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에 발발한 6.25동란은 1953년 7월 27일의 휴전으로 일단 비극의 막은 내렸으나, 15년이 지난 오늘, 우리나라의 현실은 70년대의 위기설과 함께 또다시 긴장감에 사로잡혀 있다. 6.25는 이 땅에 박해때의 방갓과 도포 대신에 철모와 군복을 가져다주었다. 전세 위급한 1950년 겨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군문에 투신한 수많은 청장년의 반공정신 함양과 사기진작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던 차에 한국 교회 지도자들의 간곡한 진언(進言)을 받고 국방부에 군종과(軍宗課)를 창설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 軍宗兵課 創設
드디어 1951년 2월 10일 육군본부에 창설된 군종과는 곧 40명의 가톨릭신부와 프로테스탄트 목사를 모집하여 교육을 시킨 후 전후방 부대에 배치시킴으로써 동양에서 처음보는 군종제도가 탄생되었다.
■ 教會 一致運動
이 군종제도로 말미암아 교회일치 운동은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열리기 훨씬전에 이 땅에서 실천에 옮겨지고 있었다. 즉 군종신부들은 열교인시(裂敎人視)하여 접근을 꺼리던 목사님들과 함께 한솥의 밥을 먹고, 같은 숙소 같은 사무실 같은 교회건물에서 공동의적(敵)인 공산주의와 싸우며 일치단결하여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교회일치 운동을 실천했던 것이다.
신자가정에 태어나서 신학교 울타리 안에서만 교육을 받아, 사회와 타종교에 대한 피상적 지식밖에 없던 신부들은 프로테스탄트교회의 활약상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가톨릭신자는 전체의 1~2%에 불과한데 비해,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은 수적으로도 많고, 보다 능동적으로 또한 보다 인간적인 방법(설교와 찬송)으로 목회(牧會)를 하며, 보다 많은 인사들과 신자들의 후원을 받는 것을 보고 교회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되는 것이다.
각계각층의 청년이 가정과 직장을 떠나 군율의 엄한 통제하에 특수사회를 형성하여 국가민족을 위해 봉사와 희생을 바치는 이들 군인에 대한 정신지도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말할 필요도 없다. 육체적 훈련과 반공으로 정신무장이 돼있어야 승공(勝共)의 전투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종활동의 대상은 이들의 5%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軍宗을 理解하자
군종이란 그 부대의 정신적 지도자이며 지휘관의 참모이기도 하고, 신자들에게는 바로 목자이기도 하다. 그러니 신자들만 상대로 하다시피 하는 사회 신부들이 받는 신부의 대우나 존경은 포기할 수밖에 없을 것이며 신부의 체신이 때에 따라서는 여지없이 땅에 떨어지는 수가 허다하다. 비신자들로부터 지도자로 또는 참모로 인정을 받기까지는 피나는 노력이 점철돼야 하며, 예수님과 같이 온갖 핍박을 당하면서도 봉사해야 한다. 자신을 봉사의 제물로 바쳐 「호랑이 굴로 들어간」 군종신부에겐 박해시대의 포교정신이 필요하다. 일반신자들은 우리의 군종신부들이 이방(異邦)지대 아닌 이방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된다. 찬란하게 보이는 그들의 계급장도 그만큼 숱한 역경을 겪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 神父의 天職은 本堂神父
군종신부에겐 신부복과 군복 두 가지가 다 정복이다. 오랫동안 군복을 입다가 신부복을 차리면 신부복의 중요성과 『신부의 천직은 역시 본당신부』임을 통절히 느끼게 된다. 대학학장 병원장 신문사 사장 그 무슨 직이든 간에 신부의 천직은 주교도 아니고 본당신부인 것이다.
사실 신부활동의 최첨단을 가는 분들이 군종신부이다. 미사거행이나 성무일과 단식과 공복제(空腹齊)뿐만 아니라 일반사죄 등에 있어서 군종신부들은 실험장에 있는 것처럼 교회법을 적용하는데 제일 앞서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결코 교회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 軍司牧의 喜悲
지휘관의 몰이해와 타교파 군종의 비협조 내지 음성적 방해는 참으로 골탕먹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마치 못된 시어머니 밑에서 시집살이하는 며느리와 같다. 민주주의가 성숙치 못한 곳에서 이런 현상이 많으며 초창기에는 큰 말썽과 분쟁도 가끔 일어났었다.
그리고 군종신부가 본당신부들로부터 냉대를 받을 때 그 슬픔은 누를 길 없다. 이같은 현상은 군과 군종에 대한 인식부족에서 생기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어느 본당이든 여신자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군인교회만은 아이들도 여자들도 없는 오직 남자청년들만의 교회이다. 통경(通經) 소리도 신부의 강론소리도…모두가 전국본당과 공소에서 모여든 청년들의 혼성 「팀」이 내는 소리다. 한국교회의 앞날을 지고나갈 청년신자들, 이들을 잃는다면 교회의 전도는 어떻게 되겠는가.
군종신부가 신망이 부족한 군인이나 군무에 지쳐 신앙을 멀리하고 있는 군인들을 만나 신앙을 나눌 때의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사람보다 더 냉정한 태도로 나오는 신자를 만날때 군종신부의 가슴에는 통증이 생긴다.
■ 軍宗에 期待한다
군종병과 창설 17년이 지난 오늘, 군이 수많은 인력과 장비를 전출(轉出)시켜 후진성을 띤 우리사회에 크나큰 기여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이, 군종은 교회가 사회와 호흡을 같이 하도록 돕고 능률적인 사목계획과 행정을 도입시켰으며 또한 교회일치 문제와 대화·일반교회 인사와의 접촉 및 대(對)사회관계 등 제2차 「바티깐」 공의회 정신에 입각한 교회발전 과정에 기여한바 컸다.
좀 더 체계적이고 계획적인 군종업무가 본괴도에 오른다면 보다 많은 업적들을 교회내외에 이룩할 것이라 믿는다.
아직도 공군과 해군을 제외하고 육군 군종은 개척단계에 있다고 생각된다. 군종은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룩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역사의 흐름에 따라 개척자의 역을 애써 다해야겠고 교회는 많은 이해와 인식을 갖고 군종과 그 사업을 적극 후원해야 하겠다. 대한민국이 있는 한국군이 건재하고, 그들을 위한 군종신부도 전재해야 한다.
「젊은 청년들을 얻는 자는 모든 것을 얻는다」고 믿는다. 한국교회의 전도는 젊은이들을 잡느냐 잃느냐에 좌우될 것이다.
安達遠(前陸軍軍宗次監·豫備役大領·現부산초량본당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