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칙의 目的
바오로 6세는 지난 6월 30일에 「신앙고백」을 발표하고 꼭 한달만인 7월 29일에 「인간의 생명」(HUMANAE VITAE)이라는 회칙을 발표하였다. 전자는 믿을 교리의 전체를 밝히고 있는 데에 반하여 후자는 결혼생활의 일부만을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교황 문서의 목적은 하나뿐 이었다. 즉 교리와 도덕을 상대주의에서 보호하려는 것이 그 목적 이었다.
시대가 변하였으니 교리도 변하고 도덕율도 변한다는 이론은 참으로 위험한 사상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중심으로 교회의 「현대화=AGGIORNAMENTO」 바람이 불기 시작하였다. 교회의 끊임없는 노력은 불변의 진리와 불변의 윤리원칙을 현대에 알맞게 표현해 보고 현대에도 동일한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밝혀보려는 것이었다. 표현은 새로와져도 진리와 원칙은 변함이 없어야 할 것인데 새로와지는 표현에 휩쓸려 진리와 원칙마저 흐려지는 경향이 짙어져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있던 교황은 그 맡겨진 직무상의 교도권으로 이 두가지 문서를 만천하에 공포한 것이다. 진리와 원칙의 불변성을 강조하려는 목적 때문에 표현마저 후퇴한 감이 없지 않으나 탈선의 위험을 방지하려는 오늘의 싯점에서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라 하겠다. 요는 진리와 원칙의 불변성을 긍정하기만 한다면 아직도 표현과 적응의 현대화 작업은 학자들 사이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신앙교리와 도덕율에 속하지 않는 자연과학 부분에 있어서는 학자들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되어 있다. 이때문에 회칙 자체도 학자들의 계속적인 탐구를 권장하고 있다. 특히 산아조절이 필요한 딱한 부부에게 안전하고 확실한 피임의 바탕을 마련하기 위하여 현재의 부정확한 자연주기를 깊이 연구하라고 要求하고 있다. 주기법이 정확하고 절제의 기간이 단축된다면 누가 위험한 낙태나 부작용이 많은 피임약을 쓰겠느냐? 낙태를 시키고 약을 복용함으로써 자신과 가정과 민족의 보건을 해치는 이유가 바로 주기법의 부정확에 있다고 보겠다. 그러므로 가톨릭의 모든 학자들은 주기법 연구에 더욱 힘써야하겠다.
또 한가지 중요한 것은 이번 회칙이 「산제금지」라는 소극적인 면만 가진 것이 아니고 오히려 인간생명의 존엄성, 혼인의 신성성, 부부애의 불가침성 같은 적극적 면을 강조하였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부부와 모든 선의의 부부를 보다 인간다운 생활에로 이끌어 올리려는 것이 이 회칙의 목적이지, 산제의 필요성에 억눌려 있는 부부들을 단죄하려는 것이 그 근본목적이 아니었다. 교황 자신도 이런 오해를 예견하고 회칙 발표 전에 몹시 망설였다고 솔직한 심정을 고백하였다. 그뿐 아니라 회칙 자체에서는 교황은 제3장에서 사목지침을 명시하면서 가톨릭 부부들을 실망시키지 말고 하느님의 은총을 빌며 자주 고백성사와 영성체로 힘을 얻도록 이끌어 주라고 권고하였다. 교회의 교도권은 적극적으로 진리를 밝혀주고 도덕율을 보존하며 해석하는 것이 그 본사명이고 그 누구를 단죄한다는 것은 본 사명이 아니다.
오히려 죄인들의 회개를 촉구하며 어머니같이 죄인들을 품에 안아주는 것이다. 이번 회칙을 잘 읽어보면 이 어머니다운 사랑을 그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9월호 경향잡지에 전문이 실려있고 불원 단행본으로도 출판될 것이므로 깊이 연구해주기 바란다.
■ 회칙의 敎理上의 原則
「인간의 생명」이란 회칙은 세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첫부분은 서론과 같은 것으로서 문제의 신국면을 밝혀주고 교회의 유권적 사명을 확인하고 있다. 제2항에서 문제의 신국면을 밝히고 제3항에서 새로이 생겨난 문제들을 소개하고 제4항에서 유권적 교도권을 밝혀준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主敎들을 예수께서는 「복음법뿐 아니라 자연법까지를 포함한 도덕에 관한 모든 법의 수호자와 해석자로 삼으셨다」고 지적되어 있다.
산아조절을 윤리적으로 정당화하려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부부애와 부성의 책임감의 요구이기 때문이라고 한다.(회칙 제7항) 여기서 부성이란 표현은 좀 부족한 느낌이 있다. 본래 부모의 책임감을 뜻하는 것이다.
부부애와 부모의 책임이란 이 두 가지 개념을 바로 알아듣기 위하여 회칙은 현대세계 사목헌장 제2부 제1장의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을 상기 시킨다. 이 회칙이 공의회의 문서를 변경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시켰다고 보아야 한다. 부부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사랑이신 하느님(요한 4·8)을 그 원천으로 볼 때에 비로소 더 잘 알아듣게 된다. 성부는 지상의 모든 부성의 원천이기(에페소 3·5) 때문이다. 또 그리스도 신자들의 결혼은 성사이므로 우연이나 자연의 맹목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지혜롭게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과 아내는 자신을 서로 완전히 주고받음으로써 서로의 인격을 새로운 생명의 창조를 위하여 하느님과 협조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부애는 완전히 인간적이어서 감각적이면서 영적이고, 전체적이면서 신의를 내포하고 배타적이면서 결실 풍부한 것이다.(회칙 제8항과 제9항 참조)
남편과 아내의 이같은 사랑은 또한 동시에 부모로서의 책임의 인식을 요구한다. 이런 부모의 책임이 오늘 매우 강조되고 있으므로 부모의 책임이 어떤 것인지 잘 알아야 한다. 부모가 보다 많은 자녀를 두기로 결정하든지 혹은 중대한 이유가 있어서 윤리적 원칙을 따르면서 일정한 기간이나 불확정 기간 동안 다른 자녀를 더 두지 않기로 결정할 때에 부모로서의 책임을 수행하는 것이다.
따라서 부모의 책임은 특히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객관적 윤리질서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 이 객관적 윤리질서의 올바른 해석자는 각양의 건전한 양심이다. 또 건전한 양심은 방자한 멋대로의 해석을 내릴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자신들과 가족들과 인간사회에 대한 의무의 가치질서를 지켜야 할 것이다.(회칙 제10장)
의무의 가치질서라는 여기에 문제의 핵심이 있다. 과다한 인구증가는 분명 사회악의 요인이 될 수도 있고 기존 가족들의 생활을 위협하여 부모들에게도 무거운 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사회와 가족들과 자신에게 대한 의무만 가지고있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의무를 초월하는 하느님께 대한 의무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무리 대인간관계의 의무가 중하다 하여도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윤리원칙을 거역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회칙의 중심사상이다.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방법이라면 사회와 가족들과 자신에게 대한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부모로서의 책임 완수인 것이다. (계속)
金南洙(神博·CCK사무국장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