夜話(야화) (29) <第二話(제2화)> 榮光(영광)의 敗北(패북) ⑮
발행일1968-09-22 [제636호, 4면]
『미스·양?』
『네?』
『그만하면 지금의 내 심정을 알아줄 테지?』
『네.』
『그렇다면 미스·양의 힘으로 내간절한 소원을 좀 풀어주어. 나는 지금 그것만이 목적이고 희망이야』
『글쎄 왜 자꾸만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앞으로 하실 일도 많으신데…』
『무슨 일? 나같은 나쁜 놈도 무슨 할일이 있을까?』
은실은 가볍게 웃었다.
『사장님이 머 그렇게 연세가 많으신 것도 아닌데, 사업도 더 하셔야 할거고 또 소원이시라면 과거에 대한 보속도 하셔야 할거 아니어요?』
『그야 그렇지. 그것 때문에 이렇게 허둥지둥 고국으로 돌아왔는데, 그렇지만 나한테는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어. 서두르지 않으면 그렇게 할 겨를이 없을거야. 그동안도 귀국한 후로 너무 많이 허송세월을 했어. 물론 피치 못할 일이었지마는 나에게는 금조각 처럼 귀중한 시간이었어.』
『사장님, 자꾸만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건강은 무엇보다도 마음에서 오는 거라고 그러지 않아요. 아직 그렇게 늙지 않으셨으니까 기운을 내시면 꼭 건강을 회복하실 수 있을 거에요.』
『미스·양 고마워. 그렇지만 나는 구태여 건강만을 골돌히 바라는 것은 아냐. 사람이 오래살기만 하면 무얼하겠어. 단 하루를 살다가 죽어도 사람다운 행동을 해야지. 만일 지금 나에게 다시 건강이 허락된다면 남은 생애는 마음껏 좋은 일을 하면서 보내겠어. 그렇지만 그건 다 꿈같은 이야기야….』
『왜요, 사장님?』
『미스·양은 잘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나는 이미 앞이 뻔히 내다보이는 사람야. 그건 누구보다도 나 자신이 잘 알고 있어.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든지 한시 바삐 정아를 만나야하겠어. 나는 체면이나 예의같은 걸 돌볼 여유조차 없는 몸이야. 그러니 나를 가엾게 생각해서 미스·양의 힘으로 나와 정아를 빨리 좀 만나게 해주어. 이것은 나의 간곡한 부탁이야.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적으로 말하는 거지, 사장으로서 사원에게 하는 말은 절대로 아니니 그 점은 오해하지 말아주기를 바라고 있어.』
윤 사장의 말을 들으며 은실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고요히 앉아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윤 사장은 은실의 입이열리기만 고대하였다. 한참이나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던 은실이가 비로소 얼굴을 들어 윤 사장을 바라보았다.
『사장님?』
『응?』
『사실은 저는 어떤 일이 있든지 사장님께 정아 있는 데를 가르쳐 드리지 않으려고 생각했었어요.』
『어째서?』
『정아는 지금 행복스럽지는 못하지만 아무런 불만도 없이 그런대로 별탈없이 살아가고 있어요. 그 애 어머님도 그렇구요. 그런데 윤 사장님이 갑자기 뛰어드셔서 충격을 주시면 또 뜻밖에 불행이 오지 않을가 근심이 되어서 그래요.』
『그야 나도 그렇게 되기는 바라지 않지. 만일 내가 나타남으로 해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해가 된다면 나는 그들 앞에 참고 나타나지 않음으로써 내가 지은 죄과를 기워 갚아야할 테지…』
『그렇지만 사장님이 그렇지 않으시다는 걸 저는 오늘 확실히 알았어요』
『미스·양 고마워. 그게 진정인가? 진정이라면 나는 미스·양의 그말 한마디만 가지고도 큰 위안을 삼겠어?』
윤 사장은 감동하여 또 손수건을 끄내어 눈으로 가져갔다.
『그렇지만 잠시 만나보셔서 아시겠지마는 정아는 만만치 않은 아이에요. 그러니까 접근하시기가 조금 힘드실 것 같은데요.』
은실은 조금 근심스러운 얼굴을 지었다.
『정아가 나를 매우원망하고 있을 테지?』
『그야 뻔한일 아니어요. 정아의 처지가 되면 누군들 그런 마음을 품지 않을 수 있겠어요.』
『그럴거야. 물론 그럴거야.』
윤 사장은 낙심이 되는 듯 고개를 떨어뜨리었다.
『그렇지만 바꾸어 생각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바꾸어 생각하다니?』
윤 사장은 눈이 둥그레진다. 어떻게 해서든지 얽힌 매듭을 풀어보려는 간절한 희망으로 윤 사장의 마음은 가득히 차 있었다.
『사장님 혹시 이렇게 생각해 보시지 않으셨에요?』
『어떻게?』
윤 사장은 자세를 바로 하고 은실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정아가 신 선생님에게 쌀쌀하게 하고 한걸음도 접근을 시키지 않는 것은…』
『않는 것은?』
『그렇게 지나칠 만큼 강경한 것은 그만큼 선생님에게 관심이 있는 게 아닐 가요?』
『그만큼 관심이 있는 거라구?』
『네. 정아는 그만큼 아버지를 그리워했기 때문에 또 그토록 강경하게 반발을 일으키는 걸는지도 몰라요.』
『그럴가? 그렇다면 좋겠지마는 어떻게 매섭게 잡아떼는지 근접도 할 수가 없었어.』
『그 애는 거죽으로는 그래도 속은 다감한 애에요. 조금만 지나면 반드시 아버지를 뜨겁게 따를 거에요.』
『미스·양, 고마워. 그렇다면 어떻게 그 애를 만날 수 있지?』
『제가 주소를 적어드리 겠어요. 아버지와 딸 사이인데 무슨 허물이 있겠어요. 선생님이 찾아가시면 그 애도 그 이상 더 버티지는 못할 거에요.』
은실은 종이에 주소를 적어서 윤 사장에게 주었다. 그리고는 중역 한 사람이 벼란 간에 들어와서 은실은 총총히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