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26)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⑫
발행일1968-09-01 [제633호, 4면]
『그래서 그 분은 한국에 돌아오셨나요?』
『돌아왔지. 이십년전에 의기양양해서 모든 것을 뿌리치고 떠날때와는 정반대로 슬픔과 회한(悔恨)과 실의(失意)에 차서 병든 몸을 이끌고 고국에 돌아왔지. 그렇지만 막상 돌아와 보니 생각과는 딴판이었던 모양이야.』
『무엇이오?』
『그 여자 가정교사와 딸을 찾을 수가 없거든. 외국에서 생각할때에는 그저 귀국만 하면 사람을 찾아내는 일은 문제가 없고 단지 그 사람이 자기를 과연 용서해 주는지, 또 용서해 준다면 어떻게 속죄를 할는지 그것만을 문제삼았는데, 실제로 귀국해보니 도무지 어디로 갔는지, 살았는지 죽었는지 찾을 길이 막연했던 모양이야』
『………』
은실은 말없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다.
『물론 만난다고 해도 지금 와서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매우 어려울테지. 지금 그 여인은 살아 있는지, 또 살아 있다며는 무엇을 하고 있으며 그 동안 어떻게 지났는지 알 수 없지마는 만일 누가 그 경우에 처했더라도 성큼 용서를 하기란 어려울 거야. 그렇지만 그 사람은 만나서 욕을 먹든, 뺨을 맞든 그런건 상관없거든. 그저 하루 바삐 만나서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사과하면 되는 거야. 그러구 몇만분의 일이라도 속죄를 해 보자는 걸테지. 그야 이제 와서 속죄를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완전히 속죄를 한다면 오직 한 가지가 있을 테지.』
『무언데요?』
은실이가 고개를 반짝 들었다.
『세월을 이십년 동안 되돌려 놓는 일일테지. 그래서 그 여인의 잃어버린 행복을 되찾아 주는 일일테지. 그렇지만 그건 우리들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그렇지만 그것 한 가지 외에는 완전한 속죄의 길이란 없을거야. 그런데 그 한 가지 뿐인 완전 속죄의 길이 인간으로서 불가능 하다면 그 사람은 지금 속죄의 길이 막힌 중죄인이 된 셈이지』
『……』
『그렇지만 그 사람은 지금 한 가지 소망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형편이란 말야.』
『무슨 소망요?』
『뻔뻔스럽지마는 그 여인과 딸을 만나보는 일이지. 만나만 본다면 용서를 해 주어도 좋고, 용서해주지 않아도 좋을 거야. 그 여인이야 용서 하든 말든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속죄로 소비하고 싶은거지.』
『연세가 아직 그렇게 많지는 않으실텐데. 그 분은 무슨 병환이시기에 그렇게 일을 절박하게 서두르시는 건가요?』
은실은 윤 사장의 너무 과장된 이야기에 의아한 듯이 물었다.
『미스·양. 그 사람의 병은 심상한 병이 아니야』
『무슨 병환인데요?』
『암이야. 앞으로 길게 잡아도 일년을 넘기기 힘이 든다는 의사의 사형선고를 받았어. 그러구 자신의 건강은 자신이 누구보다도 가장 잘 아는 거거든 그래서 급히 서두르지 않으면 시간이 없기 때문에 그 사람은 대단히 초조한 모양이야』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윤 사장은 또 수건을 끄내어 이마와 뺨과 목의 땀을 씻었다.
『사장님, 뜨거운 홍차를 한잔 더 드릴까요?』
은실이 근심스러운 듯이 물었다.
『글쎄. 그거나 조금 마셔볼가』
은실이 부지런히 밖으로 나가서 잠시 후에 홍차를 새로 가져왔다. 윤 사장은 몸을 일으키고 모금 마시셨다. 조금 생기가나는 모양이었다.
『미스·양?』
정신을 가다듬은 후에 윤 사장은 은실을 불렀다.
『네?』
『그만하면 미스·양은 그 청년의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인지 대강 짐작이 갈테지?』
『네』
은실은 고개를 떨어뜨리었다. 차마 윤 사장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은실은 벌써부터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윤 사장 자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스·양?』
『네?』
『미스·양은 아마 지금 나를 매우 경멸하고 있을 테지?』
『별말씀을 다…』
『아니야. 내가 미스·양이라도 경멸하지 않고는 베기지 못할거야. 나는 죄인이야. 천하에 용납하지 못할 큰 죄인이야. 그런 죄인이 뻔뻔스럽게 이제 와서 나 때문에 희생을 한 옛 가족을 찾는다는 것이 후안무치한 일이지」
『……』
『그렇지만 미스·양 나는 그 식구들을 찾아보지 않고는 죽더라도 눈을 감을 수 없을거야. 이 죄를 몇만분의 일이라도 속죄하지 않고는 그 짐이 너무 무거워서 나는 도저히 저승길을 걸어가지 못할 것 같아. 내가 외국에서 날뛰는 이십년이라는 긴 세월을 그 가엾은 여인과 딸은 얼마나 고생을 했으며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생각만 해도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
윤 사장은 마침내 손수건을 끄내어 이번에는 눈을 싸 덮었다. 막혔던 보가 터지듯이 윤 사장은 병든 어깨를 들먹이며 오열하였다.
『윤 사장님 고정 하세요』
은실이도 목소리가 가볍게 떨렸다.
『미스·윤. 나는 고국에 돌아와서 사실 회사의 일 같은 것은 그저 기계적으로 했을 뿐이지 그렇게 큰 관심은 없었어. 그런 것은 모두 헛개비 같이 가치가 부동적인거야. 참말로 중요한 것은 우리들의 목숨 근원에 관계되는 일들이지. 이런 생각을 나는 지각이 없이도 지금까지 거꾸로 생각했던 거야. 회사 사업이니 하는 것을 인생의 가장 높은 자리에 모셔 놓고 그걸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거든. 참으로 한심스러운 일이었어.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오십평생을 헛된 그림자를 좇으며 살아온 셈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