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돌리 랭포드는 「호텔」 창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저만큼 「놉」 산기슭에는 「케이블카」가 고물고물 기를 쓰며 경사지를 오르고 있었다. 그는 「샌 프란치스코」에서 외로이 맞이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예상보다 훨씬 더 을씨년스럽다고 느꼈다. 쾌청한 날씨였지만 만(灣)에서 불어오는 습기낀 세찬 바람이 거리를 휩쓸듯이 휘몰아치고 있었다. 일기예보는 화씨 30도 내외이 기온이 예상된다고 보도했으나, 「차이나 타운」 쪽으로 「쇼핑」차림간 서성거려 본 다들리는 영도 이하로 기온이 떨어졌음에 틀림없는 추위를 느꼈다.
그래서 그는 좀더 먼 친적들에게도 사보내기로 맘먹었던 성탄 선물은 그만 단념하고, 따뜻함과 고독이 서려있는 그의 「호텔」방으로 얼른 되돌아 오고 말았다.
다들리는 이번 「크리스마스 이브」를 맞이하여 어떤 자기연민에 빠져 있었다.
당년 42세인 그는 결혼생활 20년에 아내와 네 자녀의 곁을 떠나 성탄절을 보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미안하네 다둘리』
그의 사장 댐 브레들리가 그를 달래며 양해를 구했다.
『그렇지만 이번 해산식물(海産食物) 거래 계정(計定)은 수익이 엄청나게 큰 놈이라서 놓칠 수가 없네. 우리가 백할 수 있는 오직 하나의 길은 그들이 요구한 대로 24일과 26일에 그들과 만나는 수밖에 없어』 문득, 다들리는 비행기를 타고 「신시나티」로 되돌아가 크리스마스 정찬을 가족과 함께 즐기는 공상에 잠겼다. 아내 매지는 내가 또 비행기를 탓다고 나무래겠지.
『언젠가 당신이 비행기로 여행중일 때 사고가 날가봐 얼마나 가슴을 조였는지 모른다』
는 말을 되풀이 하면서…
광고부장인 그는 여러 도시로 출장을 다닌지가 꽤 오래된 터이라 도시에 낯선 사람이 아니었고, 동부 「텍사스」와 「캔사스」 주에서시골생활로 청소년기를 보낼 후 「신시나티」의 중심가와 교외로 옮아와서는 편리하고 신속한 도시생활에 재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여행은 그의 인생관을 넓혀 주었고 사업은 사회에 대한 개념이 폭을 확대시켜 주었으며 승진은 그의 개인적 목표를 점차 달성시켜 주었다.
드디어 「케이블카」가 「호텔」 창문 아래에 있는 승강장에서 절꺽 소리를 내며 멎엇다. 부인 한 사람과 어린이 두명이 인도와 안전지대로 향해 뛰쳐나오는 것이 보였다. 한 사라이가 분명히 술에 취한 듯 길 한복판에서 이따금 비틀거리고 있었다. 사나이는 싸구려 술집을 몇군데 더 들려 좀더 심한 두통을 앓기로 작정한 모양인지 「차이나 타운」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호텔」 맞은편 인도 위에는 햇볕이 한결 화사하고 유쾌한 걸음거리로 오가는 사람들의 「쇼핑 빽」은 다져 넣은 물건 꾸러미들로 터져나갔다.
울적한 심경에 사로잡힌 다들리 랭포드는 이윽고 창곁을 떠나 조그만한 그의 방, 외로운 안락의자 옆으로 돌아와 책상위의 술잔을 집어들었다. 그리고 그는 거울 속의 자기를 향해
『자! 축배』
하며 냉소(冷笑)를 흘렸다.
그날 아침에 있었던 거래선(先)과의 회합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다들리는 거래가 성립되었다는 확신을 가졌으나 거래선으로부터 최종언질을 받기 위해서는 크리스마스 이튿날까지 그곳에서 기다려야 했다. 그는 지금 그다지도 쓸쓸한 「크리스마스 이브」가 계속되고 성탄날은 그보다 훨씬 더 쓸쓸한 것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술명 하나를 더땄다.
벽에 붙은 라디오에서는 그가 즐겨듣고 즐겨 부르던 성탄 축하음악이 울려나와 그를 조롱하고 있었다.
방송되는 「캐럴」은 모두 기쁘고 평화스런 가정생활을 생각나게 하는 곡이었다. 빙 크로스비의 「오! 베틀레헴의 작은 마을」은 그를 완전히 과거 속에 파묻어 버렸다. 그는 술잔 속을 멍하니 응시하고 앉아 추억을 더듬었다. 눈으로 뒤덮힌 동부 「텍사스」주의 소나무들, 온가족이 건초를 실은 수레를 타고 「캐롤」을 합창하며 즐기던 「피크닉」, 자정미사, 노래하는 가족들, 구운 칠면조와 돼지고기, 우유를 섞은 난주(卵酒)와 포도주 그리고 많은 이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있을 성탄절의 추억들….
어느듯 과거사를 연대순으로 회상하기 시작한 그는 아버지의 돌같은 표정과 항상 눈물이 글썽글썽한 어머니의 두 눈말울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는 39년도의 노후(老朽)한 「쉐비」차가 무거운 짐을 싣고 무성한 밀이 굽이치며 너울대는 중앙 「캔사스」주의 벌판을 향해 닳아빠진 「타이어」로 불안스레 곰실곰실 전진하면서 소나무가 점점이 들어선 산등성이로 스러져 버릴때 그의 5남매가 알지 못할 흥분에 쌓였던 일도 생생하게 회상되었다.
다들리 일가가 「캔사스」주의 환경에 적응하는데는 얼마간의 시일이 걸렸지만 시골풍인 그의 가족은 쉽게 적응될 수 있었고 「캔사스」주의 토착민들도 그의 가족과 동질적인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다들리 일가는 가족과 농장, 종교아 권리를 높이 평가하는 「캔사스」 즉 또 하나의 배양기(培養基)에 밀착되어 재빨리 그것의 일부로 흡수돼 버렸다.
「캔사스」에는 또한 북풍이 휘몰아오는 눈(雪)이 있었다. 초원을 가로질러 노도(怒濤)와 같이 밀어닥치는 눈바람은 그루만남은 모든 밀밭을 눈더미로 뒤덮어 버린다. 성탄절이 되면 「캔사스」는 농가의 붉고 푸른 지붕들을 점박이로 한 눈(雪)이 불속에 묻혀 있어, 동부 「텍사스」와 같은 상록(常綠)은 전혀 볼 수 없다.
「캔사스」의 성탄절이야말로 진짜 성탄기분이 나는 성탄절이었다. 설매와 「캐롤링」, 칠면조와 「햄」도 잇었다. 무엇보다도 「캔사스」의 가족들은 아기 예수님이 지금 그 자리에 탄생한 것처럼, 아니면 예수님의 첫 탄일을 맞이한 것처럼, 또한 예수님이 그들의 모든 가정에서 그들과 함께 당신의 탄일을 축하하고 있는 것처럼 성탄을 축하하며 환희와 행복감으로 들떠있곤 했다.
돌연 따르릉 하는 전화 「벨」 소리에 놀란다. 돌리는 회상을 퍼뜩 걷고 수화기를 들었다.
헨리 리버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