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바람이 落葉을 쓸고 지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現實이다. 畵面에는 窒息할 것 같은 都市의 特有한 여름이 뿌연 안개 속에 정돈되어 있다.
「메카나이즈」된 現代 속에서 靈肉으로 권태에 젖은 한 靑年(申星一 분) - 그는 돈 많은 과부를 얻어 큰 製藥會社 重役으로 出世했다. - 은 夏期休暇를 얻어 故鄕인 霧津으로 간다.
戰爭과 질병으로 靑少年期를 보낸 霧津은 鄕愁以上의 어떤 魔力이 그를 글어당기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宿命인지도 모른다. 몇 년 만에 돌아와 본 고향은 變化된 것이 별로 없다. 매미의 울부짖음과 雜草가 우거진 어머니의 무덤과 酌婦의 自殺屍體와 밤개구리의 울음이 그를 肅然하게 하고 낯선 稚童들과 먼지가 뽀얗게 덮인 옛 집이 그를 虛虛하게 할 뿐이다.
海邊에는 여전히 안개가 자욱하고 指標없는 群像들은 그 속에서 삶의 意味도 모르고 微物처럼 서식하고 있다. 靑年은 친구집에 놀러갓다가 우연히 젊고 아름다운 音樂敎師(尹靜姬 분)를 알게 된다. 그 여인 역시 失鄕人으로서 건조와 _요의 霧津을 벗어나려 발버둥치는 사람이다. 두 男女는 만나자마자 어떤 共感과 强烈한 異姓을 느끼고 情事에 빠지지만 그것은 現實을 忘却하려는 하나의 作爲에 불과한 것이다.
그드은 이미 人間的인 純粹는 잃고 있었기 때문이다. 靑年은 고독하기 때문에 自己의 分身같은 그 女人을 犯했고 그 女人은 고독하고 霧津을 벗어나려는 慾望 때문에 그 靑年에게 모든 것을 許諾한다. 그러나 靑年은 아무말 없이 霧津을 떠나고 그 女人은 霧津을 벗어나려는 꿈이 虛妄하게 挫折되고 만다.
여기서 안개가 자욱한 架空都市 霧津은 韓國을 象徵한다. 韓國의 젊은이들은 索莫하고 變化가 없으며 貧困하고 無味乾燥한 韓國을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왜냐하면 韓國은 항상 그들에게 좌절과 絶望만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어떠게 하면 이 질식할 것 같은 韓國을 벗어날 것인가? 그렇다고 그들에게 希望이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그들은 고독하고 권태무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韓國을 벗어날 수도 없지만 벗어나지도 않는다. 이미 찌들은 祖國이 그들의 靈魂을 휘어잡고 있다. 霧津을 벗어나면 다시 霧津이 그립듯이 韓國은 늘 惡夢이나 아름다운 追憶처럼 그들을 따라다니는 것이다.
現代人의 비정과 不條理하고 황량한 現代狀況을 잘 그렸으며 方向을 잃고 失意에 빠져 방황하는 韓國 젊은이들의 고독하고 無爲의 人間像을 잘 浮刻시킨 映畵다.
무릇 偉大한 藝術品이란 삶, 죽음, 사랑 등 人間의 根源的인 問題를 높이 昇華시킨 것이다. 映畵 「안개」는 비록 기이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人生의 여러면을 感傷 以上의 圓熟한 눈으로 조감했기 때문에 觀客으로 하여금 어떤 思想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喪輿 나가는 것, 밤개구리 울음, 매미소리 등은 韓國을 잘 表現한 印象的인 效果와 場面이다. 作家 金승옥의 短篇小說 『霧津紀行』을 映畵化한 金洙容 監督은 퍽 새로운 技法을 썼다. 伊太利의 名監督 안토니오니의 作品을 聯想시키는 이번 「안개」는 「렌즈」의 方向이라든가 분위기, 照明 등이 퍽 西歐的이다. 그러나 완전히 <안토니오니風>도 아니고 그렇다고 極히 圖式的인 從來의 韓國映畵豊도 아닌 析衷式이라 할까? 韓國映畵의 가 오려는 徵兆일까? 분명히 여태까지 볼 수 없었던 季作임에 틀림이 없다.
有敏榮(劇評論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