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革命(성혁명)이란? ③
혼잡한 性關係(성관계) - 背信感(배신감)·심리적 不安(불안)때문
科學技術(과학기술) ⇨ 社會惡觀察(사회악관찰) 倫理改善(윤리개선)도
美國(미국) 10代(대) 新婦(신부) 20%가 結婚前(결혼전)에 姙娠(임신)하고
性病(성병)으로 因(인)한 장님은 1만2천명이나
신학자 칼·라나는 세속적 학문연구와 성학(性學) 연구의 심연을 다음과 같이 잘 표현해 준다. 『중세이후 현대를 거친 현재상태에서 교회의 사명의 어려움은 전시대와 반대로, 종교 이외의 분야 모든 현상이 다양성 복잡성, 사고의 농도, 그리고 몰두시키는 능력이 무섭게 커진데 있다. 이런 모든 현상을 살필때 자연히 옛사람들의 지성적 관심사는 무엇이며, 가장 직접적이고 긴박한 요청을 충족 시키는 것 이외에 사람을 몰두 시킬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 이었을까?하는 물음이 나올 것이고 거기에 대한 답은 또한 종교적인 현상만이 모든 것이었다 할 것이다.
사실 종교이외에 무엇이 있을 수 없었다. 종교문제 이외에 예술이라든지 기타 과학도 종교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다. 만일 현대인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면 종교 이외에 아직도 한량없이 많은 것이 개재한다고 대답 할 것이다.
이미 말한 다섯 가지의 문화적 동향 즉 산업혁명 기계공학의 발달 여성해방 실존주의 그리고 실용과학의 폭발적 진척은 많은 좋은 결과도 있지만 20세기를 접어들면서 성윤리를 계속적으로 타락시키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말을 하면 사람들은 즉시 1938년에서 1960년대까지는 한 사람의 미혼여성도 처녀성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예언한 심리학자 레뷔·트만과 1956년에 범람하는 성의 혼란과 커가는 성의 탐익(眈溺)을 쓴 피티림·소로킨을 지적할 것이다.
지금 주간지들이나 텔레비앙 그리고 전문적인 연구와 약간의 서적들은 성에 대한 처신이 악화되어간다는 견해를 뒷받침해 주고 있으며 통계숫자 역시 이런 생각을 옳다고 보게 한다. 5분지1의 비율로 20세 미만의 신부가 결혼할때 이미 임신하고 있다. 현재 800만으로 추산되는 미국인이 미혼 부모에게서 났고 1972년에는 1천만이 될 것이라 보고 있다. 올해는 30만의 어린이가 결혼하지 않은 어머니에게서 날 것이다.
미국의 연간 유산통계 숫자는 약1백만이다.
1957년대부터의 성병의 전염율은 대단히 높아가고 있다. 연평균 12만명의 매독자가 생기고 그중 47%는 15세에서 24세 사이의 청소년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매독으로 생긴 정신병자가 생겼고 매독으로 인한 장님 1만2천명이 생겼다. 이런 통계숫자나 학자들의 판단 그리고 지난 75년간에 문화적 동향이 남겨준 인상에도 불구하고 결론적으로 성윤리가 걷잡을 수 없는 심각한 타락상태에 놓여있다고만 할 수 없다.
첫째로 진보된 기술연구로 어느 때보다 모든 사회악을 잘 볼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낙태·성병·사생아문제 등은 과거 어느 때보다 잘 알려져 있다. 이렇게 잘 관찰 할 수 있다는 것은 윤리적 감수성과 개선에 도움을 줄 지언정 해가 되지는 않는다. 둘째로 포괄적이고 연관성있는 통계학의 연구결과는 오늘날 성윤리가 파멸의 경지에 있다는 지론을 전적으로 찬동할 수 없게 한다. 아마도 오늘의 성생활의 동향과 변천을 가장 잘 판단할 수 있는 자료는 결혼전 성교를 연구하는데 있을 것이다.
결혼전 성교는 심리적이며 사회적인 면에 심대한 결과를 가져다 주기 때문에 이 문제를 연구하는 것은 각 민족의 성에 대한 태도를 결정적으로 변천시키는데 무시하지 못하는 비중을 가지기 때문에 대단히 중요하다고 보겠다.
그럼 우리는 여기서 위선 대학생들의 생태를 살펴보기로 하자. 남자대학생들의 결혼전 성교로 인한 사건에 대한 연구는 일찌기 1915년에 엑스너를 필두로 하밀톤브롤리 브릿튼 트만 호만 샤프느 킨세 란티스 에만 그리고 골드슨에 의해 1967년까지 계속 연구되어 왔고 여자들에 대한 조사 연구의 주동인물은 1929년대의 데비스를 위시해서 디킨손 빔 브롬리 브릿포 트필드 살리 킨세 란디스 에만 그리고 프리드만 들이다. 이들의 연구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남자대학 졸업생의 50퍼센트는 성교의 경험이 있었다. 성교의 경험이 있는 졸업생의 약 반수는 자기가 상대했던 여자와의 어떤 감정적 요소가 개재하고 있었지만 나머지 반은 아무런 감정적 친밀감 없이 성교만의 관계를 맺었다. 이두가지 현상은 아직도 그대로 남아있다고 하겠다.
달리 말하면 남자들은 자신들의 성적 처신에 있어 관용적이라 하겠다. 그러나 반대로 자기와의 장래를 진지하게 생각 할 여성에 대해서는 대개 엄격하다. 남성들은 아직도 대부분이 자기네들의 미래의 아내는 처녀를 원하고 있다.
여대생을 살펴본다면 약 25퍼센트가 성교의 경험을 졸업전에 갖는다. 그러나 거의다가 자기와 상종하는 남성에 대해서 깊은 감정적 친밀감을 느끼고 있다. 감정적 친밀감이 없이 절제없는 복합적 성관계는 여대생들에게 있어서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혼잡한 성교관계가 가끔 있는 것은 그들의 감정적 배신감내지 심리적 불안전감에서 온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이런 통계와 이전의 연구결과를 비교하겠는지? 남녀의 성적 처신이 1930년대 이후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1920년대의 어느 정도의 변천은 주목할 만하다. 그것 역시 그렇게 아주 놀랄만한 변경은 아니다. 만일 지난 반세기 동안에 대한 관대성이 허용되었다면 그것은 1920년대였지 60년대는 아니라 보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