最近(최근) 歐羅巴(구라파) 敎會事情(교회사정)을 살펴본 「座談會(좌담회)」
우리의 앞날을 展望(전망)
東西(동서) 같이 刷新(쇄신) 向(향)한 陣痛(진통)
保守(보수) 進步(진보) 思想(사상)의 葛藤(갈등) 등 敎理中心(교리중심)서 福音中心(복음중심)으로
「進行停止(진행정지)」는 死滅(사멸)
司牧(사목) … 現實(현실)의 要求(요구)들에 順應(순응)
活潑(활발)한 改革方案(개혁방안) 摸索(모색)…各國(각국)
公議會(공의회) 地方獨創性(지방독창성) 促求(촉구)
改革(개혁)의 細則方法(세칙방법) 提示(제시)않고
座談會 參席者
司會 金達湖 교수(慶大 敎授 本社 論說委員) 徐基湖 신부(本社 論說委員) 鄭達龍 신부(오지리서 歸國) 李太載 교수(慶大 교수 本社 論說委員) (無順)
本 座談會가 意圖한 것은 第2次 「바티깐」 公議會 후 西歐의 敎會가 어떻게 변모해가고 있는지 또는 公議會의 根本精神 具顯을 위하여 어떤 活動들을 하고 있으며 한국교회가 앞으로 어디에 座標를 두고 나가야 할지를 알아보자는데에 있다. 그래서 여기에 모신 最近, 世界平信者 「로마」大會에 韓國代表로 參席후 西歐一帶를 두루 視察하고 歸國한 李太載 博士를 爲始하여 1年間 오지리 各地와 구라파를 旅行하고 오지리 「그라쯔」에서 서품된 鄭達龍 神父와 同途 歸國한 徐基湖 신부9 등을 모시게된 것은 多幸으로 생각하며 우선 感謝드리는 바이다. (編輯者 註)
■ 公議會가 意圖하는 것
公議會가 있은 후 그 精神을 理解하고 敎會現代化를 위한 試圖와 改新의 努力이 胎動되기 始作하자 젊은(精神的으로) 聖職者들은 救贖事業을 가로막는 時代的인 如何한 障壁도 突破해 보겠다는 意慾에 차있을 때 한편 過去 自己가 배운 神學課程과의 變革을 容納하려들지 않고 守舊를 固執하거나 急進을 위태롭게 생각하는 曰, 保守勢力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韓國이나 西歐에서나 每一般이다. 그러나 敎會는 發展하며 成長하는 것이다. 停止할 수 없는 것이다. 茂成한 樹木이 그 成長을 停止하면 退化와 사멸을 意味하기 때문이다.
公議會는 決코 敎會改新의 方法이며 그 細則을 決定한 바 없다. 다만 敎會의 根本精神의 原則과 그 方向을 提示했을 뿐이다.
가령 公議會 當初에는 누구누구도 미사의 核心部分인 「까논」(全文)이 自己나라 國語로 봉헌되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韓國에서도 훌륭하게 韓國語로 봉헌되고 있지 않는가.
이처럼 具體的인 方案과 實踐細則은 그 地方主敎會議가 決定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地方마다 그 地方事情에 따라 具顯方法이 다른 것이다.
■ 保守와 젊은 世代
即 多樣性을 認定하고 있기 때문이다. 問題는 敎會가 現實에 어떻게 適應하느냐 하는데에 있다. 現實은 변천하는데 敎會의 傳敎方法은 舊態依然한 데에 고민이 있으며 이것을 어떻게 改新하며 克服하느냐 하는데 歐羅巴의 各敎會는 硏究와 努力이 大端히 活潑한 것 같다. 「그라쯔」의 聖 안드레아 聖堂에서는 每金曜日마다 「째즈」音樂 미사가 있는데 젊은 靑年들 間에 大人氣다. 平素에 聖堂에 나오지 않던 절은이들이 이 「째즈 미사」에는 꼭 나와 熱狂的으로 미사 參禮를 한다. 老人들은 勿論 질색이다. 그래서 敎會가 亡하는 것처럼 悲憤慷慨하여 本堂神父에게 抗議해온다. 이 抗議와 投書의 骨子는 『敎務金도 내지않고 聖堂에도 잘 나오지 않던 망나니들의 미사』라고 혹평하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世代는 옛날 같이 느릿느릿한 聖歌를 듣고 있으면 질식할 것 같아 聖堂에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들 젊은 親舊들은 가령 「도미니크」같은 탬포가 빠른 聖歌와 「비틀즈」 「무드」를 至極히 원하고 있다. 앞으로의 司牧은 現實에 適應하는 方途를 모색하고 있다.
이번 公議會가 떼이아르 드 샤르뎅이 말한 天主降生以後 이 世上에는 俗될 것은 하나도 없다. 現實에 奉仕하는 것이 진짜 「크리스찬」이다라고 한 생각을 결과적으로 全部 바당들인 것이 되었지마는 여하간 西歐의 各本堂들은 어떻게 하면 信者들을 兄弟的인 團體로 結束시킬 수 있는가 하는 問題를 놓고 골몰하고 있다고 하겠다. 가령 數百年 묵은 巨大하며 복잡한 「데꼬레이숀」의 성당들을 팔아버린 곳도 있다. 和蘭의 「암스텔담」 같은데는 『큰 성당 속에서는 人間의 存在가 너무나 微小하고 가련하며, 따라서 司牧의 目的을 達成할 수 없다』는 이유로 성당을 公賣해버린 것이다. 신자들은 아담하고 간소하고 밝고 따뜻한 곳에서 天主께 기도드리기를 願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또 젊은 世代들은 旣成世代의 고루한 牙城을 무너뜨려야 한다. 傳統的이며 權威主義的인 態度로는 司牧方法으로써 零点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活動은 公議會의 結義課題로 나타나는 것에는 틀림이 없으나, 그러다고 새로운 무엇이 생겨난 것은 아니다. 時代와 思想의 변천에 따라 思考의 中心이 달라진 것이다. 過去에는 敎理中心이던 것이 지금은 福音中心인 것이다. 福音精神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오늘의 움직임이다.
가톨릭 神學者들 중에는 福音의 現代的인 解釋을 위하여 新敎의 神學과 福音解釋을 우선 全部 消化해야 한다고 熱中하고 있는 이도 있다. 現代人에게 福音을, 그들의 思考와 生活에 맞도록 解說하자니 전통적인 것을 全部 忘却해 버리게 되기 쉽다. 그래서 보수와 革新이 調和되는데는 時間이 必要하다.
■ 實踐에 앞서 硏究에 몰두
改新을 목표한 活動을 위하여 硏究하는 態度는 大端히 積極的이다. 「잘쯔부르그」 大主敎가 교구내 各信者들에게 그들의 요구를 묻는 設問을 보냈더니 12萬通의 應答이 왔다. 이처럼 교우들이 積極的이다. 主敎는 다시 이 資料를 「교구 시노드」 即 聖職者와 平信者로 구성된 司牧委員會에서 檢討硏究케 하고 있다.
歐羅巴의 各敎會는 司牧에 있어 어떻게 現實에 適應하느냐는 問題를 두고 硏究하기 보다 오히려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인상이다. 이러한 活動에 平信自들이 더 積極的이며 聖職者들이 더 保守的이고 一部 聖職者들 階層에서는 심한 混亂마저 일어나고 있는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 (여기에서 觀点이 다른 平信者間에 甲論乙駁이 있었다) 오지리 全國 司牧委員會에서 「神父란 무엇이냐」는 「테마」를 두고 論議한 바 있는데 敎義헌장에 神父의 職分에 對하여 많이 言及되징 낳았다는 이유로 韓國에선 平信者使徒職에 對句로 神父의 職分을 「病身者使徒職」이란 농담을 할 정도이지만 그곳에선 神父이 직분과 위치에 대해서도 많은 論議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前記한 委員會에서 論議된 것을 보면 신부들의 職分을 하나의 직업인으로 생각하고 있는 傾向도 없지않다.
일부 神父들(本堂을 맡지 않고)은 大學이나 출판 기타 직장에서 일하고 退勤후는 「아파트」 같은 곳에서 생활하는 月給장이로 착각하고 나아가서는 結婚을 해도 무방하다고까지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마는 대다수의 신부들은 조직을 만들어 現代的인 司牧 방법을 硏究하고 있고 또 어떤 이는 神父는 정신문제만 다루고 다른 問題는 信者들에게 一任하다는 態度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직자의 눈으로 볼 때 구라파에서도 역시 信者들의 자세는 中道派쯤 되고 신부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전통적인 것을 뚫고 나가려는 勇氣와 각오가 대단한 것으로 보는 편이 定論인 것 같다.
英國에서는 젊은 神父들이 소재날 소고기 대신 물고기 먹는 것을 금하자고 제의한다. 물고기가 소고기보다 그나라에서는 더 비싸기 때문이다. 소고기로 소재를 때우고 남는 돈으로 좋은 事業을 하자는 것이 신부들의 主張. 그러나 교우들은 아예 소재를 범하는 것을 小罪 정도로 해달라는 요구로 맞서고 있다.
如何間 神父가 과거의 權威와 尊敬의 위치에서 安逸하게 머물러 있을 수 없게된 것만은 事實인 오늘 새로운 신부의 姿勢와 위치를 찾고 開拓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것만은 事實이다.
敎會 改新運動에는 和蘭의 主敎들이 가장 앞서가고 있는 것 같다. 현재까지는 한달에 한번씩 主敎會議를 열었는데 앞으로는 두번씩 會議를 열기로 했고 또 和蘭 主敎會義 傘下에 司牧硏究所를 두어 一般社會에 대한 社會學的 科學的 調査硏究를 依賴하여 司牧의 可能性을 찾게하고 其他 世界的인 出版物의 刊行 · 對話의 廣場 등을 마련하여 敎會刷新을 단행하고 그 方案을 常時 硏究케 하고 있다. 主敎는 모든 施策을 이 司牧硏究所를 通하여 실천에 옮기고 또 司祭들의 代表로 구성된 司祭顧問團이 있어 司祭들의 意見을 主敎에게 建議하도록 되어있다.
그리고 和蘭의 각 敎區內에는 一般平信者를 포함한 「敎區시노드」가 있어 敎區內의 諸般問題는 그 敎區內에서 解決하고 있는 터이다.
이 「敎區 시노드」의 구성원을 보면 聖職者나 平信者를 莫論하고 다 專門家들로 되어있고 聖職者와 平信者의 비율은 3대2로 되어있는 것이 普通이다.
이러한 組織은 聖廳의 精神을 그대로 따른 것인데, 現在 성청
에는 約20개의 專門委員會가 있고 各委員會의 專門委員中 約40%가 平信者로 되어있다. 主敎는 多方面의 專門家가 아니며 더욱 萬能이 아니다. 專門家들의 協助 없이 主敎의 職分을 完遂할 수 없기 때문에 이러한 組織과 그 構成員에는 敎區마다 細心한 注意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結婚한 副祭職制度는 歐羅巴에서도 아직 實施하고 있지 않다. 더구나 敎義憲章에서 그 可能性을 시사한 終身制 副祭職 養成機關에 대해서는 아직 염두를 못내고 있으나 本堂에 따라서는 主日미사 信者中에서 本堂神父와 매주 交代로 說敎를 맡아보고 있는데가 있다. 앞으로 이런 形式의 平信者의 參與는 더욱 많아질 것 같다.
司祭獨愼制에 對한 論議는 美洲처럼 많은 것은 아니나 歐洲에서도 종종 論議되는 것은 事實이다. 勿論 贊反 兩論이 있게 마련이나 歐羅巴의 與論은 大體로 이러하다. 獨身者는 人間社會의 그 折半밖에 모른다. 半밖에 모르는 사람이 어떻게 人間을 指導할 수 있겠는가? 神品聖事를 받기 前에 自己의 態度를 決定하게 하되 兩者를 다 許容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이미 神品을 받아 司祭가 된 者는 獨身을 天主臺前에 許願하지 않았느냐? 그 許願은 지켜야 한다. 등등이 論據가 되어 있다.
事實 지금의 歐羅巴의 物質生活은 大端히 裕足하여 可謂 地上의 樂園이라 하겠다. 이런 物質的 經濟的 豊足 속에서 完全한 自由를 누리고 있다. 그런데 이 樂園 안에서 왜 唯獨 「나만이」 獨身과 其他 모든 犧牲의 十字架를 져야 하느냐 하는 神父들 自身의 自問이 있을 法 한 일이다. 過去의 神學은 現世를 罪惡의 구렁텅이라고 했으나 現代의 神學思潮는 現世 또한 樂園이고 이 樂園 안에서도 훌륭히 救靈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는 터이다. 이 世上을 더욱 즐겁게 살다가 來世에는 더욱 더 크고 永遠한 福樂의 世界에 無難히 갈 수 있는데 왜 고민하느냐 하는 神學思潮의 變遷은 더욱 이 問題를 深刻하게 하는 것 같다. 그러나 神父들이 이상과 같은 論義로 熱을 올리다가도 그 自身의 處身에 관하여 意思를 물어보면 異口同聲으로 『나는 그런 意思가 없노라!』고 確言한다.
그러면 누구를 위하여 이 問題를 提起하느냐. 아마 후배들을 위한 老婆心에서 인것 같다. 司祭獨身問題에 대한 決論으로 敎會의 碩學 칼 라너의 所論을 들어보자. 司祭 獨身制問題에는 반드시 司祭에게 結婚을 허용한다면 結婚한 平信者에게도 司祭職을 허용해야 되지 않겠느냐. 또 이미 神品을 받은 신부들은 神品을 받기 前에 많은 現世的인 유혹을 다 물리치고 獨身으로 司祭職을 수행하는 十字架를 지겠노라고 스스로 天主臺前에 約束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또 한편 神學生의 敎育年限을 延長하여 가령 30세 이후에 神品聖事를 줌으로써 그동안 本人에게 獨身司祭職 수행에 대한 可能性과 自身의 態度與否를 決定케 하자는 것이며 끝으로 結婚을 願하는 신부들에 대하여는 보다 人間的인 台徒로 그 解決에 임하자는 것 등이다. 그리고 이 마지막 理解있는 提案에 대해서는 이미 敎會가 그런 態度로 臨하고 있는 것이다.
■ 典禮는 그나라 生活 感情에 맞아야 한다
典禮問題에 대해서 韓國은 確實히 後進的이요 模倣的이라고 하겠다. 萬事 「로마」만 쳐다보고 있는 感이 있다. 10餘年前 外國에서 돌아온 어떤 外國神父가 祭臺를 敎友들 한 가운데 놓고 敎友들을 向하여 미사를 올렸더니 나중에 敎區廳에서 알고 禁했다는 것이다. 「로마」에서 아직 아무런 正式 決定이 없다는 理由로. 그 當時 歐羅巴에서는 곳곳에서 現代미사 典禮의 序曲이 具體化되어 가고 있었는데 이런 態度는 지금도 如前한 것 같다. 우리나라 固有의 것이 조금도 典禮運動에 反影되어 있지 않고 外國에서 이렇게 하니 우리도 거기에 따라 고쳐나가는 式이다.
우리의 生活感情이 조금도 典禮에 考慮되어 있지 않는데는 奇異하게 생각된다. 기도문은 「라띤」어의 直譯으로 無味乾燥한 實感없는 飜譯語의 結付로 滿足하고, 이런 祈禱文은 소리를 높이면 높일 수록 더욱 異質的으로 들려온다. 우리의 祈禱文은 「外國天主」께 올리는 주文으로 알맞게 마련이다.
現在 獨逸 · 瑞西 · 오지리의 所謂 「게르만」語族系의 共通 「까논」을 共同으로 準備中이며 앞으로는 亦是 共通된 것을 三種 마련하여 미사를 執典하는 司祭가 그 미사에 類別에 따라 세가지 中 하나를 擇一하여 使用하게 된다. 例컨데 知識人과 兒童들과는 미사의 經文도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外國에 가서 미사를 드리는 神父나 或은 外國에 가서 미사에 參禮하는 外國人을 爲하여 「라띤」어 미사를 存續시키는 것이 좋겠다. 「라띤」어는 역시 國際共通語로 今般 「로마」 平信者世界大會때도 미사는 「라띤」어로 올렸던 것이다. 歐羅巴에서도 自國語로 「까논 미사」를 올리니 神秘感이 나지 않는다고 不平하는 사람들도 있다. 「까논 미사」만은 每日 變하지 않는 經文이니 敎友들에게 그 뜻을 周知시켜 놓고 世界 各國이 同一하게 一致와 共通性을 지켜보자는 意見들도 있었다.
또 미사는 반드시 聖堂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고 歐羅巴에서는 家族미사라는 것이 있어 個人들 住宅에서 家族끼리 모여 앉거나 或은 이웃 親知들을 招待하여 自然스럽게 의자에 앉은 그대로 「말씀의 典禮」를 올리고 그 끝에 食卓을 祭臺로 「까논 미사」를 드리고 그 자리에서 食事도 같이 하며 즐긴다. 이런, 말하자면 生活 속에 파고 드는 典禮運動의 傾向이 胎動하고 있다. 가령 이런 경우에 韓國의 생활양식은 坐式生活이다. 그렇다면 미사는 立式生活 양식에만 맞춰야 한다는 論法은 成立될 수 없는 것이다. 特히 農村 公所 같은데는 그 地域社會에 適應될 수 있는 典禮形式이 아련되어 있어야 하지 않는가.
前記한 家庭미사를 프로테스탄化 하는 傾向이라고 非難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에 대하여 이런 典禮運動을 熱心히 展開하고 있는 側에서는 가톨릭敎會가 萬一 그리스도敎會가 願했던 또 願하고 있는 敎會가 되지 못할 바에야 프로테스탄의 方法도 吸收하자고 응수하고 있다.
■ 告解없는 첫領聖體
歐羅巴의 神學者들 間에 告解聖事의 核心이 告明이냐 痛悔냐 하는 問題와 告解聖事와 聖體聖事(領聖體)를 個別의 것으로 分離하자는 論議도 있으나 구체화 된 것은 없다.
和蘭에서는 主敎會議에서 첫 告解라는 制度를 없애고 幼兒園에서 國民學校 2學年때까지는 첫 領聖體만 準備시켜 告解聖事 없이 領聖體만 한다. 어린이들이 없는 罪를, 意識하지 않는 罪를 造作해서 告解하는 것을 막기 爲함이다.
罪를 만들고 생각해 내기에 골몰하던 어린이들이 마침내 罪罪하다가 罪가 무서워 告解를 두려워 하고 따라서 사랑의 聖事인 領聖體를 忌避하는 傾向을 未然에 막자는데에 그 眞意가 있는 것이다. 要는 사랑을 가르치자는데 그 目的이 있다고 하겠다.
和蘭의 어린이들은 國民學校 3학년에서 통회에 對한 敎育을 받고 공동 통회를 시키고 있다. 國民學校 4학년에서 처음으로 첫 고해를 準備시키고 個人告解를 하게 마련이다.
■ 敎會一致運動의 先行條件
우리의 敎會一致運動은 아직 人事와 對話를 시도하는 단계에 있다고 하겠다. 그러나 歐羅巴에서는 벌써 이런 단계를 지나 共同社會事業, 合同 聖經 번역, 合同 慈善活動 등 벌써 行動化 단계에 들어갔으며 이러한 運動과 活動이 대단히 활발하다.
지난 世界平信者大會의 여론을 들어보면 敎會一致의 根本問題를 解決하지 않고 對話만을 꾀한다고 하는 것은 一種의 사기가 아니냐. 아프리카에서는 아직도 本堂과 本堂 敎區와 敎區, 액션團體 相互間에 아무런 對話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형편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이 点은 아세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가톨릭內에서도 아직 아무런 對話가 成立되지 않는 터에 어찌 他宗敎와 宗派間에 對話만을 서둘러야 한단 말인다.
우리의 形便도 이점에는 너무 흡사한 感이 있다. 舟橋會議만을 項点으로 露出시킬 것이 아니라 敎區와 敎區간의 담을 털어놓고 신자들間의 對話가 우선 더욱더 活潑하게 展開되어야 하겠다.
平信者大會의 한 分科委員會에서는 이 一致의 論題를 繼續討論한 끝에 他宗派의 敎會儀式에서 領聖體할 수 있느냐, 어느 敎派에서든지 洗만 받으면 아무 拘碍 없이 混宗婚을 해도 聖事가 되지 않느냐? 그리고 그 子女들의 宗敎問題 즉 어느쪽의 信仰에 따라야 하느냐 라는 結論없는 激論만을 벌인 끝에 神學者들에게 이 問題를 맡겨놓자는 편과 神學者란 事實을 앞에 놓고 거기에 論議의 뒷받침을 하는 것이니 平信者들이 먼저 斷行해 버리자.
그러면 神學者들이 따라올 것이 아니겠느냐 하는 極端論까지 있었으나 結局아무런 結論도 얻지 못했다. 이처럼 敎會一致문제는 今後도 許多한 난관과 難問題를 포함한 채 우리는 兄弟愛에 充滿된 對話의 廣場만은 버릴 수 없는 것이다.
■ 援助의 極致는 人間을 주는 것
解放후 特히 6·25 후 우리는 많은 外援을 받아왔다. 우리 敎會內만 하더라도 美國의 NCWC 獨逸의 「미제리오르」 오지리의 가톨릭 婦人會의 愛德의 發露로 보내온 金捐은 실로 헤아릴 수 없이 많았고 其他 各國敎友들이 우리에게 보내온 誠金도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많은 恩惠를 받고 살아왔다. 그리고 우리가 준 것은 別로 없다. 그러면서도 아직도 우리는 많은 「달라」가 굴러들어올 것을 期待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冷靜히 反省해 보면 그들 外國의 敎友들과 우리 사이에 남은 것이 무엇이냐. 지금 무엇이 남아 있느냐? 아무것도 없다. 남아 있다면 그들은 많이 주었다는 快感이요, 자랑이며, 우리에게는 쓸쓸한 뒷맛과 더 주지 않는다는 원망과 더욱더 큰 貧困意識뿐이다.
今年 3월에 發布된 바오로 6세의 회칙 「諸民族의 發展」은 世界各國에서 큰 환영을 받았고 오지리 國會는 即刻的으로 支持決議를 했고 「모스코」 마져 환영의 뜻을 表明했다.
이 回勅을 계기로 지금까지 소위 援助가 當한 者가 貧한 者에게 주는 喜捨에서 형제애의 連帶責任에서 起因하는 義務로 規定지워진 것이다. 그들도 우리에게 주어야 하고 우리도 그들에게 주어야 한다. 서로 똑같은 위치에서 꼭같은 것이 오가야 하는 것이다. 형제 간의 일이기 때문이다. 서로가 같이 줄 수 있는 것은 人間뿐이다. 물질은 인간에게 屬한 것이요 人間 앞에는 億萬 달라라 할지라도 아무것도 아니다.
人間을 주면 「달라」도 技術도 모든 附屬이 다 따르게 마련이다. 지금 西歐의 형제들은 우리에게 對하여 아무것도 모른다고 한다. 對話가 없었다. 그들은 암흑 속에 막연히 「달라」를 뿌리고 밀가루를 뿌리고 헌옷가지를 집어던진데 不過한 것을 깨달았다.
우리도 그러하다. 암흑속에서 허공에서 「달라」가 날아오고 밀가루가 날라오고, 헌옷가지가 날라와서 좋아했다. 그뒤에 사람이 있었고 형제가 있었고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韓國의 兄弟들을 알고 싶어한다. 만나고 싶어한다.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對話의 廣場을 마련하고 싶어한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달라」도, 밀가루도 더욱 헌옷은 없어도 좋다. 兄弟들이 하루빨리 만나 對話하고 마음과 마음이 손과 손이 서로 부딪쳐야 할 때는 온 것이다.
이것이 저쪽 兄弟들의 自覺이요 現時点의 所願이라고 한다. 이러한 對話의 準備가 그들 兄弟들은 벌써 準備되어 우리를 기다린다고 한다.