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6) 兄弟(형제) ⑥
발행일1967-11-12 [제593호, 4면]
『정말 그렇다면 의논사대가 돼주겠어야 했을거예요, 형님이니까, 윤식씬 고내찮은 사람일거예요. 뭔지 상처 받기 쉬운 영혼을 가진 것 같았어요. 윤식씨는 고독했을 거예요.』
윤이는 생각 깊이 말했다.
『윤이가 나보다 훨씬 어른답군. 나는, 미쳐 그것까진 못생각했어』
윤이가 동정하는 윤식에게 야릇한 질투를 느껴 진정거리듯 말했으나 정식의 양심은 아팠다.
윤이가 말하기 전에 이미 정식은 의논상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윤식을 때려주고 이층 자기방으로 올라가며 그는 망서리지 않았던가. 그러나 그것은 아버지 어머니가 관여할 문제라고 뿌리쳐 버린 일이었다.
『자잔한 곳에까지 신경이 뻗는게 여자아니예요? 내가 뭐 어른다워서 그런가요 뭐』
그런가 윤이에게도 여자들 공통의 모성(母性) 같은 것이 있었다. 정식은 담배를 붙여 물었다. 그는 자기자신을 냉정히 가누기로 노력하며 생각에 잠긴다.
사실 그는 어려운 일에 봉착해 본 일이 별로 없었다. 모든 일은 순조롭게 되어 왓었고 그래서 그는 의젓하고 여유 있게 사람을 대해왔으며 사물을 판단해 왔다. 그 태도는 믿음직스러웠고 어려운 고비를 여러번 겪은 사람에게만 있을 수 있는 침착성으로 보이게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어려움의 훈련을 받지 못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결벽하고 착한 것 같으면서 이기적이었다. 그는 대담하고 용기있는 것 같으면서 모험을 꺼려했다. 그는 사려깊고 분별이 있는 것 같으면서 미숙한 흥분을 안고 있었다.
그러니만큼 오늘 하루에 일어난 예기치 않았던 일들은 어려움의 훈련을 받지 못한 그의 마음에 벅찬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윤이』
『네?』
『윤이는 우리 어머닐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어떻게라뇨?』
『가령 인상같은 것 말이야』
윤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차거운 분 같은 인상을 받았어요』
회피하듯 소극적으로 말했다.
『어딘지 좀 이상한 점은 없어요?』
물고늘어지듯이 정식은 되물었다. 윤이는 당황하는 빛을 감추면서 정식의 의향을 타진하듯 빤히 쳐다본다.
『솔직히 말해봐』
『왜 그러실까?』
『윤이는 심각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지? 나는 무심히 묻는데』
정식은 어색하게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요…』
『……』
『화 내지 않겠어요』
『뭣때매 화를 내?』
했으나 정식은 가슴이 떨려옴을 느낀다.
그는 틀림없이 윤식과 같은 말을 윤이가 할 것 같았던 것이다.
『그림자가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그림자가…』
『좀… 바람이 휭 몰아오는 무서움 같은 것! 그건 아마 신비스러운 것과 비슷한 것이겠지만요』
역시 조심을 하는 투였었다.
『그리구 또 사람에게 애정을 가져본 일이 없는 분 같기도 하구요. 고독에 엉어리가 져서 영원히 남에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시지 않을 것 같기도 하구요』
『그건 사실이야』
정식은 재떨이에 담배를 떨며 말했다.
『어머니는 자식인 우리 형제에게도 사랑을 주신 일이 없었어, 하지만 나는 한번도 그런 어머니를 원망하거나 못마땅하게 생각하진 않았어. 도리여 나는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해 왔어』
윤이이 눈이 몹씨 흔들렸다. 그것은 그의 마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표시였었다. 그는 애써 화제를 돌렸다.
『젊었을 쩍에는 굉장한 미인이었을 거예요』
그 말에는 정식씨 당신은 어머니의 미모를 찬미하고 존경을 품었던 거예요. 정신을 뽑아낸 허수아비 같은 그 미모를 말이예요. 그런 뜻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지금도 아름다워』
정식은 자기 의식을 점령하려 드는 윤식의 말, 윤이의 말을 몰아내듯 강한 어조로 말했다.
『하지만 정식씨 아버님은 얼마나 추남이게요』
무거운 것을 떠밀어 내듯 윤이는 깔깔 웃었다.
『틀림없는 추남이야. 그건 사실이지. 하지만 아버지는 용모보다 더 귀중한 것을 가지고 계셔』
『그것은 뭐예요?』
『힘』
『힘?』
『불굴에 정신력 말이야. 남은 뭐라 하든 나는 아버지 앞에 가면 언제나 유쾌한 패배감을 느끼거든. 삼국지시대에 났더라면 현자(賢者)는 못되어도 현자를 부리는 제후쯤 됐을거야』
이 말은 사기꾼이라 하든 윤식의 말에 대한 반박이 었을 것이다.
윤이는 정식의 열중하는 모습을 의아하게 여기며 한편 흥미를 잃기도 한 눈치를 보이며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창밖에는 어느새 황혼이 밀려 들고 있었다.
카운터 옆의 풍차(風車)같이 커다란 선풍기는 부지런히 돌고 있었다.
윤이는 생각이 난듯
『이제 저녁하러 가세요』
하며 먼저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