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에 의한 사회문제에 점차 그 관심의 도가 높아져 가는 이때 청년기에 속해 있는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며 평소 마음에 품었던 몇가지를 두서없이 엮어 보려 한다.
얼마전 이런 신문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스칸디나비아에 이른바 「열쇠아동」이란 것이 있다. 부모 모두가 일하러 나갔으므로 열쇠를 목에 걸고 다니다 학교공부가 끝나면 그 열쇠로 텅빈 집을 열고 들어가 엄마 아빠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여섯살도 안된 유치원 어린이도 목에 열쇠를 걸고 다닌다 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열쇠아동들이 나중에 반사회적으로 된다는데 있다. 「히피」의 약70프로가 이 열쇠아동 출신이라는 것이다.
어떤 정신의학자가 말하는 소위 문제아들이 사건을 일으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자신의 고독을 표현하는 방법이며 그 누구에게 그 무엇을 요구하는 행위라고 하였다. 실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청소년의 대부분은 불우한 파괴된 가정의 출신이며 그들의 가정환경을 조사하면 어딘지 잘못된 데가 있다는 것이다.
텅 빈집에서 일에서 돌아오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기다렸으나 저녁늦게 돌아오신 아버지 어머니는 일에 지쳐 아이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을 때 이 이루하고 답답함을 달래기 위해 극장가를 배회하고 친구들과 어울려 다님은 능히 상상할 수 있으며, 집에서 매일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투거나 아버지 어머니의 지가친 간섭 학교성적의 중압 등으로 어린 마음에 불안과 불만이 가득차고 초조와 공포에 사로잡힐 때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그들대로의 일을 저지름은 당연한 이치이다.
이러한 그들의 행동을 사회는 불량아라 하여 『장차 이나라를 짊어질 너희들이…』하며 눈을 찌프리고, 처벌을 하면 과연 그들은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며 사회는 악순환을 거듭할 것이다.
얼마전 청소년 선도 기가을 정하고 시내 경찰들이 「청소년 선도」라고 쓴 띠를 가슴에 두르고 다니던 일이 생각난다.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얼마나 효과가 있었는지 의심스러웠다.
참된 선도는 모두가 그들의 참된 친구가 되주어 말뿐이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그들을 대해주고 이해해 줌에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이다.
전에 『좋은 친구를 사귀라』라는 말을 들었을 때 이런 회의를 가졌었다. 『누구나가 다 좋은 친구만 갖는다면 나쁜 사람들은 누가 친구가 되어주나? 결국 자기들끼리 어울려 더 나빠질 수 밖에 없지 않을까?』
그러나 지금은 이렇게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좋은 친구가 되어라. 특히 나쁜 사람들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라, 그리고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어라』
우리는 청소년의 끔찍한 범행을 접할 때 그들의 부도덕을 나무라고 세태의 험악함을 한탄하기 쉬우나 오히려 그에 앞서 그런 행동을 하게된 숨은 원인을 생각하여 울의 잘못도 인정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감싸 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행동이 마음 한구석에 빈 곳을 채우기 위해 하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 빈 마음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함으로써 그 청소년들을 구하고 사회가 정화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에 의한 사회문제가 마치 현대의 특징인양 나타나고 있는 요즘 이것의 해결을 위한 많은 노력과 시간을 소비하고 있으나 이렇다할 효과를 못봄은 역시 그 근본을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사회가 특히 부모들이 그 자녀에 대한 책임을 절감하여 알맞는 방법으로 자녀를 살피고 이끌어 줄 때 청소년의 문제화는 더이상 일어나지 않을 것이며 기존의 문제는 처벌이나 책임을 묻기보다는 개개인의 접촉을 통해 그들 속에 들어가 문제를 해결해 주고 따뜻한 눈길을 보내며 그들에게 이념을 줌으로서 모든 것이 제 자리로 돌아가리라고 본다.
즉 청소년과 사회문제라는 이 큰 과제를 앞에 놓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사회전체가 하나가 되어 이 목표를 향해 나아갈 때 비로서 명랑한 사회가 이룩될 것이라고 믿는다.
李성호(연세대학교 의과대학 본과3년 李聖호 · 요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