敎會(교회)와 新聞事業(신문사업)
世界平信使徒職大會(세계평신사도직대회)서의 新聞(신문)에 關(관)한 決議文(결의문)을 읽고
“確然(확연)한 使徒職(사도직)” 無視(무시) 不可(부가)
取材(취재) · 報道權利(보도권리) 保障(보장) · 協商(협상)을
■ 序曲을 듣는듯
교회가 왜 신문사업을 하느냐? 물론 가톨릭신문 및 교회출판물을 두고서 하는 말은 아니다. 신문이라고 하기 보다 「매스콤」 전반에 대하여 중대한 관심을 가지고 가능한대로 직접 참여할 길을 찾고 있는 것은 교황문서 등으로도 충분한 근거가 있는 짓이지만, 이번에는 세계평신자 대회의 한 결의로서 그 연유를 밝혀놓았다. (1967년 10월 17일 首席代表會議서 決議文을 採擇)
동 결의문의 전반은 현대사회에서 「매스콤」의 비중(比重)을 강조하고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매스콤」이 『사도직의 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며 『실질적인 물질 원조를 하기에 마땅한 것이다』고 하고 있다.
첫째 「매스콤」이 사도직의 한몫이라고 하고 있는 점이다. 재삼 읽어봐도 「매스콤」은 평신자만의 사도직이라는 말은 없다. 동 총회의 인준을 얻어 직접 교황에게 수교(手交, 建議가 아니다) 된 동 결의문은 분명히 『사도직의 권위 있는 한몫』이라고 못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매스콤」에 종사하는 일이 성직자만의 사도직ㄷ조 아니려니와 평신자만의 사도직도 아닌 것이다. 이점에 대해서는 평신자들은 이미 이 분야에 많이 진출하고 있으니까, 성직자들의 더 많은 직접참여를 바람직한 일이라고 하겠다.
둘째 「매스콤」 사업에 주저없이 자금을 던질만한 가치가 있다고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매스콤」 사업은 분명 자선사업은 아니다. 종전같으면 자선사업에는 돈을 써온 교회가 사랑의 표시가 되는 자선사업과는 엉뚱하게 「매스콤」에다가 투자할 수가 있느냐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한편 「매스콤」 사업이 그나름으로 필요하지마는 다른 교회활동만큼 긴요한 것이냐? 하는 반문도 생길 수가 있다.
이에 대한 바른 대답과 동시에 많은 이해(理解)를 촉구해 가야 하겠기에, 우리에게는 아직 실마리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그나마 그길로 서곡이 들려오는 것 같아 흐뭇함을 느끼게 해둔다.
■ 우리의 態度
신문분위(分委)는 다음과 같이 제의하였고 동 결의문에 첨가되었었다.
『제3차 평신도 사도직 세계대회는 모든 사회에서 보도의 권리와 의사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는데 대하여 항의(抗議)한다』라고.
사실 이 보도의 권리와 표현자유의 문제는 그 동기가 어떻든 그리고 그 환경이 어떻든 거기에 관계없이 침해(侵害)와 제한(制限)이 있어서는 불행한 사태이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보도이 권리와 표현자유가 침해, 제한당하는 일은 어떤 유력한 변명이 성립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사실 자체만은 유감된 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언론관(言論觀)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많은 논난의 여지가 있음을 감추지 못한다. 비록 우리는 언론이 자유가 자연법(自然法)에 의거한 것이라고 하고 있지만 현대의 「매스콤」 전반이 일반적으로 정도(正道)를 걷고 있다고 평가할 수 없음을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항상 복음의 요구와 그리스챤의 양심을 가지고 「매스콤」을 다뤄가야 하겠으며 이 길로서만 현대 「매스콤」을 정신적으로 부축해 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
■ 現代의 危機
가톨릭언론인의 바른 자세는 현대 문명에 대한 옳은 인식에서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현대문명이 어떤 위기를 겪고 있느냐, 하는 문제보다 큰 것은 없다. 말셀의 말같이 현대문명은 대중사회 「매스 소사이어티」를 만들었고 그 대중사회 안에 온갖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고 하였다.
대중사회를 떠받들고 있는 것은 바로 현대문명인데, 그 현대문명이 총아이며 그 독자적(獨自的) 성격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다름아닌 「매스콤」인 것이다. (同 決議文 中에서)
대중사회의 큰 약점(弱点)은 빛나는 지성(知性)과 개성(個性)의 창의(創意)가 결여되어 있을 뿐더러 그것들을 살려주지 못하는데 있다. (R. 과르디니) 그때문에 현대문명은 한꺼번에 대중적으로 파멸할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가톨릭 안의 문명비평가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오늘보는 바와 같은 소위 「매스콤의 時代」를 예견하고 많은 경고를 해왔었다.
■ 積極的 善用
오늘 가톨릭의 「매스콤」에 대한 견해는 적극 참여의 방향으로 나가고 있다는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제3차 세계대회의 신문에 관한 결의문을 보더라도 그 말투부터 적극성을 띠고 있는 것이다. 이왕 적극론을 밀고 나가는 판이니 교회당국도 아낌없는 성원과 실효 있는 대책을 세워가야 할 줄 안다. 우리의 정신적인 바탕에는 복음의 「메시지」가 있고 크리스챤의 양심이 있는 만큼, 오히려 그러한 정신적인 문제보다 어떻게 하면 희미한 반딧불만도 못한 우리의 이방면의 활동을 불밝혀 놓을 수 있겠는가, 보다 박력있고 구체적인 일의 추진만이 아쉬운 것이다.
姜達秀(言論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