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24)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⑩
발행일1968-08-18 [제631호, 4면]
『일은 사실 이때부터 벌어지기 시작했지. 그 청년은 그러니까 인생의 십자로에서 며칠 동안을 고민했던 모양이었어. 의리로 보면 이미 아이까지 낳은 여자가정교사와 결혼을 해야 할텐데 그렇다고 주인댁의 청을 잘라서 거절할 용기도 나지 않았던 거겠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만일 주인댁 맏딸과 결혼한다면 단번에 거부가 되고 또 해외에 나가서 젊은 힘과 야망을 마음껏 풀어 볼 수 있을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의리에 얽매어 여자 가정교사와 결혼한다면 그는 한낱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월급쟁이로 그날그날 생활에 허덕이는 범용한 위인이 되어버릴 거란 말야. 그러니까 그 청년은 며칠을 두고 곰곰히 생각하며 크게 고면을 한거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결국은 어느 날 그 청년은 드디어 결론을 얻었던 모양이야.』
『어떻게요?』
은실의 묻는 말에는 날카로운 울림이 섞인 것 같았다.
『은실이, 은실이는 아마 지금 그 청년을 대단히 경멸할 테지만 그 청년은 그때 야망이라는 큰 힘에 포로가 되었던 모양이야. 그 청년은 명석한 두뇌와 정렬과 함께 충분한 수완도 가지고 있었지. 주인댁에서도 그것을 잘 알고 그 청년을 사위를 삼으려고 마음속에 결정을 하고 있었던 거야.』
『그렇지만 아무리 야망이 크더라도 의리는 또 의리대로 지켜야 하지 않을까요?』
은실은 지금까지의 수줍음이 자취를 감추고 강렬한 시선으로 윤 사장을 바라보았다.
『그야 그렇지. 그건 뻔한 노릇이지. 왜냐하면 윤리감이 없는 야망은 죄이기 때문이거든. 그렇지만 한번 젊은 정렬로 큰 야망에 사로 잡힐때 그 사람의 논리는 변질을 하고 마는 거야.』
『어떻게요?』
『그런 의무적 조건을 그대로 목적을 향해서 전진하는데 한 난관으로만 보는 거지. 그 청년은 그때 이렇게 생각했던 모양이야.』
여기까지 말하고 윤 사장은 또 가슴이 벅찬 듯이 한숨을 쉬고 천천히 새로 담배를 피어 물었다.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는 두 가지가 있다고 생각했지. 하나는 승리의 길이고 또 하나는 패배(敗北)의 길이야. 인생을 가치있고 크게 살려며는 어디까지나 승자가 되어야지 패자(敗者)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거지. 패자는 마치 어떤 큰 함정에 빠지는 거나 마찬가지로 그 청년은 생각했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 함정에 빠지면 우리나라처럼 가난한 환경에서는 언제까지나 한발자국도 헤어나지 못하고 변변치 않은 결핍의 생활을 메꾸느라고 허덕일 뿐이거든. 그렇게 되면 명석한 두뇌고 뜨거운 정력이고 뛰어난 수완이고 아무것도 없는거야. 그런건 모두 일하는 기구에 불과해서 한번기회를 얻지 못하면 그대로 송두리째 썩어버리고 마는 것이거든. 사람의 일생이란 단 한번밖에 없는데 그 귀중한 일생을 아내와 아이를 기르기 위해서 끝없는 전역으로 날려 버린다는 것은 어리석기 한량없는 일이라고 생각했지.』
『그래서요?』
『그래서 그 청년은 마음을 강하게 먹어서 난관을 박차고 승리의 길로 나아갈 결심을 했던 모양이야. 물론 그런 행동이 죄악이라는 것은 뻔한 노릇이지마는 그건 냉정한 제3자의 생각이고 그때 그 청년은 야망이라는 술에 취해있었으니까 그런걸 깨달을 여지가 없었던 거지. 아니 오히려 일반상식과는 거꾸로 생각을 했던 모양이야』
『어떻게요?』
『의무를 중시하는 것은 약자의 할일로서 그들에게는 굴욕과 고생의 패배가 따르고 그 의무를 무시하고 용감히 뛰어넘는 것은 강자(强者)의 할일로 그들에게는 번영과 영광의 승리가 따른다는 가치관을 이를테면 「한옥타브」 높인 곳에서 보는 강자의 윤리관이고 인생관 이지』
『그래서요』
마침내 은실이도 가볍게 한숨을 내어 쉬었다.
『그래서 그 청년은 보통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낮이 뜨거워서 하지 못할 일을 한 모양이야.』
『그 여자 가정교사를 버렸겠군요?』
『그렇지. 완전히 배신을 한거지. 그것도 그냥 배신이 아니고 참아 입에 담을 수 없는 비열한 행동을 한거지.』
『어떻게 했기에요?』
『주인댁에서는 주인사장 어른이 돌아가시기 전에 원을 풀어드려야 한다고 서둘러서 결혼식을 올리려고 했거든. 그런데 만일 그 여자 가정교사가 있어 가지고는 무슨일이 생겨서 모든 것이 망쳐질 근심이 있으니까 그 청년은 여자 가정교사에게 거짓말을 한거야.』
『어떻게요?』
『그 여자 가정교사에게는 시골에 삼촌이 한분 계셨는데 가서 인사라도 드리고 결혼식을 올릴테니 먼저 시골로 내려가면 자기도 며칠 지나서 내려가겠다고 터무니 없는 거짓말을 한거지.』
『어머나!』
은실은 입에 손을 대고 눈을 크게 떴다.
『그렇지만 그때 그 청년에게는 그렇게 하는 수밖에는 별도리가 없었던 모양이야. 그래서 그런 거짓말도 큰일을 위해서 피할 수 없는 한 수단으로 본거지 그래서 그 분은 시골로 내려가셨나요?』
『그걸 그 청년도 분명히 모르는 모양이야. 그 청년은 마침내 주인댁 딸과 결혼을 해서 홍콩으로 떠났는데 그 청년에게는 영원히 기억에 붙어서 따라 다니는 한 가지 모습이었다는 거야』
『무언데요?』
『결혼식을 끝내고 신부와 함께 자동차를 탔는데 모여 있는 사람들 가운데 그 여자 가정교사의 얼굴이 보였다는 거야』
『어마! 그럼 시골로 내려가지 않았던 게로군요』
『모르지. 그후에는 다시 그 여자 가정교사를 만나지 못했으니까. 아마 시골에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는지 그렇지 않으면 내려가지도 않았는지 그건 알 수 없지.』
『그래 그분은 신혼부부가 떠나는 자동차를 들여다만 보고 가만히 계셨어요?』
『그분은 그런 분이었던 모양이야. 퍽 침착하고 속이 깊고 지혜로운 여인이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벌써 일이 글렀으니 항거를 한대도 창피만 하고 두 사람에게 이득은 아무것도 없을테니 그대로 참자하고 가만히 있었을 지도 모르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은실은 울분을 누를 수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지요?』
『거기서부터 청년은 일사천리로 바라던 목적을 위해서 질주했지. 홍콩·싱가폴·필리핀·베트남 등 동남아를 무대로 주인댁에서 뿌려 놓은 자본으로 마음껏 활약을 했지』
『참 만족했겠네요.』
은실의 입가에는 차거운 미소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