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나라에서 『넌 무엇을 할 수 있느냐?』 여기에 대한 실천적인 회답으로 그 인간됨의 평가를 한다고 한다. 이 물음은 직장에 잇어서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가치척도의 첫째 조건이 아닌가 싶다. 정말 맡은 직책에 대해선 어느정도 자신을 갖고 있지 않으면 안된다. 그 自信이란 괜한 心理的인 허세가 아니라 맡은 일에 대해서 실천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진정한 實力임은 두말할 것 없다.
여성이 학업을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들여놓았을 때 지가 맡은 일이 다소 자기 역량에 과분할지라도 어느정도의 時期와 修鍊을 거침으로써 난관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는 鬪志와 勇氣가 필요한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이런 투지와 용기조차도 갖춘 실력없이 터무니 없는 것이고 보면 만용에 불과하고 자기 위치를 유지 못하는 필연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참으로 비단 여성들 뿐이랴마는 사람들은 흔히 안이한 세월에 밀려 사회에 나와 놓고서야 비로소 자기의 역량부족을 통절히 느낀느 매미의 우화는 얼마든지 둘레에서 목격할 수 있다. 우리의 學窓時節에 이런 시련의 쓴 경험을 미리 체험케 하고 각성케 할 가능한 방책은 없을까 생각할 때가 있다.
허지만 직장에 있어서도 쌓은 지식을 대번에 발휘하는 항상 결과적이기보다 여전히 자기 실력을 기르고 연마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에 성실하고 겸양한 태도로써 선임자에겐 배우고 탐구하는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한다. 勞賃을 받는 직업이란게 어느것인들 쉬울가마는 그래도 별로 진취성이 없는 기계적으로 반복하는 技能職이 있는 반면 창의력이 필요한 직업도 있다. 그 직업에 대한 지식이 늘면 늘수록 새로운 과제가 끊임없이 등장하고 보다 많은 지식이 요구되며 있는 소재를 처리하기보다 항상 새로운 소재를 스스로 마련해 나가는 창의적인 직업이 있다.
물론 이런 직업조차도 자기 의욕 여하에 따라 적당히 현실처리나 요령있게 현실기피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직장엔 경쟁자가 있게 마련이고 창의적인 직업일수록 불가피하며 그러므로 항상 對決意識을 버릴 수 없는 것인말큼 결국 의욕이나 진취성이 없이는 낙오되는 것은 뻔한 사실이다. 사실 善意의 競爭意識이란 그 직장과 나아가 사회발전 및 개인성장의 要因이 된다. 그런데도 흔히 경쟁의식은 그 목적을 왜곡하여 理性을 떠난 감정적인 대결로써 동료간의 불화 알륵이 되고 이것은 더나아가 회폐풍의 動因이 되기까지 한다.
직장사회에서 경쟁의식은 남성대 여성일 경우 좀 더 미묘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아직도 우리사회에 짙게 남아 있는 남성들의 거의 선천적인 우월의식, 여기에 대한 여성들의 반발이 있고, 또 한편에서는 여성들 자신이 스스로의 「핸디캡」을 인정하고 행세하려고 들므로써 남녀가 어디까지나 동등한 인격적 입장에서 공평한 대결을 못하고 있는예는 허다하다.
이점 여성들은 같은 조건하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정당한 평가로서 행세해야 되고 나아가 남성들에 밑지지 않으려는 의지와 노력이 없어서는 안된다. 그렇다고 여성자체로서의 자연적인 유약이나 본성적인 행동거지까지 피차가 무시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즘은 특히 우리 한국사회 여성들은 과도기적 수난을 겪고 있는 느낌이 없는지? 남성들의 우월의식은 좀체로 불식되지 못한채 한편 여성해방이란, 이 역시 우리 자신 어떤 보상도 치르지 못한 外來思潮는 여성이 여성본연의 이장에서 당연히 누릴 배려와 보호마저 외면당함으로써 여성이 지극히 고달퍼 졌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생활전선에서 생계의 일부를 부담하고 가정에선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임무를 다함으로 二重의 혹사를 치러야 하는가. 버스안에서 여성이 잔뜩 짐을 들고 있어도 좀처럼 자리를 양보받지 못하는 것이 이즘 사회의 풍조다. 이제는 아무도 여자를 그대 약한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성 자신이나 남성들 어느쪽도 남녀가 완전 동등하다는 의식을 갖고 잇느냐 하면 아직은 아무래도 어설픈 상태다.
『여성은 먼저 여자이기 전에 인간이 되라』는 말이 있지만 여자가 참다운 인간이기 위해서는 인간에게 있어 단 二性뿐인 男性, 女性 그중 하나인 여성 본질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 즉 어디까지나 여성으로서의 인간일 수 밖에 없으니까. 남자는 인간이면 그만이지만 여자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여성이라야 한다는 이 多樣性이 여성으로 하여금 어딘지 인간으로 보다 가벼운 比重의 원인이 될지 모르지만 그러다고 여자가 인생의 體驗을 通해 인간의 진정한 깊이에 도달하는데까지도 남자보다 劣等하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여성은 母性을 本質로 하는 헌신적 봉사적 보충적 존재인 동시에 또한 人間本質의 根源인 自由 · 獨立性 創造性을 떠나서 존재하지도 않는다.
끝으로 여성은 이런 내적 깊이와 충실을 갖춤과 동시에 외부로 나타나는 美的 배려를 등한시 할 수 없다. 아무리 그 여자가 자기 직책에 빈틈없는 민완한 직업인일 망정 식은 밥덩이처럼 서글프로 무취미한 몰골이어서야 되겠는가. 모든 사물에 대한 내적인 思索으로 깊은 審美眼을 갖고 자기 둘레에 조화된 아름다운 분위기를 이루고 자신에게는 格에 맞고 개성에 어울리는 맵시를 지닐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여성은 그 자체로써 아름다운 존재이어야 하며, 아름다움 자체가 또한 봉사가 아닌가.
김 다시아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