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한 밤」이 요란하게 불려지는데 對하여, 人氣民俗歌手인 시몬과 가펀컬이 성탄의 「이미지」를 받아들이는데 對한 人類의 실패를 진술한 바 있다. 「고요함 밤」이 경건하게 울려퍼지는 동안 7시 「뉴스」가 발표된다. 음악이 평화스럽고 고요한 시정을 말해주는가 하면 「아나운서」는 오늘의 사회에서 일어난 갖가지 격렬한 사건들을 일일히 열거한다.
이러한 대조는 그리스찬으로 하여금 그들의 理想을 구현시키려는 하나의 挑戰으로 성탄의 비사를 이해하는데 효과적인 자극을 준다. 하느님 제2위 성자가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은 하느님이 자신을 드러내시려는 가장 높은 뜻에서이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사랑의 성질은 사랑 자체이신 당신을 표현하고 전달하는데 있다. 교회는 강생하신 말씀의 비사에 비교된다.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사랑 자체신 당신 아버지를 나타냈음과 같이 교회는 이 사랑을 聖事化하는 책임을 지고 있다. 교회 헌장이 이 類似点을 잘 설명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에 취해진 인간성이 말씀에 解消할 수 없는 것으로 결합된 구원의 살아있는 기관으로서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사적 機構는 몸의 성장을 위해서 교회를 살게하는 그리스도의 성신에 봉사하는 것이다.』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의 역할은 그리스도를 인간사회에 가져오고 세기를 통하여 그의 신비체를 확정시키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교회는 믿음과 성세로써 그리스도의 몸과 결합하게 되는 모든 사람 안에 그리스도를 잉태하게 하는 것이다. 그리스찬 각자는 자기가 그리스도와 또 교회 안에 다른 모든 이들과 결합된 사실을 감사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사업에 협력할 수 있을까?』하는 질문을 자주 던뎌야 한다. 우리는 주께서 보여주신 겸손의 표양을 본받아야겠다. 우리는 다함께 경건한 마음으로 전례에 참석하고 또 우리의 사도적 활동으로써 그의 가르치심에 증인이 되어 그의 神性에 더욱 깊이 참여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에서 당면하고 있는 여러 일들을 무관하게 알고 있는 하나의 이유는 우리 주 위에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다는 인식이 없기 때문이리라. 『만일 내가 그때 「베틀레헴」에나 「나자렛」 혹 「예루살렘」에 살고 있었더라면 예수를 무척 잘 따랐을텐데…』하는 상상과 함께 옛 시대를 향수적으로 동경하는 경향이 우리에게 있다. 그러나 우리는 성서에서 매일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그를 만날 수 있다. 즉 우리는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서 매일 그리스도를 발견할 수 있다. 『나 주릴 때에 너희가 내게 먹을 것을 주고 나 나그네 되었을 때 나를 집에 대접하고 나 병들었을 때에 네게 문병하고… 너희가 이 미소한 형제 중 하나에게 베풀 때마다 곧 내게 베푼 셈이니라』(마두 25 · 35-40) 그리스도는 우리 사이에 현존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를 모르고 있다. 그는 우리와 함께 계시고저 하는데 우리는 그를 영접하는데 무관심하다. 우리 주 위에서 그리스도를 강생시킬려는 노력없이 그리스도의 강생의 비사를 거행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무관심을 위선 말하는 것이다. 예수회 신부 머레이 아브라함은 요한 23세의 회칙 「지상의 평화」를 힘있게 해석하여 성탄축제를 거행하는데 있어 우리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즉 「메리 크리스마스! 나는 인생살이의 시간의 有限性을 안다. 4억의 굶주린 인도 사람들을 위해 10년이상 원조해줄 수 있는 돈이 2억의 미국 사람들의 폭식을 위해 그것도 단 하루의 크리스마스를 위해 40억불이나 소비되었다. 오 하느님 맙소사. 인자한 목자 요한이여 목자의 소리로 우리를 불으소서. 무의미한 모방, 그러한 웃음거리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크리스마스 츄리」에서 멀리 해주소서. 그러나 크리스마스의 동굴로 돌아가게 해주소서. 크리스마스는 집없고 춥고 버림받은 가난한 하느님의 탄일! 만일 우리에게 선물할 무엇이 있다면 우리로 하여금 춥고 집없고 버림받은 가난한 자에게 주도록 해주소서. 그리스도는 켈커타의 거리에 방황하는 굶주린 거지 그리스도는 「리오데 쟈네이로」의 빈민가에서 울고 있는 과부, 그리스도는 「카이로」의 오두막에 울고 있는 어린아이입니다. 목자 요한이여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로 돌아가게 해주소서. 그리스도는 우리를 필요로 합니다. 그이는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으니 이제 우리도 그이에게 평화를 드리도록 해주소서. 지상의 평화! 아멘』
현세계 내의 교회사목헌장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다. 『이 시대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또 어떤 모양으로든지 괴로움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의 기쁨과 희망 슬픔과 걱정은 곧 우리 신자들의 기쁨과 희망이며 슬픔과 걱정이 되는 것이다. 진실한 신자의 단체야말로 인류와 인류역사를 가장 깊은 유대에로 뭉쳐 진정한 연관을 맺는데 공헌하게 된다.』 성탄은 다만 「베틀레헴」에서 탄생하신 그리스도를 기념하는데 그칠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인류에게 강생하신 것을 축하하는데까지 가야한다. 하느님이 우리 비천한 인간의 처지로 내려오셔서 우리와 함께 살으셨다. 예수께서 당신의 영향을 확장하시고저 사도들의 공동체를 세우시고 이 세상에 당신 구원적 사랑을 들어내시고저 하셨다.
그의 교회를 통해서 선포된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그를 따르는 우리 신자는 성체를 영함으로 영혼을 살찌우고 있으며 자기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사랑과 평화 겸손과 가난의 비사인 성탄의 비사는 우리가 우리 이웃 안에서 이러한 영신적인 가치를 가져오도록 노력하는 그 만큼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의 도움으로 우리의 이념을 더 효과적으로 키워가는데 있어 이 挑戰에 응해주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