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발현이 있기 전의 「가라반달」
「가라반달」은 스페인 북부 고원지대에 위치한 산골로 대부분이 자갈밭이라 농사도 잘 안되며 교통이 불편하여 외부와의 왕래가 드물고 어려운 곳이었다.
그러기에 발현을 본 네 어린이는 백여년전 「루르드」에서의 성모발현이나 이웃나라인 폴투갈 「파띠마」에서의 발현조차 전연 모르고 있었던 그야말로 「촌뜨기」들이었다고 현지를 답사한 기자들은 말한다.
불과 3·40호 정도의 작은 마을에 세워진 성당도 실은 어느 부유한 부인이 자기 아들을 사고로 잃은 후 성모께 지어 바친 아주 구식 건물이며, 부인자신도 한번도 와보지 않았다고 하는데, 사제는 좀 떨어진 「꼰시오」라는 곳에 머물면서 주일이면 가끔씩 오후 미사를 드리려 오곤 했다.
마을사람들의 신심은 두터운 편이 못되었고 발현을 본 네 어린이의 가정도 열심한 편이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신자가정이었다.
양이나 염소를 치면서 가난한 생활을 하는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옥수수와 감자를 먹고 살며 어린이들은 날마다 산골짜기에서 양이나 염소를 지키고 나무하는 것이 일과다. 또한 마을의 호수가 적고 가정적인 산골이라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아주 전전하여 반(反) 성직자 감정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든 곳이다. 저녁이면 아이들과 아낙네들 및 몇몇 남정네들이 차례로 모여 묵주신공을 바치는 것이 일종의 관습처럼 돼있고 젊은이들이 너무 빨리 성호를 긋고 너무 빨리 경문을 외운다는 노파들의 불만이 신공 끝의 메아리처럼 뒤따르기도 하는데 끝에가서 「주의기도」와 「성모송」을 외우는 습관은 17세기경 그곳 교구장, 즉 「샹탄델」의 교구장이 가르쳐준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마을의 총인구는 백3명 미만인데 각각 20명의 학생수를 가진 남녀학교가 하나씩 있다. 초라하기 짝이없는 성당의 제단 옆에는 성모상과 대천사 미카엘상이 있는데, 「로마」시대 백부장의 옷차림을 한 미카엘상은 큰 뱀을 밟고 있으며 뱀의 용모는 사람의 탈을 쓴 마귀의 모습이다.
④술레잡기 하던 꼬마들에게
먼저 발현을 목도한 꼬마들의 가정환경을 보면 첫 발현을 보던 해인 1961년 6월 현재 열두살이었던 꼰커타는 아니체따 꼰잘레라는 과부의 외딸이며 위로 세명의 오빠가 있고 갈색살빛에 귀염성과 성성한 생활력을 내뿜는게 특징이다. 그리고 롤리라는 애명을 지닌 마리아·돌로레스는 이 마을에서 좀 잘사는 꼰훼리나·마죤씨의 둘째딸로 늘 웃음을 띈 얼굴에 말이 드물고 고분고분하여 어머니를 많이 돕는 꽤 신통한 아이였으며 열두살이었다.
어머니를 닮아 매우 매력적이고 말끔한 히아친타는 집안이 몹시 가난하다. 나이는 역시 열두살이며 겁쟁이에다 뒷심이 없다고 하나 발현을 본 비밀을 가장 오래동안 지켜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가장 나이 어리지만 숙성한 마리아·크루추(11세)는 여간해서 입을 열지 않는 성격이며 가정은 좀 열심한 편이나 아버지만은 미사에 드물게 나타난다.
1961년 6월 18일은 주일이었다. 미사와 오후 기도가 끝난 후 어른들은 그늘 밑 여기저기에 모여 앉아 환담을 나누며 쉬고 있었다. 어린이들은 언제 어디서나 그렇듯이 어른들이 무어라고 하든 저희들끼리 지꺼리고 깔깔거리며 갖가지 재미있는 놀이를 하다가 숨박꼭질을 하게 되었다. 술레잡기를 곁들인 숨박꼭질을 하던 꼬마들은 갑자기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같이 숨박꼭질을 하던 꼬마들 중에 네명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숨박꼭질 치고는 진짜 숨박꼭질 이었다. 그 꼬마들은 어디에 어떻게 숨었길래 영영 찾을 수가 없을까?
네 아이들은 숨박꼭질을 하다말고 「소나무 길」이 있는 산쪽으로 달아나 뽕나무에 열린 오디를 따먹으러 갔던 것이다. 아직 다 익지않은 것이 태반이어서 골라가며 따먹어야 할 판인데다 남의 것이기 때문에 천진한 그들의 마음 한구석에는 『이것이 죄는 아닐가』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바로 이때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와 꼬마들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했다. 꼬마들은 혹시 주인이 지르는 소리가 아닌가하고 두리번거려 봤으나 사람이 없으므로, 필경 바퀴가 지르는 소리라고 생각하고 자갈을 집어서 왼손으로 던지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그 마을의 풍습에 「마귀가 나타날 때는 돌을 집어 왼손으로 자꾸 던지면 도망간다」는 말이 있기 때문이었다. 겁에 질린 꼬마들은 남의 오디를 따먹었기 때문에 죄를 지어서 마귀가 자기들에게 찾아오지나 않았나하고 힘껏 자갈을 집어서 계속하여 왼손으로 던지고 있었다.
한참동안 그렇게 던지고 있던 그들은 어느새 거기에 나타난 미카엘 대천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제일먼저 이 발현을 본 것은 꼰키타였는데, 그녀는 갑자기 『아! 아!」하는 소리를 지르면서 무릎을 꿇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계속)
卞基榮