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開發(개발)되는 農村(농촌)찾아 - 疏外(소외)된 社會參與(사회참여)의 動脈(동맥)] ⑬ 전주 해바라기 농장
科學不在(과학불재)의 農場(농장)같은 印像(인상)
많은 과제·문젯점 주는 10년의 방황
다각영농 ⇨ 낙농 ⇨ 주잠으로 목표 변경
선견지명 있었나
호남선 이리역을 한정거장 앞두고 황등역이 있고 여기서 2km지점에 월성리라는 부락이 버려진 것처럼 졸고 있다. 가도가도 황톳길, 무풍(無風)에도 진흙이 십척이요, 유풍이라 한번바람이면 황진이 만장이다. 비만오면 아예 이 마을에는 들어갈 생각을 말아야 한다. 가까이 전주와 이리같은 도시를 지척에 두고도 이처럼 소외된 고장에 전주교구가 일찌기 그 현실 참여의 동맥을 뻗쳤던 것이다. 9년전 그러니까 2차 공의회서 「현대세계의 사목헌장」이며 기타 지역사회개발에 관한 회칙들이 나오기 훨씬 전의 일이다. 특히 전주교구는 농촌본당이 대부분이다. 다른 교구에 앞서 지역사회개발에 앞장섰던 교구지도자들의 선견지명을 찬양하기보다 오랜 세월을 두고 그만큼 뼈저리게 느껴진 현실문제였으리라.
농촌본당 사목을 위한 허다한 꿈을 안고 발족한 농장, 이름하여 「해바라기농장」이라하였다. 千里暗黃巖에 寸心明白日이라, 또 하나 다른 세계를 동경하며 이마에 땀흘려 쌓아올릴 농민들의 「센타」 참다운 발전을 기약한지 오래다. 농장 석주문을 들어서면 마음은 한없이 밝아진다. 옛날 일본인들이 쓰던 농사시험장을 해방 후 농도원으로 개편하면서 정리한 일부지역 약5만8천평을 불하받아 현대식 농장으로 정리한 것이다. 논도 있고 밭도 있고 축사도, 그리고 검푸른 송림도 있어 아름답다. 10년이면 산천도 변한다는데 우리 해바라기는 아직 꿈속에서 조심성있게 장래를 손꼽으며 망서리는 소녀의 살림 같다. 본래 방침은 유축모범농장을 만들어 농촌청년들을 훈련하는 농민의 집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일을 불란서에 본부를 둔 국제향토개발협회의 기술지원으로 시작했던 것이다. 일테면 단일경작에서 다각영농의 시범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의 기술자는 「마르크」라는 불란서 청년이었다. 그다음 독일청년 「한스」라는 친구가 낙농을 주축으로 하는 목장으로 바꿔야 한다고 했다. 기계를 도입하여 목야지 조성에 힘을 기울였다. 이즈음에 협조를 맡고 나섰던 오지리 가톨릭부인회가 현지와의 의견의 차질이 생겨 외국인들이 떠나면서 이 농장은 다시 목적설정을 두고 방황했다. 교구당가에서 한때 직영으로 경제작물을 위주로 최소한 자급자족을 꾀하면서 농장 유지에 골몰하다가 현재 성체회 수녀님들이 맡아 운영하면서 주잠농장으로 다시 방향전환을 했다는 것이다.
누에 12자를 칠수있는 현대식 잠실을 위시하여 목초시설을 시멘트 건물로 바꾸는 공사가 한창 이다. 작년가을 현재로 닭 1천4백수 파쿠샤 30두 산양 3두 역우 2두 등의 가축과 수답 1만2천평을 위시하여 잡다한 농작물 과수들을 심어놓고 있다.
말하자면 좋다는 것은 모조리 해본다는 초조한 농장이다. 과학부재의 농장 같은 인상을 짙게하는 농장이라 하겠다. 수녀님들의 농장을 보면 대개가 「성의」 하나로 농사를 해보려고 애만쓰고 수고만 하는 반면 별로 소득없는 경우가 많다. 천국에 많은 공로는 쌓여도 지상의 창고는 텅텅비어 있기 일쑤다. 성체회 수녀 14명이 원장 張수녀님의 지휘로 일을 맡아보고 계신다. 해바라기능장은 또한번 먼 장래를 기다려야 하겠거니와 10년의 방황은 우리에게 많은 과제와 문제점을 주고 있다.
金達湖 記(本社論說委員·慶大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