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학교 1학년때 한 수녀가 우리에게 준 성탄절의 과제중 이런 것이 회상된다. 그것은 대림절(待臨節) 동안 「베틀레햄」의 말구유 앞에서 4천번의 기도를 드리게 한 것이다. 왜 하필 4천번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 메시아를 기다리던 4천년을 의미한다. 그것은 바로 성탄절에 우리들 마음에 가정에 그리고 교회에 오실 그리스도를 맞는 차비였었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에서 물리적 변화에 수백만년이 걸렸던 것이나 이스라엘 역사가 주님의 성탄을 준비하기에 수천년이 걸렷음을 이제 배웠다. 평화로웠어야 할 그리스도의 강생에 희랍의 지혜나 로마제국의 제도가 무관한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이 시간의 세계에로 오심에 앞서 수백만의 선조들은 의식적이든 혹은 무의식적이든 기다렸던, 육시을 취한 우리가운데 거처하신 메시아를 맞는 일과 준비에 어떻겐가 기여했다.
우리는 오늘 1967년의 성탄절에 어떻게 그리스도의 오심을 준비할 것인가? 혹은 나아가서 위대한 권능과 위엄에 찬 하늘나라의 구름 가운데 나타나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나?
만약 옛날 희랍 · 로마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첫번째 오심을 맞는데 할 일을 했다면 오늘날의 아시아와 미국인이 혹은 구라파인이 그리스도 再臨에 대비할 어떤 사명을 지녔다고 할 수 없을까? 분명히 있다. 공의회의 가르침 특히 현대세계에서의 교회헌장은 이견해를 분명히 뒷받침한다.
아뭏든 무엇이 발달했든 오늘날의 현실대로 우리는 1967년의 성탄을 준비해야 한다. 인간을 우주로 보내는 것이나 「젯트」나 RV로 세계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이나, 인류의 합일은 하느님의 나라를 이 지상에 이룩하는 그리고 그의 재림을 날에 그리스도의 現存을 위한 것이다. 좌우간 이런 현상은 그의 재림의 준비가 대단히 인간적이며 세속적인 것이고 첫강생 준비시기인 희랍과 로마인의 역사에서 볼 수 있는 같은 현상임은 사실이다.
오늘날의 교회일치 정신의 성장, 기독인과 비기독인의 인간 존엄성, 인린애와 자유의 상호가치존중은 그리스도의 마지막 오심에 중대한 기여가 된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세계역사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고 그는 지금 우리들 마음가운데서 영원의 세계를 준비케 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 그리고 어떻게 이것이 성취될지를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새로운 우리의 거처이며 정의의 새 세계를 마련하고 있다고 우리는 배웠음』을 현대세계에 있어서의 교회헌장은 가르친다.
어떤 사람은 인생은 물질주의적인 것이 아닌지 묻는다. 그러나 공의회 교부들은 이를 부인한다. 인간이 세계를 모두 얻을지라도 자기를 상실한다면 그에게 모든 모든 것(물질)은 의의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대하는 새로운 세계는 보다 발달한 곳, 새로운 인간 가족이 이룩될 곳이다. 인격이 존중되고 어린애와 자유가 풍요하며 진실과 성총, 정의와 사랑과 평화로 가득찬 곳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볼 수 있는 눈, 들을 수 있는 귀를 복되다고 하셨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첫번째 강생을 본 사람은 복되다. 그리스도게서 생활하시는 각자의 마음은 복되다. 그리고 영광 속에 오실 세말의 그리스도를 맞기 위해 힘쓰는 자는 복되도다. 그들은 그 순간, 순간,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심을 볼 것이다. 그들은 특히 그들이 『그나라가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길』 기도한 그대로 그리스도를 이번 성탄절에 뵈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