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蟋蟀(실솔) (11) 보이지 않는 실낱 ④
발행일1967-12-17 [제598호, 4면]
겨우 연락이 잫았다. 우렁우렁한 김일우씨의 목소리가 울려왔다.
『무슨 일이냐』
『저 M시에 내려가야겠읍니다』
『뭐하러』
『윤식이 때매』
『지금 내려간다는 건가?』
윤식이 때문이라 했는데도 김일수씨는 무슨 일이냐 묻지 않는다.
『네 지금, 바로 내려가야겠읍니다. 전화가 와서…』
정식도 그 저주스런 일을 입밖에 내어 말하기가 싫었다.
『내려가면 내려가는거지, 나한테 알릴 필요가 있나』
김일우씨 역시 심상찮은 일이 생긴 것을 짐작하면서도 능청을 부린다.
『차를 좀 써야겠기에』
『뭐 발등에 불떨어질만한 일이 생겼단 말이야! 지금 당장에 또 차를 달라!』
소리를 바락 질렀다. 화가 나서 그런다기 보다 내가 묻기 전에 이유를 말하라는 뜻이다.
『윤식이가 이상해진 모양입니다.』
『이상하다니? 살이강도를 했단 말이야 급살병에 걸렸단 말이야!』
『저 저 발작을 하는 모양입니다. 정신 이상이』
그 말을 내뱉을 때 정식의 얼굴은 온통 일글어지고 뒤틀리는 것이었다.
『뭐라구?』
김일우씨이 목소리도 긴장했다.
『끝내 말성이군요』
『빌어먹을! 차 보낼테니 기다려!』
전화는 끊어졌다.
집안은 괴괴하니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정식은 두 손을 머리 속에 쑤셔넣고 쏘파에 주저앉았다.
(할 수 없지 낸들 어떻게 해? 내가 미친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가주겠지. 시간이 가주면 무엇이든 해결은 나기 마련이다. 왜 그랬을까? 윤식인 왜 그랬을까? 우리집 혈통에 그 저주스런 피가 흐르고 있었단 말일까? 그렇다면 내 속에도 그 피가 흐르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정식의 머리 속에 어머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는 어머니의 배경을 생각해내려했다. 그러나 그의 기억 속에는 외가가 없었다. 외삼촌도 이모도 없었다. 외할아버지도 외할머니도 없었다. 그의 기억 속에는 언제나 어머니 · 옥 여사 혼자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어머니는 어디 사람일까? 어머니의 고향은 어디일까?)
울다 지친 아이가 어느 봄날 나비를 잡든 일을 생각하는 것처럼 정식은 머리를 부더안은채 생각했다. 정식은 지금까지 그것을 생각해 본 일이 없었다.
(차가 와서 그리고 아무 말 하지 않고 나가도 어머니는 이상하게 생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말 않고 나가는게 옳을까? 얘기를 해야지 얘기를… 그럼 얘기를 해야하고 말고)
정식은 자기자신의 머리도 빙빙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용할 수 없는 공포, 고함을 치고 싶은 충동 정식은 비틀거리듯 일어서서 방밖으로 나갔다. 복도를 지나 옥 여사 방 앞에까지 간 그는 방문을 두드렸다.
『음』
방문을 열었을 때 깨끗하게 치워진 방 한가운데 옥 여사는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이냐?』
『차가 올 동안 기다리는 겁니다.』
『차?』
『네 곧 차가 올거예요』
『어디 갈려고 그러니?』
『네』
『……』
『어머니』
『……』
『우리 외가는 없습니까?』
순간 옥 여사의 안색이 확 변했다.
『모두 일찍 돌아겼어요?』
『벼란간 왜 묻니?』
『너무 적적해서요』
『그런게 아니겠지 알고 싶은 일이 생긴거지?』
옥 여사는 싸늘하게 웃었다. 정식은 다시 머리 속이 빙빙 돌아가는듯 한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나는 어머니를 사랑했읍니다. 어미니를 괴롭히는 일은 죽어도 하기 싫습니다.
하지만 왠지 나는 요즘 무엇이든 좀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문든문득 들곤 합니다. 무슨 일이 우리집을 향해 막 달려오고 있다는 불안감 때매 혼란에 빠지고… 어머니 윤식이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집착이 강한 아이지』
『그런 윤식이 어떻게 변했읍니까?』
『그앤 날 미워하지 그리고 너의 아버지도 미워하고0.』
옥 여사는 정식의 질문과는 다른 대답을 했다.
『윤식이는 발광을 했다 합니다』
옥 여사는 벌떡 일어섰다. 그의 얼굴은 백지장처럼 변했다.
『발광을 했다구?』
나직히 중얼거렸다. 정식은 그 방에서 쫓아나왔다.
정식은 어둠의 찬 기운을 입안 가득히 마시며 뜰을 질러서 문밖으로 나왔다. 생각도 걱정도 다 몰아낸 그의 머리 속에 윤식의 웃음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집앞에서 몇발자욱 걸음을 옮겼을 때 자가용이 나타났고 정식은 가자용에 몸을 실었다.
『M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