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5) 兄弟(형제) ⑤
발행일1967-11-05 [제592호, 4면]
어머니의 생일잔치를 한다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웅성거리고 있었다. 윤이도 있었고, 윤이네집 식구들도 모조리 와있었다. 그런데 집은 정식이 어릴적에 살았던 한옥이었다. 그 넓은 대청에 음식상이 즐빗이 놓여 있었다. 모두들 이상한 옷들을 입었는데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이상한 옷들이었다. 풍속화(風俗畵)에서 본 그런 옷들이었는지도 모른다. 윤이만이 평소 그가 즐겨입는 오리브빛 원피이스를 입고 있었다.
윤이는 생일 선물인 「네크레스」를 가지고 와서 『제가 걸어 드릴게요』 하며 한복 차림인 어머니 목에 걸어주려고 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서운 눈으로 윤이를 노려 보다가 싹 돌아앉아 버리는게 아닌가.
『어머, 왜 그러세요?』
윤이는 울상이 되어 말했다.
『윤이!』
정식은 안타까워 소리를 질렀다.
『윤이! 오해하지 말어! 어머니는 한복을 입으셨기 때문에 그러는어야!』
사람들에게 떠밀려 나가면서 발버둥을 치며 정식은 소리를 질렀으나 목소리는 목구멍에서 꺼져버리고 만다.
윤이는 훌적훌적 울기 시작했다.
『윤이! 어. 어머니 윤일. 윤일 울리지마세요. 어머니!』
있는 힘을 다 짜내어 소리를 질렀으나, 그러면 그럴수록 목소리는 목구멍 속에서 꺼져버리고 사람들을 헤치며 정식은 앞으로, 그들 곁으로 갈려 했으나 다리는 마치 허공에 뜬듯, 물 속에서 헤염질을 하듯 앞으로 나가지질 않았다.
이때 어디선지 윤식이 달려나왔다. 그는 괴상한 고함을 지르며 달려나왔다. 윤식은 상위에 차려놓은 음식을 모조리 때려업고 통닭구이를 놓은 커다란 쟁반 하나를 번쩍 치켜 들었다. 그것은 윤이를 향해 던졌다.
『아악…』
…………
꿈이었다. 잠이 깨었을 때는 몽롱하여 기억해 낼 수 없었던 꿈이 지금 생생하게 떠오른 것이다.
정식은 윤이를 만났기 때문에 꿈 생각이 났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으로 밀어내버리기에는 어쩐지 징그러운 꿈이었다. 전개된 사건이 끔직하다기보다 꿈의 장면가득히 넘쳐있는 불길한 분위기가 지울 수 없는 묘한 암시를 내포하고 있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한 날이야. 재수가 없는 날이구나)
『어머,』
윤이 목소리에 비로소 정식은 제정신으로 돌아가며 고개를 흔들었다.
『얼굴이 몹씨 창백해요』
근심스런 표정으로 윤이는 정식을 바라보았다. 정식은 아까 갖다놓은 그래서 다 식어빠진 커피를 마신다. 음악이 몹씨 귀에 거슬렸다.
『건방진 말을 하길래 한대 쳐주었더니 코피가 흐르더군』
중얼거렸다.
『윤식씨를?』
『음』
『가엾어라. 폭력 쓰는것, 그건 나빠요』
윤이는 얼굴을 찡그린다.
『얘가 자꾸만 뒤틀려가는 것 같단 말이야』
『그럴 수 밖에 더 있겠어요?』
『………?』
『수재가 시골로 쫓겨갓으니 울적했을거예요』
동정적이었다.
『그게 뭐 남의 탓인가?』
『………』
『시험에라도 떨어졌다면 운수가 나빴다 하겠지만 거뜬히 대학에 들어가서, 그도 좋은 성적으로 입학해가지고 그 꼴이 된 것을 누가 책임을 져? 자기 자신이 책임 질 수 밖에 없는 일이지』
『그야 그렇죠. 하지만 그렇게 된 동기는 있을거 아니에요?』
『동기?』
충격적인 표정이 정식의 얼굴을 꾸겨놓는다. 그는 스스로 마음을 가다듬으려고 노력한다. 그의 귀에는 사기꾼이니 유령이니 하고 발악하던 윤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범자는 그런 소리 할 수 있다 하면서 냉소를 띠우든 윤식의 얼굴도 눈앞에 떠올랐다.
『동기… 무슨 동길까? 집안의 사정이야 옛날이나 기금이나 달라진게 없어. 갑자기 심경에 변화가 올만한 아무일도 없더』
대범스러움을 가장하며 정식은 천정을 올려다보는 시늉을 했으나 마음은 결코 평온할 수 없었다. 정식은 윤이가 자기 집안을 존경하지 않는 경우를 상상하는 일은 괴로웠다. 서로 사랑하면서 물론 윤이의 나이 어리기는 하지만 아직 약혼의 단계로 넘어서지 못하는 것은 적극 반대는 아니라 할지라도 윤이네 가정에서 다소의 망서림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정식은 눈치채고 있었다.
『뭐 반드시 집안 사정 때문에만 그런건 아니잖아요?』
『그럼?』
『제가 생각하기론 윤식씨가 혹』
『혹?』
『연애같은 것 실패한 거 아닌가 하구요』
그 말을 할 때 윤이는 퍽 어른스럽게 보였다.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지』
안도감 비슷한 것을 느끼며 정식이 말했다. 그러나 꿈이, 마치 고약처럼 뇌신경에 누러붙은 것 같아 정식은 여전히 불안에서 해방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