無謬的(무류적) 敎理(교리)와 可謬的(가류적) 敎理(교리)
교황의「敎座宣言(교좌선언)」에만 順從(순종)해야 하나
可謬的(가류적) 교리의 과대평가는 無謬的(무류적) 교리의
과소평가만큼 교회의 敎道權(교도권)에 有害(유해)하다
誤謬(오류) 포함돼도 조건부 同意(동의)로 순종
교회 내외의 지대한 관심사였던 인공 산아제한에 관한 바오로 6세의 회칙이 발표되자 신학자들을 위시하여 많은 신자들이 이번의 회칙 내용과 반대되는 교회당국의 단안을 기대해왔기 때문에, 그 반응의 하나로서 대두된 것이 회칙의 권위에 대한 회의, 즉 무류적 교리(신조)가 아닌 교황의 결정에 대한 순종여부 문제이다.
회칙의 교도적 권위는 그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회칙형식으로 발표된 무류적(無播的) 교리, 즉 신조의 선언은 거의 없었다. 이번 회칙을 둘러싸고 일부 신자들은 교황이 무류적 교리를 반포할 때에만 순종할 의무가 있지 무류적 교리 선언이 아닐 때는 내적 순종의 여부는 신자들의 자유의사에 달렸다는 견해를 가진 듯하다.
이 문제에 대해서 「디아코니아」 잡지 1967년 8월호에 게재된 서독 「마인쓰」교구 요셉·러이쓰 보좌주교의 논문 중에서 몇가지 함축성 있는 요점을 여기에 발췌 인용함도 무의미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그는 저명한 윤리신학자이며 교황청 산아제한 연구위원회의 위원이기도 하다. 흥미있는 일은 1년전에 발표한 논문에서 그는 교회의 교도권 문제를 바로 요즈음 문제시되고 있는 산아제한 문제와 관련시켜 논했다는 점이다. 산아제한에 관한 당시의 그의 제안은 『교회 내에서 이 문제에 관한 논의가 이미 시작되었으니 앞으로도 계속하여 더 연구하도록 하자』는 것이었고 또 『그러나 이 문제의 결정은 교황에게 달려있다』고 하였는데 회칙이 발표된 지금에 와서는 이 점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여기에서 논할 문제는 바로 교회의 교도권에 관한 그의 의견이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교회헌장 제25항에서 교회의 부류적 교리 선언이 아닌 선언에 대하여 언급하기 『「로마」교황의 진정한 교도직에 대해서는 각별한 이유에서, 비록 「교좌에서」 말하는 때가 아닐지라도 의지와 이성의 이 성실한 순종을 나타내어야 한다. 즉 교황의 최고의 교도직을 존경으로써 인정하고, 표명된 교황 말씀에 그의 생각과 의향을 따라 성실히 동의해야 한다. 교황의 생각과 의향은 주로 문서의 성질, 같은 교설의 반복, 담화의 형식 등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라고 하였다.
러이쓰 주교는 무류적 선언과 가류적(可謬的) 선언을 혼동하거나 실제로 동등하게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면서 『가류적 교리의 과대평가는 무류적 교리의 과소평가만큼·교회의 교도권에 유해하다.
무류적 교리와 가류적 교리의 차이는 아무도 말소시키지 못한다』라고 하였다. 어떤 교리가 오류일 수 있고 그러므로써 어느 시기에 가서는 변경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말이 그 교리 및 그 교리에서 파생된 실천적 귀결이 무가치하여 신자생활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위에 인용한 교회헌장의 정신에 의할 것 같으면 신자는 교회의 가류적 교리에 대해서도 이성과 의지로써 성실히 순종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 이러한 교리에 대해서 왜 순종해야 하는가? 러이쓰 주교는 말하기를 『교회가 가류적 교리를 반포 할지라도 교회의 그 교도권은 역시 진정한 교도권 즉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된 권위를 지닌 교도권인 것이다.
설사 가류적 교리결정에 오류가 포함되어있고 또 성신이 그것을 사전에 저지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가류적 교리를 결정한 교도권이 진정한 교도권인 한 그리스도로부터 부여된 권위를 지녔으므로 순종을 요구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도 손상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는 또 말하기를 『가류적 교리는 가류적이라는 이유 때문에 그 교리가 요구하는 순종은 이성과 의지의 철회할 수없는 절대적 동의가 아니고, 그 교리의 변경이 가능하다는 전제하에 철회할 수 있는 조건부의 동의이다. 그리고 교회의 교도권이 지금까지의 입수할 수 있는 모든 신학적 지식과 과학적 지식(그러니 이미 완결된 지식이아님)을 참작해서 신중하면 연구검토한 후에야 비로소 결정하게 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가류적 교리에 대해서 이러한 이성과 의지의 동의를 한다는 것은 가능한 일이며 또한 타당하다』고 하였다.
사실 바오로 6세의 이번 회칙의 서문과 그후 「까스텔·간돌포」에서의 그의 연설에 의하면 교회당국이 얼마나 광범한 연구와 신중한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교황은 산아제한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연구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신학자와 과학자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당부하였다.
이번 회칙의 발표는 많은 젊은 신자부부들, 교역자들, 특히 고해신부나 영적지도신부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제 교회의 일원이라면 누구나 이 회칙의 내용을 주의 깊게 연구하는 동시에 교회의 교도권에 관해서도 인식을 새롭게 해야 할 것이다.
러이쓰 주교는 교도권에 관한 그 논문에서 『교회의 교도권에 직접종사하는 이들 이상으로 더 많은 지식을 가진 전문분야의 신학자나 과학자들이 있을 수 있으며』 따라서 그들이 『가류적 교리 선언의 진리성에 대하여 진지한 의문을 품게될 경우』를 예측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그러한 경우에는 교회 교도권의 권위에 충실하겠다는 자유로운 의지적 용의가 있을지라도, 그 의지적 용의가 이성적 동의를 가능케 하거나 그것에 대치될 수 없다.
왜냐 하면 이성적 동의의 기준은 항상 진리성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무류적 교리와 가류적 교리에 대한 이성적 동의의 차이가 나타난다.
어떤 무류적 교리에 있어서는 그 신묘한 진리의 깊이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설사 완전히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무류적 선언으로 표현된 진리에 대한 동의의 결정적 동기는 그 진리에 대한 이해가 아니고 그 진리를 계시한 하느님의 권위 즉 스스로 그르칠 수도 없고 우리를 그르치게 하지도 않는 하느님의 권위인 것이다.
그러나 가류적 교리 선언에 있어서는 바로 그러한 동기가 없다. 그러므로 교회에 아주 충실한 신자일지라도 만약 그에게 가류적 교리의 진리성에 대하여 어떤 구체적 근거 때문에 진지한 의문이 생긴다면 이성적 동의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아주 극적인 경우는 회칙이 취급한 문제에 조예가 깊은 신학자나 과학자들에게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위에서 본바와 같이 그들에게도 교회 교도권의 권위에 대한 순종의 의무는 면제되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하다.
따라서 깊이 연구하지도 않고 신문잡지를 통하여 얻은 얕은 견문이나 피상적 인상을 바탕으로 하여 산아제한과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문제에 대하여 쉽게 운운한다는 것은 경솔한 태도가 아닐가 생각된다. 회칙 발표 후의 이 어려운 시기에 교회 내에 혼란과 분열을 도발케하는 불상사가 일어나지 않길 바라며, 또 한편으로는 교황의 가르침에 의혹을 품는 자들이 먼저 자기들의 의혹을 풀고 교회와 인류에 봉사한다는 뜻에서도 산아제한 문제에 대하여 철저히 연구해 주길 바라마지 않는다.
鄭銀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