을 당해 소대장 강중위로부터 더욱 박해를 받게 되는 것이었다.
석윤이 終章에서 죽음과 永遠을 앞에 놓고 깊은 오뇌에 빠지는 장면엔 상당한 「리얼리티」가 있다. 여기서 석윤이 神에 대한 항거에서 좌절하고 그리스도교의 救濟原理를 조리 있게 생각하고 다미안 神父의 忠直한 사랑에 감화되어 눈물을 흘리며 告白하고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소설의 이 終章은 역시 定型的 종교극의 圖式을 보여준다. 가령 우리는 석윤의 마지막 운명을 놓고 이런 가상을 가져볼 수도 있겠다. 즉 죽음 다음에 올 永遠에 대하여 전혀 功利的인 계산을 排除하고 다만 자신이 최선을 다했느냐 하는 점만을 담담히 생각하는 것이다. 최선을 다했지만 잘못된 일에 대해서는 쓸쓸한 웃음을 머금으면서, 神의 용서를 믿어 좌절도 공포도 없는 平和속으로 進入할 수는 없을까. 그리고 정말 철저하게 끝까지 불우하여 마지막시간에도 영혼을 치료해줄 神父가 채 도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석윤이 비록 가슴에는 피를 흘리며 형장에 쓸어졌지만 그의 얼굴에는 평화가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궁금히 그리고 열심히 생각하는 것이다. 석윤의 영혼은 구제된 것일까 아니면 죽어버린 것일 까고.
이와 같은 의견들이 「聖금요일 午後」가 내포한 勞苦에 대한 敬意에 덧붙여 다른 한편으로 아쉬워 해보는 점이다. 종교에서 主題를 잡았든, 시민의 街頭에서 주제를 잡았든 위대한 作品은 능력도 큰 법이다. 모든 곳의 누구에게나 열심히 읽히며 오래 산다. 우리가 낳는 작품들을 스스로가 겸손히 注視하고 또 반성도 하면서 끊임없이 노력을 더하기로 하자.
具仲書(文學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