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發(개발)되는 農村(농촌)찾아 - 疏外(소외)된 社會參與(사회참여)의 動脈(동맥)] ⑩ 부산 山城農場(산성농장) (上)
구라파 산간 수도원 방불
畜産(축산)의 最適地(최적지)
인내·낙천적 미래관의 李(이) 신부
농촌개발의 백년대계
경부선 구포(龜浦)역에서 10리쯤, 金井山을 뒤로 넘어 동래온천에 이르는 삼거리에 金城동이 있다. 웬만한 애주가(愛酒家)들은 이 金城洞의 이름만 들어도 희색이 만면해진다. 옛날부터 곡자로 이름이 높아 洞里아낙네들은 누룩을 밟아 팔기도하고 밀주를 담아 원근 각지에서 찾아드는 酒仙들을 환대하는 걸로 생업을 삼아왔다. 따라서 金城마을은 山村답지않게 유족했던 모양이다. 금생여수(金生麗水)라… 금정산의 금성동, 물이 좋으냐, 바람이 맑으냐, 金城洞의 막걸리는 천하의 일미로다.
이 아담한 산촌을 왼편으로 끼고돌아 멀리 洛東江의 끝없는 하구를 굽어보며 오르기 2천7백m, 도로폭 6m의 잘정리된 산성농장 전용도로가 있다. 옛날 산성의 유적이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있다. 이조때 군마(軍馬)를 사육했던 곳으로 알려졌고 임진왜란 때는 왜병들도 이 산성만은 모르고 지나갔다고 전한다.
축산의 최적지로는 역사적이라고 자랑할만도 하다. 표고 3백m에서 6백m사이 7만평의 광활한 목장, 경사도 3도에서 25도까지, 평균 15도 이내며 土層2백cm의 부식양토 PH5내지 6.5, 쉽게 말하면 온산이 부엽토고 간간히 암석이 노출되어있으나 이 암석함유량 1m평방을 제거하는데 소요되는 인력으로 표시한다면 0.01내지 0.03인 정도다.
여기에 부산교구의 원대한 꿈이 있고 농촌사회 개발과 농촌본당의 앞으로의 성화를 약속할 포석이 말없이 커가고 있는 것이다. 목장입구에서 내려다보는 전경은 목장이라고 하기보다 구라파의 산간 수도원을 방불케 한다. 폭 4m, 연장 3천4백m의 잘 정비된 농장내 도로는 농로라기 보다 웬만한 국도(國道) 못지않다. 5동의 간부 숙 사를 위시하여 2백평의 유우사 3백평의 돈사 등 연건평 약1천평의 건물들은 총화강석 말하자면 총석조전이다. 현지의 무진정한 석재를 이용한 것이지만 목장으론 사치스럽기도 하다. 그만큼 부산교구가 염원하는 농촌개발의 백년대계가 엿보여 한편 마음 든든함을 느끼기도 한다. 또 하나 다른 농장과 특이한 점이들 많은 건물들 중앙에 아담한 성당이 따로 건립되어 있는 점이다. 흰 화강석의 뾰족한 종각까지 달아놓은 이소성당은 한적한 자연과 주위풍경과 잘 조화되어 참말아름답다. 장차 피정의 집이라도 마련할 생각이냐고 물었더니 『그럴 생각은 없고 사람이 밤낮 노동만 할 수 있느냐 기도하는 시간도 있어야하지 않겠느냐』는 이영식(李永植) 신부의 대답이다.
이 신부는 구포본당주임으로 이 중앙농장과 앞으로 실천에 옮길 가축사육훈련원, 협업유축농가조합 계획 등의 총지휘자다. 이를테면 이산성의 총수(總帥)요 대영주(領主)다.
젊은 시절을 프랑스에서 보내고 빠리 유학당시는 그곳 사교계의 총아로 한국유학생간에 인기를 독차지했다고 듣고 있던 터라, 백석에 미목(眉目)도 수려(秀麗)한 「빠리쟝」을 연상했더니 어쩌면 사람의 상상이 실제와 이처럼 다를까? 25관은 족히 상회함직한 거구에 아무리 봐도 국산 흑인이다. 삼베등거리를 걸쳐입고 돈사에서 나오는 이 신부의 검고 깊은 눈속에 즐거움과 유모어가 함께 담겨있다. 돼지들도 신부의 사목 이념이 잘 통하여 예정대로 새끼를 잘 낳아주는 모양이다.
이 신부는 천성이 과묵하여 말이 없고 남에게 반대하고 있을 때도 모든 감정을 불화불량을 모르는 그 웅대한 뱃속에 담아 혼자 잘 삭히는 모양이다. 오늘 이 방대한 농장을 이룩하는 데는 많은 잡음과 남모를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농민 독특한 인내와 낙천적 미래관이 이 신부의 체취로 풍겨온다. 경남 진주 장제리 산, 지독한 시골농갓집 아들이다. 그만큼 그는 농촌 실태를 잘 알고 농촌 사목의 앞길을 환히 내다보고 소신 있는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무엇을 생각하는지 말없이 소들을 내려다보고 섰는 농촌의 아버지 이 신부. 무한한 신뢰가 간다. (계속)
金達湖 記(本社論說委員·慶大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