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 일인지 요즈음은 매우 귀해졌다마는 이른바 義人이라는 것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그 사람은 줏대가 바른 사람이다. 言語行動의 밑바닥에 精神的인 것 靈的인 崇高한 底流가 깔려 있는 사람이다. 그 사람의 言行은 利害關係에 左右되지 않는다. 누구든지 敢히 犯할 수 없는 맑은 道義가 그를 다스린다.
그러므로 옳은 일이면 行하고 그른 일이면 累萬金이 생긴다 해도 斷乎히 拒否한다. 어디서든지 義는 讚揚하고 不義는 원수처럼 憎惡한다. 이 点에 있어서 그는 秋毫도 흐리멍덩 한 데가 없다.
아무리 어지러운 세상이록 해도 이런 사람이 어딘가 구석에 하나쯤은 있다. 그리하여 한 나라, 한 集團, 한 집안의 惡을 물리치고 秩序를 세우는 구실을 한다. 이런 사람은 반드시 신변 가까이 있지 않아도 된다.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아니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事實만으로도 착하고 외로운 사람들에게는 큰 힘이 되고 慰勞가 되는 것이다.
馬海松 선생은 그런 분이다. 그 분에게는 逸話가 많다. 文藝春秋社 초청으로 渡日했을 때 그곳 옛 同人들이 滯日하는 동안에 쓸 용돈을 드리었다. 그 분은 그것을 받아서 썼다. 그러나 歸國할 때에 미처 다 쓰지 못하고 돈이 남았다. 그 분은 남은 돈을 그대로 返遣하고 돌아왔다. 돌아와서는 당장에 因窮하여 거기서 紀念品으로 사온 책을 내다 팔았다. 아마 요즈음 우리나라 형편으로는 이런 行動이 사람들의 비웃음을 살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얼마나 高孤하고 끌끌한 마음인가. 가난 같은 것에 壓倒되지 않는 그 强烈한 自尊心은 참으로 요즈음 우리들의 生活周邊에서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이 얼마나 쓸쓸하고 한심스러운 노릇인다. 모든 일이 비틀려서 자리가 바뀌고 先後가 倒錯된채 버젓하게 生活潮流가 세차게 흘러간다.
『저런 저런…』
하고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지마는 그런 것은 아랑곳 없이 제멋대로 뒤틀린채 그 조류는 잘도 흘러간다. 어안이 벙벙하여 입이 딱 벌어진다. 그러나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은 없다. 이러다가는 善과 惡의 價値가 完全히 轉倒될는지도 모른다. 馬선생은 마지막으로 껄껄 웃고 돌아가시었다. 그 웃음도 이런데서 나온 것이나 아닐가?
종교만해도 그렇다. 종교는 우리들의 영혼의 행동이다. 취미나 사교수단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嚴格하게 꼭 두가지 길이 있다.
『믿느냐 믿지 않느냐.』
믿지 않는다면 당장에 집어치울 일이다. 믿지 않는 사람에게 종교는 거치장스러운 짐이다. 믿는다면 뜨거운 실천이 생겨난다. 馬선생이 생존시에 날마다 첫미사 참례를 하는 모습을 보지 못한 교우는 드물 것이다. 그분은 분명한 분이다. 대나무를 쪼개놓은 것처럼 명확한 분이다.
그러므로 옳다고 생각하여 入敎하였고 入敎한 以上 열렬한 신앙생활을 실천한 것이다. 따져보면 별로 특별할 것도 없다. 그것은 당연한 노릇이다. 그렇지 못한 것이 비정상일 뿐이다.
이제 그분이 가신지 어느듯 1년이 되었다. 그분이 生存時에도 나는 자주 그분과 만나지는 못하였다. 눈 코 뜰새없는 바쁜 日程을 더듬는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다. 그러나 그분이 서울 한구석에 도사리고 계시다는 것만으로 은연중에 힘이 되고 위안이 되었었다.
『이런 일은 이렇게 말씀하고 저런 일은 저렇게 말씀하리라.』
이 배마른 세상에 그것은 확실히 큰 보물이다.
『이따위 일을 馬선생이 아신다면…』
분한 일을 당하면 이런말들이 제절로 나오는 것은 우리들에게 항상 힘과 용기를 북돋아 준다. 이제 그분은 가시고 없다. 그러나 우리는 외롭지 않다. 그런 義로운 분이 우리들 사이에 계셨다는 사실만으로 그분은 우리의 어두운 길을 비치는 빛이 될 것이다.
李선구(가톨릭청년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