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7) 兄弟(형제) ⑦
발행일1967-11-19 [제594호, 4면]
정식과 윤이는 장소를 옮겨 근처 지하실에 있는 양식점으로 찾아들어갔다. 마주앉아서 「웨이터」가 「메뉴」를 가지고 올때까지 그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뭘 하겠어』
정식은 「웨이터」한테서 받은 「메뉴」에 눈을 둔채 윤이에게 물었다.
『난 굴 먹겠어요』
윤이의 목소리는 좀 딱딱했다.
『그럼 굴후라이하구 함박스틱 · 밥 말구 빵으로』
「웨이터」가 간뒤 그들 사이에 다시 침묵이 엄습해왔다. 식당은 반지하실이어서 창문은 꼭대기에 나있었다. 윤이는 창문 쪽으로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갑자기 서먹해졌다. 왜 이렇게 마음이 가라앉을까)
윤이는 생각했다. 서먹해진 원인은 정식의 부모 탓이었고 그 부모가 화제에 오른 타싱었고 부자연스러우리만큼 정식이 그네들을 우상화하는 그 언동 탓이었다고.
윤이집에서는 사윗감으로서 정식에게 불만이 없었다. 그러나 정식의 부모에 대해서는 묘한 멸시감을 별로 숨기려 하지 않았다.
살림지 조촐하여 남에게 굽혀들 필요가 없었고 선비집안이라는 우월감에 사로잡힌 현직대학교수인 윤이의 아버지는 정식의 아버지에 대하여 돈은 많겠지만 무식한 장사꾼이! 하며 염오의 감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윤이는 그러한 아버지를 독선적이라 생각했으나 그렇다고 해서 정식의 아버지를 존경했던 것은 아니었다.
(허식이야, 정식씨는 자기자신만으로 충분해 부모를 우상화해서 자기자신을 꾸밀 필요가 전혀 없단 말이야)
한편 정식은 정식대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어떻거든 윤이와 약혼만이라도 해놓고 싶었다. 그러나 선뜻 말을 끄낼 수 없는 것은 윤이의 배경이 묘한 벽으로서 부딛쳐 오기 때문이다.
만일 그 벽, 즉 윤이의 가정에서 약혼을 응낙하지 않을 경우 그것은 자기 부친의 권위를 부정하는 행위로 볼 것이며 윤식이 아버지에게 모욕을 가했을 때 자기 주먹이 날아갔던 것처럼 윤이 일가에 대하여 증오의 화살을 겨눌 것이다.
정식은 「웨이터」가 날라온 고기를 썰면서
『아무래도 가을에는 떠나야겠는데』
우울하게 뇌었다.
『미국 말이죠?』
「포크」에 굴 후라이를 찍어 먹으면서 윤이가 말했다.
『음』
『……』
『거기 가서 내가 오라면 윤인 오겠어?』
『가죠』
『집에서 반대하면?』
정식은 윤이를 빤히 쳐다본다.
『상관없어요. 남이 반대한다고 의살 꺾으면 그건 바보 아니에요?』
『어째서 남이야?』
『가족이죠. 저의 인생을 대신 살아달랄 순 없고 저 자신 대신 살아드릴 수도 없잖아요?』
확고하게 말했으나 정식의 얼굴에서 기우의 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이제 가족에 관한 얘긴 하지 않기루 해요』
윤이는 저하했던 감정을 되살리며 말했다. 그러나 그 말은 정식에게 다시 걸려들었다. 가족에 관한 얘긴 그만 두자는 말 뒤에는 역시 자기 부모에 대한 거부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입이다.
『안녕하십니까』
누가 와서 윤이에게 꾸벅 절을 했다.
『어머!』
윤식이었던 것이다. 그는 정식에게 뜨거운 타는듯 한 눈길을 보내며 웃었다. 정식의 표정이 굳어진다.
『웬일이세요?』
윤이는 아까 들은 말도 있고 해서 애써 명낭하게 물었다.
『왜요? 저는 이런데 못옵니까?』
『공교롭게 말예요』
『그렇죠. 공교롭게… 나도 여자친구하고 같이 왔읍니다.』
윤식은 휙 돌아보았다. 저만큼 좌석에 조그마한 계집애가 앉아 있었다. 화장도 안한 학생같이 보였으나 천기가 주르르 흐르는 머리를 길게 늘어 뜨린 계집아이었다. 마치 뒷골목의 깡패가 달고 다니는 풋내기 창녀같은 인상이었다.
정식은 윤식을 노려본다.
『그럼 재미 많이 보십시요』
윤식은 히죽히죽 웃으며 그들 앞에서 떠나 여자친구가 있는 식탁으로 갔다.
『정말 많이 변했네요』
『…』
『전엔 수집어서 말도 못하더니…』
그들이 식사를 끝내고 일어섰을 때 윤식이쪽에서도 일어섰다. 그들은 가벼운 「토스트」같은 것을 먹었는지.
정식의 목줄기가 벌게졌다. 윤식이 고의적으로 그랬던 것 같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카운터 앞에 그들은 몰려셨다.
『내가 계산해주랴?』
정식은 불쾌감을 참으며 말했다.
『그래도 좋구』
윤식은 턱을 쳐들며 말했다. 그의 동행인 소녀는 윤이의 기품 있는 미모에 강한 시샘을 나타내며 숨어보았다.
거리에 나왔을 때
『안녕히 가세요. 윤이씨!』
하며 윤식은 손을 흔들고 마치 술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소녀와 팔을 끼고 길을 건너는 것이었다.
『허세군요』
윤이는 윤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다가 뇌었다. 길을 건넌 뒤 윤식은 돌아보았다. 가등 아래 오가는 사람들 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