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10) 보이지 않는 실낱 ③
발행일1967-12-10 [제597호, 4면]
현관문이 화다닥 열렸다. 벼란간 죽음의 집에서 요정이 춤을 추며 나오는 것 같이 봉애가 달려나왔다.
그 나오는 품이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정식은 저도 모르게 잔디밭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저씨!』
이쪽을 향해 달려오며 봉애는 소리를 질러 불렀다.
『왜 그러니?』
『시 시외전화예요』
『시외전화? 어디서』
『M宸
『그런데 왜 그리 야단스러우냐?』
『작은 아저씨가』
봉애의 얼굴은 새파랗게 질려있었다. 그리고 다음 말을 잇지 못해 매마른 입술은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작은 아저씨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정식의 낯빛도 확 변했다. 그의 얼굴에는 공포의 그림자가 역력이 떠올랐다. 그는 순간 윤식의 생명과는 관계없는 끔직스런 변고가 일어난 것을 직감했다. 그 직감은 그의 의식을 모조리 점령하고 총명한 사고력을 마비 속에 빠뜨렸다.
『작은 아저씨가 어떻게 됐다는거야』
자동기계처럼 아까와 같은 말은 되풀이 해 물었다.
『병이 나서 큰 병이 나서 어서 전화 바꾸래요』
『병이?』
순간 정식의 얼굴에서는 공포의 빛이 사라졌다. 그러나 그는 얼굴을 붉혔다.
부끄럽게 여겼던 모양이다.
윤식이 죽기를 바랄 하등의 이유가 없다. 한 피를 나눈 동생을 죽기 바랄 형이 어디 있겠는가. 다만 정식은 집안의 명예를 먼저 생각했던 것 뿐이다.
집안 망신을 시킬 큰 사건을 저질렀으리라는 공포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비하면 봉애의 태도는 간절한 바가 있었다. 단순히 주인집 아들이 큰 병에 걸렸다는 그런 저옫의 근심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절실함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놈이 봉애한테까지 손을 뻗친 것 아닐까?』
정식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어떤 죄의식 때문에 얼굴을 붉힌다.
그런 일을 생각할 만큼 여유있는 자기자신이 악마처럼 생각되기도 했던 것이다.
『여보세요. 전화 바뀌었읍니다.』
『아 정식군인가?』
『네』
윤식이 묵고있는 M시의 유지 강용수씨였다.
『이거 참 난처한 일이 생겨서 자네가 곧 내려와야겠네』
강용수씨의 목소리는 무겁고 난처해 하는 투였다.
『윤식이 변이 났다고 그러신 것 같은데요?』
정식은 일말의 불안을 다시 되씹으며 물었다.
『음, 병이래도 그게 좀, 하여간 빨리 내려오게』
『위독합니까』
『생명과는 관계 없겠지만 하여간 야단났어』
『어떻게?』
『놀라실테니 어머님한텐 그냥 아프다고만 하고 아버님한테도 역시 … 사실은 말일세 윤식이 발광을 했단 말이야 거 좀 어딘지 이상하다 이사아다 했지만』
수화기를 든 정식의 팔이 부르릉 떨었다. 그는 목에서 더운 김이 숫구쳐 입안이 바싹 타는 것을 느꼈다.
『그 그럴리가』
『아무튼 빨리 내려오게 이거 정말 큰 야단났군』
강용수씨는 전화를 끊었다. 끊은 것도 모르는듯 종이장처럼 질린 얼굴로 정식은 수화기를 귀에다 댄채 언제까지나 그러고 서 있었다.
방에서 부엉이 시계까 시간을 울렸다. 정식은 수화기를 놓았다.
부엉이 시계는 여전히 시간을 울리고 있었다.
『아저씨 어 어떻데요? 저 주 죽』
뒤에서 봉애가 무었다.
『죽긴 누가 죽는다고 했어!』
정식은 주먹을 휘두르며 고함을 쳤다.
『죽는 편이 차라리 났지』
그는 입속으로 중얼거렸다.
『나가! 네가 무슨 상관이야? 부엌으로 나가란 말이야!』
정식은 다시 고함을 쳐서 봉애를 떠밀어내며 방문을 쾅 하고 닫았다. 그리고 방문을 등지고 선채
『무슨 일이 올 것만 같더란 말이야. 깊은 바닥에서 음산하고 저주 서린 신음 소리가 울려올 것 같더란 말이야. 그런데 이것을 어떻게 비밀로 하지?』 그의 눈앞에 윤이의 얼굴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 집은 혈통이 나빠서 안된다)
윤이 어머니의 싸늘한 거절의 목소리가 마치 난타하는 종소리처럼 정식의 귁가에 울리고 또 울렸다.
그는 전화 옆으로 와서 떨리는 손으로 다이얼을 돌린다.
『사장 계시오?』
『나가셨는데요』
여비서이 대답이었다.
『어디로 가셨는지 모릅니까?』
『글쎄요』
『급한 일이 있어 그러니까 좀 알아봐주슈』
『그럼 잠간 기다리세요』
한참 후 남자 목소리로 바꾸어서
『웬일십니까』
사장 아들인만큼 굽신굽신 말하는 사람은 남자비서 이군이었다.
『하여간 빨리 사장 셰끼는 곳이나 알아주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